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기를 누설하다
조서정
지천명 지나 마주한 내 운명은
어둠을 밝히는 한 자루 촛불이라
일찍이 불장난만 조심했으면
만사형통할 팔자였던 거라
초년에 얇은 심지에서 시작된 불이
알콜에 옮겨 붙어
청춘을 탕진하고 중년에 들어보니
소신공양에 초간삼간 들어 먹었는디
불꽃 심지로 쓴 자서전과
촛농은 다 어디에 가서 굳었을까?
돌아오는 길 또한 어둡고 험난하여
잔 불꽃들이
남긴 화상 자국에도
발효꽃이 다글다글 피었으니
남은 것은 내 생의 경력 한 줄과
무럭무럭 착하게 자라준
본품보다 더 훌륭한 마일리지뿐이더라
2030 삼포세대에
재취업 시장에 이력서를 넣어 봐도
임금체불에 파산 기업들뿐이라
말년에는 스스로 발복하여
뚜벅뚜벅 개척해 온 어두운 인생길에
태풍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LED등불 하나 켜 놓으리니
2021년 다층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