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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휠로그 Apr 13. 2023

유현주, 50대 현역 가자!

조로하는 KLPGA의 트렌드 바꾸는 선구자 되길

“한국 여자 골프는 피겨 같아.” 2023 시즌 KLPGA 국내 공식 개막전인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에서, 지난해 신인왕인 이예원(18, KB금융그룹)이 우승하는 장면을 보며 누군가가 한 얘기다. 피겨스케이팅의 전성기는 아무리 늦어도 20대 초반을 넘지 않는다. ‘퀸’ 김연아도 24세 시즌이던 러시아 소치 올림픽이 실질적인 마지막 국제무대였다. 물론 이는 한국 선수만의 현상은 아니니까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한국 여자프로골프가 이렇다는 건 긍정적인 평가만은 될 수 없다. 골프는 인생에 비유될 만큼 긴 호흡의 스포츠다. 한 인간의 성장을 볼 수 있는 드라마성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KLPGA 투어에서 치러지는 매년 30회 가까운 대회에서 20대 후반이나 30대 우승자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몸을 훨씬 격하게 쓰는 농구나 배구에서도 30대 후반 선수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봐도 이상하다. 한국여자프로농구(WKBL) 신한은행의 한채진은 만 39세다. 그보다는 어리지만 올해 만 35세인 김연경은 여전히 강한 백어택을 때릴 수 있다. 


김연경(이미지 출처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41386#home) 


물론 골프가 농구나 배구보다 편한 운동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인간이 평소에 쓰지 않는 횡 방향의 근육 사용, 발목, 손목, 팔꿈치 등 비교적 약한 부분에, 평생에 걸쳐 셀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이 가해지는 운동이다. 하지만 LPGA나 유러피언 투어에서는 여전히 30대 중반에서 40대에 달하는 선수들도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계 랭킹 50위로 아직 활동 중인 지은희는 1986년생, 만 37세다. 확실히 이해 비해서는 KLPGA는 조로하는 경향이 있고 꽤 많은 전문가들이 이를 문제점으로 지적해 왔다. 


물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승수를 많이 쌓으면 미국이나 일본으로 진출하는 선수가 많다 보니 그 공백을 기량 있는 신인 선수들이 메우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됐다는 논리가 있었지만, 최근 2~3년 사이에는 미국에 진출하는 KLPGA 선수들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상금과 대회수도 확대됐지만 국내에서 골프 인기가 높아지며 스폰서나 광고 비용 상승 등으로, 국내 환경과 대우가 더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KLPGA의 ‘피겨화’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2023 KLPGA 롯데렌터카오픈에서 우승한 이예원(출처 : 연합뉴스https://www.yna.co.kr/view/AKR20230411039600007)


언뜻 보면 이게 문제일 이유는 없다. 어느 종목이든 기량 있는 젊은 선수들이 많이 등장하면 인기의 지속성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정도의 문제다. 지금 한국여자골프에서는 데뷔 후 20대 초반에 승수를 확보하지 못한 선수에 대해 상당히 우려하고 ‘뭔가 안 되는’ 선수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무엇보다 선수 스스로가 그렇게 여기게 만든다. 2022년 투어 생활 4년 만에 첫 승을 올린 성유진(23, 한화큐셀)은 인터뷰에서 “나는 스스로 재능없는 선수”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유진은 그전 해에도 상금 랭킹 28위에, 한 번의 준우승을 포함한 5번의 탑 10 피니쉬를 이뤄냈다. 매년 정규투어에서 뛸 수 있는 상금랭킹 60위를 통과한다는 자체가 한국 여자골프에서 대단한 일인데 거기서 30위 안쪽의 선수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성유진은 2000년생이고, 우승 당시 만 22세였다. 


한화큐셀의 성유진(출처 : 한화큐셀골프단)


한국의 다른 스포츠 종목들도 물론 이런 성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유독 골프, 특히 KLPGA는 심하다. 프로야구에서는 ‘중고신인’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대성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JTBC의 ‘최강 야구’는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20대 초반에 모든 걸 이루지 않으면 실패자라는 생각은 최근 문제로 떠오른 한국의 수능과도 닮아 있다. 문제를 풀어도 한국은 풀이와 결과를 보는 게 아니라 시간을 본다.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틀린 게 된다. 20대에 못했으면 30대에 하면 되고, 30대에 못했으면 40대, 50대에라도 이루면 된다는 인생 전체를 보는 성공론은 통하지 않는다. 실제 한국 사회에서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이 있어도 그 사람들의 서사는 별로 취급받지 못한다. 왜 그럴까? KLGPA는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공부했으면 인서울 갔을 아이’라는 레토릭이 여자 골프선수를 키우는 동네에 통한다. 즉 공부 대신 선택한 것이니 일반 학업과 진학을 선택한 아이들과 페이스가 같아야 한다는 논리다. 골프라는 스포츠 자체가 돈이 많이 들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부모들이 최소 상위 중산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부모들의 생각이나 분위기는 짐작이 간다. 


그래서 새로운 메인 스폰서를 얻은 유현주의 ‘2024년 투어 복귀 목표’ 선언은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 방송과 광고 등으로 경제적인 면에서는 아쉬울 것 없는 유현주는 여전히 투어에 목말라 있는 스포츠 선수다. 유현주는 1994년 생으로 만 28세다. 아무리 여성이라도 운동 선수로서의 신체 능력이 떨어질 나이는 아니다. 큰 체격, 특히 탄탄한 허벅지와 넓은 상체 프레임을 활용한 부드러운 스윙은 쥐어짜는 힘 없이도 강력한 토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롱런에 유리한 조건이다. 


테일러메이드 어패럴 유현주 화보


유현주가 그간 시드전에도 도전했지만 실패한 것은 사실 전 소속사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유현주의 문제는 샷이 아니라고, 그의 투어백을 직업 메 본 김효주 프로가 말한다. 결국은 집중적인 경기 매니지먼트 훈련 경험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이는 연습과 체계적인 전지 훈련으로 가능한데, 이전 에이전시는 유현주가 그렇게 훈련할 시간을 주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그보다 당장 돈이 되는-물론 그렇게 계약한 관계니까-방송과 광고, SNS에 더욱 치중하게 했다. 


두산건설 위브 골프단에 합류한 유현주(이미지 출처 : 두산건설)


새로운 메인스폰서인 두산건설 위브 골프단의 분위기는 다르다. SBS ‘편먹고 072’ 출연은 진행하되, 소속 선수들과 똑같이 미국에서 전지훈련을 소화하게 했다. 위브 골프단에는 이름도 비슷하고 캐릭터도 비슷한 유효주 선수가 있는데 그 역시 데뷔 6년차인 2022시즌에 첫 승을 거뒀다. 거기에 단연 최고의 선수인 임희정도 있다. 자극이 될 만한 선수들이고 배울 것도 많은 이들이다. 


두산건설 골프단의 유효주 프로. 큰 키의 장타자, 미모라는 캐릭터, 이름도 유현주와 비슷하지만 지난 해 첫 승을 올렸다


그런 유현주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당장 올해, 초청 자격으로 뛸 수 있는 대회라도 뭔가 결과를 내보겠다는 말 대신 2024 투어 복귀를 위해 노력한다고 전했다. 2024년이면 만 30세다. 한국 여자골프 선수들 중 해외 진출을 하지 않은 상당수 선수들은 은퇴하는 시기다. 그가 조급하지 않기를 바란다. 첫 승이 30세면 어떻고 40세면 어떤가. 그가 50대까지 활동하며, 적어도 투어 6~7승을 기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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