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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타니-승-전-오오타니

우승이랑 10억 원은 우리가 챙길게

by 휠로그

오늘을 사는 한국 팀에게 패한 사무라이 재팬

솔직히 한국 팀의 우승을 기뻐하는 마음만큼 일본 팀의 패배를 고소해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간 일본 측의 행동은 비상식적인 행동 일변도였죠. 고쿠보 감독은 준결승 경기를 앞두고 결승전 선발을 정했느니 어쩌니 하는 비상식적인 일마저 벌입니다. 그리고 그 결승전 선발은 쓸 일이 없어졌죠. 해당 경기에 집중하지 않은 결과일 뿐입니다.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 거여." 영화 <아저씨> 중에서

아 물론 그 야료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새벽시간에 결승전 경기를 녹화중계로 돌려버리는 태도는 차라리 인간적이고 애틋했죠. 나중에는 그들이 하자고 난리 친 이 대회의 의미마저도 스스로 격하했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한국 쪽에서도 코리안 시리즈가 끝나고 나서 까지 하는 <프리미어 12> 경기 일정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단 사실은 알지 모르겠군요.



2006 WBC>>>>>>>>>>>>>>>>>>>>프리미어 12

사실 한국의 우승으로 끝났기에 망정이지 명백히 이 대회는 운영과 흥행 모두에서 실패입니다. 기껏 잘 봐줘야 국제 야구 취업박람회 정도죠. 이 따위 대회를 독점으로 중계하느라 돈을 퍼부은 주관방송사도 그 발상 자체가 어설프기 짝이 없었고, 홍보도 그리 효과적이진 않았습니다. 홍보모델 AOA의 존재감도 미미했습니다.


이 대회는 특히 경기 운영의 기술적 도덕적 수준 면에서 기대 이하입니다. 고의로 편향된 판정이었다면 차라리 특정 팀 어드밴티지라고나 할 텐데, 심판원은 그냥 함량 미달이었습니다. 중계에서도 MLB에서도 별 게 없었습니다. 수비 시 스타트 시간, 최대 가속, 경로 효율성 등 국제대회에 걸맞은 중계 아이템도 보이지 않았죠.


역시 초대 대회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미국의 입맛에 맞춘 대회라는 점에서 달갑지 않긴 마찬가지였지만, 2006년 초대 WBC도 이랬던가요? 아니었습니다. 우선 선수들부터 달랐습니다. 먼저 한국 선수단에 관한 이슈만 해도 박찬호와 김병현의 재기, 지바 롯데 일본시리즈 우승의 주역이자 일본 최고 팀 요미우리로 이적한 이승엽의 참가 등이 있었습니다. 개최국 미국도 꽤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내세웠고요. 마침 국내에 메이저리그 팬층이 확장되고 있던 중이어서 중계 명분도 있었습니다.


또한 최소 심판원들의 수준도 지켜졌습니다. 멕시코와 대한민국의 경기는 한국 선수들이 기대 이상으로 꽤 마음껏 기량을 뽐낸 것도 그 덕이죠. 또 한국 팀에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현지 중계진의 냉정하고도 정성 어린 중계가 있었습니다.

https://youtu.be/H-iSW2hUN10

2006 년 1회 WBC.



오오타니만이 아니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우승했을 때 국내 한 메이저리그 결산 기사의 제목은 '류현진으로 시작해 범가너로 끝난 커쇼의 시즌'이었습니다. 절묘한 제목이었습니다. 각각의 시점마다 주목받은 선수, 그리고 누가 알짜인가 하는 내용이 그 한 문장 안에 다 담겨 있었죠. 이를 빌어 표현해 보자면 이번 초대 프리미어 12 대회는 '오오타니로 시작해 오오타니로 끝난 대한민국의 대회'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의 우승은 축하해 마지않을 일이나 얼떨떨해서인지 어디를 어떻게 칭찬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에 반해 오오타니는 이 대회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의 내셔널리그야 투수가 타자를 겸업하지만 오오타니 같은 성적을 내는 사례는 없었죠. 100마일을 던지고 10개 넘는 홈런을 치는데 그것도 선발투수가 아닌 날에는 야수로 출장하는 선수. 호들갑도 세계 최고인 미국 언론에서는 '지구 최고 투수'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내구성에 대한 의심, 즉 구종이며 구속이며 체형까지 추후 팔꿈치가 고장 날 가능성, 그리고 자국에서의 스타 만들기 경향 등으로 비추어볼 때 '지구 최고'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그가 이번 대회에서 보여 준 모습은 시종일관 하이라이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 선수들의 고속 스플리터, 포크볼은 일본 스포츠 물리학과 생리학의 상상력이 오랜 기간 현장과의 교감을 거쳐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봐도 좋은데요. 손가락 사이에 공을 끼되 공을 진행방향으로 최대한 패스트볼처럼 강하게 보낼 수만 있다면 하는 상상은 꽤 오래전부터 현실이 돼 오고 있었습니다. 악력과 손목 힘을 보강해 공을 놓는 순간 공의 양쪽 면에 가해지는 힘이 공의 중심부를 바로 뒤에서 미는 힘과 같게 되도록 하는 릴리즈의 메커니즘, 이 때 패스트볼보다 훨씬 강하게 팔꿈치에 가해지는 충격을 강한 삼두근으로 완화하는 것 등은 투수의 투구에서 '만약'으로 남겨놓았던 부분이었죠. 오타니의 고속 포크볼은 그게 다 실현된 결과물이었습니다. 몇 년 전 미국이 열광했던 스트라스버그의 초고속 슬라이더도 있었지만 이른 부상으로 못 보게 된 데 비해, 오타니는 벌써 2년째 프로에서 이 공을 안정적으로 던지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사람 몸이니 그 구위를 제대로 다 버텨낼지는 모르겠지만요.


11050225_879954412074030_3771711197543002646_n.jpg 이미지 안에 출처는 들어 있으나, FSQ, RSQ는 머신이 아니고 프론트(F), 리어(R) 스쿼트의 약자입니다.

오오타니의 오늘을 만든 고교 시절의 과제들이라고 합니다. 우측 맨 위를 보면 구위를 위한 과제들이 있는데요. 엄밀히 패스트볼의 구위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투구에 관계된 모든 항목들에 선행해 해결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기서 스피드도, 제구도, 변화구도 다 나오는 것이죠. 지금 그가 던지는 포크볼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지만, 납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저런 태도가 오오타니만의 신화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르빗슈 역시 '내 투구폼은 고1 때 완성되었다'고 할 정도인데요. 다르빗슈의 SNS를 보면 퍼스널 트레이너의 일지를 보는 것 같습니다. 특히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후 재활 중인지라 좀 더 특별한 내용들이 담겨 있죠. 요즘은 한국 선수들 중에도 이런 학구적인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지만, 어린 선수들이 좀 더 이런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오타니? 오타 아니니?

그런데 자꾸 '오타니'라고 표기되는데요. 그의 성이 '大谷'인 만큼 '大'는 오오라고 표기하는 게 맞습니다. 실제로 한글 키에서 오른쪽 시프트와 스페이스 키를 활용해 일어를 입력해 보면 이 차이가 분명합니다. 저대로 오타니, 즉 'otani'라고 입력하면 '오'는 '小'로 나옵니다. 성이 바뀌어 버리는 것이죠.


Diamond no Ace - 15 -3.jpg 오타니(小谷)라니, 어쩐지 이런 귀여움체가 생각나네요. 중에서

아 물론 이건 일본인 본인들이 'Otani'라고 표기하는 데서 생긴 오류입니다. 외국인들이 일일이 한자가까지 알아서 표기하기는 애매한 노릇입니다. 그렇다고 이걸 'Ootani'라고 하면 '우타니'가 됩니다. 뭔가 직업이 바뀌어야 할 것 같군요. 그와 신장이 비슷한 연예인이라면 기타리스트이자 아베 총리의 부인과 염문설을 뿌리기도 한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가 생각납니다.



잡설

일본에서 오타니 이전 투타 겸업 선수가 없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너무나 그럴만한 사람이어서 오히려 현실성이 떨어지는데요. 바로 츠요시 신조가 그 주인공입니다.


사실 그의 투타겸업은 엄밀히 겸업이라기보다 시즌 중에 투수로 잠시 전향한 것이라 보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의 발상이 아니라, 일본 야구의 명장 중 명장이라는 노무라 가쓰야 감독의 진지한 제안이었다는 게 함정입니다.


신조가 노무라 가쓰야 감독과 참 궁합이 나빴다는 전설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데요. 특히 거금을 털어 베르사체 양복을 사 입었던 신조가, 노무라 감독이 베르사체를 입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르마니를 입은 후-여기까진 상관없었습니다만-갑자기 슈트를 바꾼 연유를 묻는 언론에게 "어른이 되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해"라고 해 신경을 긁기도 했죠.


https://youtu.be/WOxP8YQ1NYA

이건 그냥 이벤트 영상입니다. 걍 휘둘러주는 거잖아요.


하지만 노무라 감독은 누구보다 신조의 재능을 아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건 신조만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선수를 감독의 체스맨 정도로 생각하는 감독이 아니라 해당 선수의 재능이 최대로 발휘될 수 있는 포지션에 기용하고자 했죠. 데뷔 10년 차 시즌 신조는 강한 어깨와 정확한 송구로 1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감독의 눈에는 그의 어깨가 야수로서가 아니라 투수의 그것으로 어울려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그는 시범경기서부터 마운드에 오른 바 있습니다. 그는 강속구 투수는 아니지만 변화구로 땅볼을 잘 유인하는 편이었는데요. 하지만 투수란 다른 포지션과 달리 신체 관절의 집중 혹사가 일어나는 포지션입니다. 특히 진의 핏을 위해 하체 운동을 게을리했던 신조의 무릎은 투구에서 반복해 일어나는 체중 이동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참고로 신조는 오로나민 씨의 모델이었습니다. 올스타전 때 이 병을 들고 타석에 들어섰다가 삼진을 당하기도 했죠. 그러고 보니 전현무 씨도 그렇고, 오로나민 씨 측이 선호하는 모델은 나름의 기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쩐지 '마음의 소리'의 주인공도 괜찮을 것 같네요.


https://youtu.be/30ZWADtICc0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로나민 씨' 신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