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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May 22. 2024

16.‘곰지다’학문적 해석

전문용 문학박사님께서 풀이해 주셨습니다. 


조서정 시인의 책 <엄마를 팝니다>에, 엄마가 하시는 말로 ‘곰지다’라는 충청도 말이 나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곰진가(뿌듯한지) 모르것다. 하나만 낳아도 소원이 없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똑똑하고 잘생긴 자식을 넷이나 낳아 키웠으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조서정, <엄마를 팝니다>, 45쪽)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는 필자의 어머니께서 쓰시는 토박이 부여 말입니다. 필자 조서정 작가가 괄호 안에 “뿌듯한지”라는 풀이를 넣어 주었습니다. 말하시는 어머니의 느낌과 그 말을 듣는 딸이 함께 느끼는 느낌을 풀이말로 붙여준 것이지요.


  ‘곰지다’라는 말에서는 ‘알지다’ ‘오지다’ 같은 유사어가 떠오릅니다. <우리말샘>에는 다음과 같은 ‘곰지다’가 올라 있습니다. 


* 곰지다: 형용사. 방언. ‘알차다’의 방언 (충청). <우리말샘>. 


  <우리말샘>에서는 충청 방언으로 ‘알차다’라고 설명했지만, ‘알차다’보다는 ‘알지다’가 더 가까워 보입니다. 


* 알차다: 형용사 속이 꽉 차 있거나 내용이 아주 실속이 있다. 


* 알지다: 형용사 1. 알에 살이 많이 오르다. 2. 실속이 있다. 3. 몸에 살이 많이 오르다. 


  이때 쓰는 ‘알-’은 ‘새-알’과 같이 금방 뜻이 연상이 됩니다. ‘형용사 ’곰-지다‘에서 쓰인 ‘곰-’은 무슨 뜻일까요? 고려가요 “동동(動動)”에 “德으란 곰배예 받잡고 福으란 림배예 받잡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 ‘곰배’와 ‘림배’가 나옵니다. ‘림배’는 두음법칙을 적용하면 ‘임배/님배’가 됩니다. ‘임+배’의 형식으로, ‘이마(니마/니맣)+배’로 읽을 수 있습니다.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은 '림배'를 미루어 생각하면, 이 노래가 북방계 노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곰배’는 ‘곰(가마) + 배(머리)’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배달 겨레’라 할 때 ‘배(머리) + 달(머리)’에 ‘머리’를 뜻하는 ‘배’가 나옵니다.) 


  ‘가마’는 머리 가장 위쪽 뒤쪽에 머리카락이 뱅뱅 돌아간 자리를 이르는 말입니다. 이것이 줄어들면 ‘감, 곰’ 등의 형태로 사용이 됩니다. ‘곰지다’ ‘곰삭다’ ‘곰살갑다’ 등에서 다른 말 앞에 붙어서 강조의 뜻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곰배’는 ‘고무래’ 또는 ‘곰방메’의 다른 말로도 쓰입니다. 보리밭에서 흙덩이를 깨는 자루가 긴 나무 망치를 부르는 말입니다. 머리 뒤꼭지가 불룩한 것을 비견하여 ‘곰’이라는 말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팔곰치’ ‘뒷곰치’등 몸 뒤쪽 불룩한 곳을 이르는 말에도 ‘곰’이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높은 고갯마루를 '곰배령'이라 한 것도 같은 어법으로 보입니다.


  백제의 노래인 <정읍사>에는 “다ᆞ갈하 노피곰 도다ᆞ샤/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어긔야 어강됴리/아으 다롱디리” 하고 나옵니다. 여기에 ‘노피-곰’ ‘머리-곰’ 형식으로 접미사 형태로 강조의 ‘-곰’이 나옵니다. ‘곰’이 강조로 나오는 것은 백제어권의 어법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곰’은 조선 초기 왕실의 언어에도 나옵니다. (아래 인용된 본문들에서 페북에는 아래아가 표현되지 않아서 풀어서 적습니다.) 


∎아ㄴ.리 아ㅂ.ㅣ 나해셔 곱ㄱ.ㅣ곰 사라 (아들이 아비 나이에서 곱이 되게끔 살아) <월석 1:47>


∎이리 水災ㅎ.ㄴ 後에 다시 火災 여듧 번짜히ᅀ가 ᄮ고 水災하ᆞ리니 이리곰 水災호ㅁ.ㄹ 여듧 번 ㅎ.면. (이렇게 수재 있은 후에 다시 화재가 여덟 번째 일어나면 또 수재가 있을 것이니 이렇게 수재를 여덟 번 당하면.) <월석 1:50>


∎四方이 各各 變ㅎ.야 十方곰 ㄴ.외면 四十方이 일오 四十方이 各各 變ㅎ.야 十方곰 ㄴ.외면 四百方이 일리니. (사방이 각각 변하여 십방씩 되면 사십방이 각각 변하여 십방씩 되면 사백방이 일 것이니.) <석상 19:12>


  고구려어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백제어나, 조선 초기 이성계 왕가의 북방계 방언이나, 뿌리가 같을 수 있습니다. 위의 보기들에서 사용된 ‘-곰’은 접미사로 나오는 강조의 형식입니다. 


  ‘알지다’의 ‘알’과 ‘곰지다’의 ‘곰’이 둘 다 볼록 또는 불룩한 느낌을 주는 말로, 조서정 시인이 풀이한 ‘뿌듯하다’는 뜻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가마’에 뿌리를 두고 있는 ‘곰’이라는 말이, 접두사 또는 접미사 형식으로, 강조의 느낌을 담아내는 말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곰지다', 부여 말이고, 백제 말이고, 더 거슬러올라가면 북방계 고구려어에까지 이어질 수 있는 말로 보입니다. (곰취, 곰개미, 곰솔' 등, 상대적으로 좀 큰 느낌을 주는 동식물에도 '곰-'이 붙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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