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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Dec 10. 2022

짙은 안개를 따라갔던 날

시집간 친구를 따라서


스물다섯 10월 어느 날, 고등학교부터 7년 동안 한방에서 뒹군 베프(베스트 프렌드)가 큰오빠가 살고 있는 온양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이사를 가더니 갑자기 맞선 소식을 전해왔다.     


"나 이번에 선봤어. 착한 사람인 거 같아. 그런데 너처럼 시를 좋아한대. 자기가 쓴 시도 보여주더라. 이 사람 마당에 장독대 만들어 놓고 아침 햇살에 장독대나 닦으며 사는 것이 꿈 이래.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니? 그래서 내가 뭐라고 한 줄 알아? “     


”뭐라고 했는데? “    

 

”짱돌 던져서 항아리 다 깨 버릴 거라고 말했어"     


베프는 맞선 상대에 대해 무심한 듯 얘기했지만 내 귀에 전해지는 목소리는 이미 한껏 들떠 있었다. 친구의 연애에 대리만족을 한 나는 전혀 현실적이지 못한 부채질을 해댔다.  


"내 느낌은 너무 좋은데?

시 읽는 남자라면 평생 마음고생시킬 일은 없을 거야~

착할 것 같아~"     


친구와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 사이에 창틈으로 새어 들어온 찬바람이 가슴을 시리게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두어 달 후 베프가 결혼 소식을 알려왔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평생 결혼 안 하고 나랑 같이 고아원이나 운영하자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친구가 내심 서운하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정리하고 친구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베프의 결혼 소식에도 다행이었던 것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적금 만기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대학원 입학 계획을 세운 이후부터 월급에서 매달 얼마씩 쪼개서 부은 적금이 한 달 후면 만기가 된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대학원 진학은 중학교 2학년 때 미술 선생님이셨던 김윤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결심했었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 중에 절반은 공고든 상고든 고등학교에 진학할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산업체 고등학교에 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내 말을 꼭 명심해라. 산업체 고등학교를 졸업하든 상고나 공고를 졸업하든 형편상 정규 대학 진학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다 방법이 있다. 일반대 대신 방송통신대에 가서 정해진 기간에 졸업한 후 바로 충남대 교육대학원에 가거라. 그라믄 나중에 외산중학교에 와서 선생님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이후 외산중학교 국어선생님이 되겠다는 내 꿈은 단 한 번도 흔들려 본 적이 없었다. 그 대신 꿈에서라도 가보고 싶었던 대학 캠퍼스에 대한 환상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시작한 방송통신대 지역 학습관으로 퉁 쳤다.


방송통신대에 다니는 동안엔 새벽과 밤 심지어는 직장에서까지 카세트테이프를 녹음기에 넣고 녹음 준비를 마친 다음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가며 방송 강의를 들었다.     


그래도 꿈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방송대 공부는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학사 경보 없이 정해진 기간 내에 졸업해서 교육대학원에 가겠다는 신념 하나로 이해도 안 되는 고전문학강독부터 한자로 뒤덮인 많은 전공과목과 교양과목들에 도전했다.


 어떻게든 60점 이상만 맞으면 된다는 계산하에 무작정 기출문제집을 통째로 외우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스물다섯에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를 무사히 졸업하면서 대학원 입학 자격인 국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동안 창밖에서는 친구들이 사랑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프에 이어 이번에는 선이가 내 손에 조용히 청첩장을 건넸다. 선이의 결혼은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선희는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에 꼽사리로 나를 몇 번 데리고 갔었다. 친구가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축하가 먼저였지만 그래도 선이는 나를 대전으로 불러올려 직장까지 안내해 준 친구였기에 내 곁에서 떠난다고 생각하니 못내 허전한 마음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12월에만 내 단짝 친구 2명이 결혼한다고 생각하니 그해 가을은 유독 스산하고 쓸쓸했다. 그래도 아직은 내 옆에 한 사람이 남아있었다. 대전에 나와 같이 자취하던 손 위 오빠였다. 오빠는 언제나 나의 든든한 백이자 호위무사였다.


오빤 어려서부터 공부도 잘했고 주변인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서 어디서나 늘 당당했다. 거기다 학과 동기들이 다 오빠를 중심으로 모였다 흩어질 정도로 친화력까지 꼭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든든한 오빠가 아직 내 곁에 남았다는 안도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친구들 결혼 소식이 날아오고 채 일주일도 안 돼서 오빠가 이쁜 언니를 결혼할 사람이라고 나한테 소개했다.


언니는 우리 집안에 꼭 필요한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놀란 가슴을 추스르기엔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 한복판에 나 홀로 남겨두고 모두 요이땅! 하고 동시에 달아나겠다니 참 염치들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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