폐업신고
조서정
오늘부로 생산라인 가동을 멈춥니다
그동안 매월 발주 물량 맞춰보겠다고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숙명인 줄 알았습니다
노동조합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불량품 나올까 봐
한 눈도 못 팔았습니다
씽씽 잘 돌던 때에는
계획에 없는 제품도
막 쏟아져 나왔습니다
슬슬 녹이 들고 전기 공급 장치에
이상이 생기면서부터는
다달이 경상수지 맞추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어느덧 감가상각비만 늘어
병원비만 불어났습니다
이러다 거푸집 더미에 깔려 이승을 떠난
일용직 하청 노동자처럼
공장 잔해에 깔려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에
철거 계고장이 날아들기 전에
서둘러 철거 동의서에 사인하던 날
쓸모를 잃어버린 거푸집과
청춘의 아픈 기억마저 버리고 나니
마침내 내 몸의
미니멀라이프가 실현되었습니다
- 계간 『시로 여는 세상』(겨울호/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