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용 선생님께서 읽어주셨습니다.
조서정 산문집 <엄마를 팝니다>를 읽었습니다. 웃기도 하다가, 눈물 핑 돌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읽었습니다. 조서정 작가의 <엄마를 팝니다>를 단순히 ‘산문집’이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의 어머니의 삶의 기록이고 역사었습니다.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삶의 기록이 들어 있었습니다. 시골 마을 이웃들의 삶의 기록이 들어 있었습니다.
내 고향 이웃에도, 입 하나 덜려고, 배라도 곯지 말라고, 열 살도 안 된 나이 어린 딸을 나이 제법 든 홀아비에게 시집 보낸, 그래서 가정을 꾸리고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았던 이웃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었던 시기는 일제 식민지 시대였습니다. 농사 지은 것 공출로 다 빼앗기고, 봄 춘궁기 다가오면 풀뿌리를 캐고 나무껍질을 벗겨서 보리알 몇 개 둥둥 뜨는 멀건 풀죽을 끓여서 먹어야 살 수 있었던 시기입니다. 먹을 입 하나 덜어내는 일이 처절하게 삶의 현실이었던 시기가 있었지요. 그 시기가 조서정 작가의 어머니의 어머니 시대였지요.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는 노래가 ‘새마을노래’밖에 없었던 조서정 시인의 아버지의 아내로, 그 다음 시대를 사신, 살아내신,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한 평생을 살아내신, ‘어머니’의 ‘삶’과, 그 어려웠던 삶 뒤에 서린 여백과, 여백 뒤에 숨은 어머니의 농담이, 눈물나게 아름다운 인생이, <엄마를 팝니다> 속에 들어 있네요.
엄마인 줄만 알았던 한 소녀가 들어 있고, 엄마인 줄만 알았던 한 여인이 들어 있고, 삶의 무게에 눌려, 노동의 무게에 눌려, 열악한 영양의 여파로, 몇 차례씩 유산을 한, 여인의 기쁨도 알 겨를이 없었던, 여인의 기쁨도 누리기 어려웠던, 어미의 눈물과 어미의 기쁨과 어미의 보람과 어미의 행복이 구구절절 들어 있는, <엄마를 팝니다>를 읽었습니다. 거의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어머니의 입에서부터 나온 문장들이, 시인의 귀를 통해서, 시인의 손을 통해서, 참 담백한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입담에 장단을 맞춘 시인의 입담이, 참 찰지게 곰지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젖먹이 새끼를 집에 두고, 불어서 흐르는 젖을 싸매고, 산에 약초를 캐러 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삶이, 너무나 담백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읽으면서 또 눈물이 나고 났습니다. 책에 담긴 작가의 어머니의 삶을 보면서, 누구에겐가 그렇게 한 번 살아보라고 하면 절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은 ‘어미’의 삶을, ‘곰지게’ 살아오신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 속에 들어 있는 어머니의 이 말을 거듭 거듭 찾아서 다시 읽었습니다. 다시 찾아 읽어도 눈에 눈물이 핑 핑 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곰진가 모르것다. 하나만 낳아도 소원이 없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똑똑하고 잘 생긴 자식을 넷이나 낳아 키웠으니 엄마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곰지다’는 말에 대해서 작가는 괄호 속에 ‘뿌듯한지’라고 설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곰-’의 용법에 대해서는 고구려어에 뿌리를 둔 백제어의 관점에서 따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알지다’에 뿌리를 둔 ‘오지다’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