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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먹은 화덕만두

차이나타운 십리향

by 휠로그

만두를 주제로 한 글을 청탁받았습니다. 보통 이런 류의 글은 쓰기가 쉬운데, 요구사항이 많기 때문입니다. 요구사항대로 개요를 짜면 되니까 훨씬 시간절약이 됩니다. 물론 글을 직접 짜는 것도 재미가 있지만, 사람들이 어떤 내용을 소비하고 싶은지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으니까요. 가장 좋은 것은 이런 주제를 정해 놓고 사례취재는 선택에 대략의 가이드만 주고 내 선택에 맡기는 것.


내용에는 화덕만두를 넣기로 했습니다. 방송도 타고 꽤 알려진 곳인데 고른 이유는, 그냥 제가 먹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침 일산 동국대 야구장에서 야구를 신나게 했던 터라 배가 고프기도 한 참이었습니다. 한 30분을 달려 차이나타운에 도착하니 벌써 그늘진 곳은 어둡고 차가워져 있었는데요.


이 날(12월 27일)은 예년에 비해 따뜻한 올 겨울 중 유독 추운 날이었습니다. 줄을 서는 게 고역일 수 있겠다 싶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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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이 줄을 처음 선 곳이고, 오른쪽 사진이 가게 쪽으로 한 10미터 정도 다가선 때입니다. 그 사이에 십리향 처마 즈음에 있던 햇볕이 골목 쪽으로 더 물러났네요. 그나마 바람이 덜 불어 다행이긴 했지만 발이 시려왔습니다. 요만큼 전진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20분. 주위사람들 모두 십리향 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들어본즉슨 이 정도 줄은 양호한 편이라고 합니다. 날이 춥기도 하고 일요일이기도 해서 차이나타운에 비교적 사람들이 없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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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동냥이 곧 정보

안쪽에 '복(福)'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는 항아리가 바로 화덕인데요. "저 화덕 안쪽 벽에 만두를 붙이는 거야." "난(이란, 인도 등의 빵) 같네." 뒤쪽에 선 사람들이 나름 이야기를 합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먹방, 쿡방의 발달로 요리나 먹거리에 대해서는 어지간한 실력자 아니면 콘텐츠 생산하기가 고역입니다. <마스터셰프코리아>라는 프로그램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미 전문가들을 긴장하게 할 만큼의 실력자들이 차고 넘친다는 뜻이죠. 요리 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콘텐츠 생산자들은 어지간한 지식으로는 이제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이나 즐거움을 주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긴 지식-근대 이후 정의된-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두에게 지식이란 걸 습득할 필요가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죠.


20151227_163934.jpg 날은 추워지는데 십리향을 찾는 사람들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완전히 처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주섬주섬 지갑에서 지폐를 준비할 때, 여긴 혹시 카드가 안 되는 곳이 아닌가 해서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돈을 찾아와서 줄을 다시 서야 하나, 그렇게 되면 완전히 깜깜해지겠네, 아니지 여기 여섯 시까지만 한다고 했던가. 머릿속에 계산이 복잡할 즈음 제 차례가 왔고, 다행히 카드로도 계산이 가능했습니다. 8천 원에 고기만두 4개를 담아서 나오는데 그 시간은 20여 초 정도였습니다. 사실 줄이 길어지는 것은 화덕에서 한 번에 구워낼 수 있는 만두의 양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더군요. 그래서 만두가 구워져서 나오면 줄이 빠르게 줄어들고 대열의 맨 앞쪽에 있던 사람들은 차이나타운 골목 여기저기로 흩어집니다. 뒤에서 그걸 보니 마치 긴 벌레가 주기적으로 뭔가 뿜어내는 것 같습니다.

20151227_174156.jpg 고기가 들어간 십리향 화덕만두. 빵 위에 검을 깨가 올라간 것이 고기만두 구분법이라고 합니다.

빵은 기본적으로 반죽을 쪄서 부풀리는 일반 고기만두의 피와 달리 쫄깃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다소 질기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BS 명화로 <십계>를 보았는데, 여호와가 이집트에 첫 아들을 거두어가는 재앙을 내릴 때 모세와 그의 일행은 식사 중이었습니다. 그 식사 메뉴 중 하나가 부풀리지 않은 빵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화덕에 구운 빵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일 년 중 서너 번은 러시아 이르쿠츠크에 들어가시는 아버지는 피로시키와 맛이 비슷하다고 하시네요. 피로시키는 쇠고기를 넣는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 합니다.


고기 외의 소는 단호박과 팥도 있지만 압도적으로 고기를 사 가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사서 금방 먹을 때는 안쪽의 뜨거운 육즙이 나올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사는 줄을 선 사람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더군요. 차이나타운 뿐만 아니라 요즘 좀 이름난 곳은 블로그조차 볼 필요 없이 현지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귀동냥만 해도 그 정보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밀도 높은 만두소, 먹지 않았다면 몰랐다

이 만두를 먹어 보지 않았다면 쓰면서 놓칠 뻔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건 만두 소였는데요. 피 안에 든 것은 일반적인 왕만두 소처럼 갈린 고기와 야채가 부스러진 입자 상태로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덩어리진 고기였습니다. 곱게 간 돼지고기를 좀 더 밀도 있게 뭉쳤는데요. 거기에 또 특징적인 것이라면 파였습니다. 보통을 파가 고기와 함께 갈려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고기를 다 다져놓고 뭉치기 직전 소 안에 신선한 상태의 파를 다져 넣은 형태였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씹을 때 파 향이 많이 나더군요. 그렇다고 맵진 않았습니다. 적당히 돼지고기 냄새를 잡을 정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만두소를 만들 때 파를 넣고 그냥 함께 다져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파가 뭉개지면서 비린 맛을 낸다고 합니다. 가끔 포장만두나 중국집 만두(대부분은 납품받는) 속에서 파의 들큰한 맛 끝에 살짝 도는 비린내가 있는데 그 때문인가 해봅니다.



가끔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글쓰기에서 취재의 가치를 높게 치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입니다. 어차피 몇 줄인데, 그거 때문에 사무실을 비우냐는 식입니다. 하지만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그 몇줄이, 콘텐츠의 격과 재미를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요. 콘텐츠의 재미는 다름아닌 미묘한 발견이 시작이고 끝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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