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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휠로그 May 03. 2023

겸손한 출력? EV9에는 계획이 있다

성능 대신 주행거리와 편의사양에 집중, ‘패밀리카’의 가치

기아가 5월 3일부터 ‘더 기아 EV9(The Kia EV9, 이하 ‘EV9’)’의 사전 계약에 들어가며 상세 제원을 공개했다. 카니발보다 더 긴 3,100㎜의 휠베이스, 99.8kWh 용량의 리튬이온 배터리 팩은 E-GMP 플랫폼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제원을 보면 생각보다 출력이나 퍼포먼스에 집착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전기차 시장은 알다시피 출력 경쟁 중이다. 이미 585ps EV6 GT로 끝장을 본 기아가 무의미한 경쟁을 거부하는 것일까? 기아가 그리는, 출력 수치보다 더 큰 그림에 대해 생각해봤다. 




EV9, ‘겸손한’ 동력 성능의 의미


EV9은 기본 모델과 GT-라인으로 구분된다. 기본 모델은 최고 출력 150kW의 2WD와 283kW의 4WD로 나뉜다. GT-라인(GT-Line0도 최고출력은 283kW지만 최대 토크가 700Nm으로 기본 모델의 4WD보다 10Nm 크다. 아직 모터 사양은 미공개이나, 구동 방식은 EV6와 마찬가지로 싱글 모터와 듀얼 모터 차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인증 기준으로 1회 완충 시 최대 주행 거리 501km를 달성한 것은 기본 모델 2WD다.  그런데 최고 출력 150kW라는 수치를 환산하면 204ps다. 1.6리터 가솔린 터보인 현대 아반떼 N-라과 같다. 최대 토크는 350Nm(35.6kg∙m)로 2.0리터 가솔린 터보 혹은 3.5리터급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과 비슷하다.



듀얼 모터로 보이는 4WD의 최고 출력은 환산하면 384.7ps 수준이다. 물론 절대로 낮은 수치는 아니다. GT-라인의 경우 최대 71.3kg∙m 수준인데, 가솔린 엔진 SUV로 보면 3.0리터 트윈터보 엔진 수준. 견인력과 가속 성능, 고속 주행 지구력 등 모든 면을 기대하게 한다. 


GT-라인의 경우 77.4kWh 용량인 EV6 GT-라인보다 1kWh대비 출력이 약간 낮게 설정돼 있다. 전자는 최고 출력 239kW(325ps) 수준. 아무래도 대용량 배터리다 보니 안정성을 위한 배터리 세팅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출력이 높은 EV9 4WD와 GT-라인도 각각 454km, 443km로 여유로운 1회 충전 시 주행 거리를 자랑한다. 



EV9의 이러한 지향점은, 폭스바겐이 최근 공개한 플래그십 전기 세단 ID.7을 떠올리게 한다. 장르는 다르지만 WLTP 기준 700km/h의 주행거리를 확보하고 최고 출력은 210kW(286ps)대로 묶은 이 차는, 아직 전기차를 덮고 있는 환상과 거품이 걷힌 뒤 실제 자동차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전기차가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90% 이상 운전자들이 삶은 르망 내구레이스가 아니다. 



EV9의 동력 사양 역시 폭스바겐의 모델과 일치한다. 물론 올해 말, 2024년 국내 시장에 선보일 대형급 전기차들 중에는 여전히 고성능 지향의 차종들이 있다. 국내에서 인기 높은 볼보의 EX 90나 폴스타 3 모두 500ps 전후의 성능을 발휘하는 차들. 하지만 EV9의 다소 ‘겸손한’ 성능은 자연스럽게 이들과의 직접 경쟁도 피하고 보다 많은 소비자들이 있는 영역에서 경쟁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프리미엄을 안은 대중차, VW의 길 가는 기아?


폭스바겐은 대중차를 지향하는 브랜드였지만, 1990년대 중후반부터는 플래그십 라인업을 강화했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 등장한 페이톤, 지금까지도 인기를 누리는 투아렉은 폭스바겐 브랜드가 업마켓에서의 경쟁력을 갖도록 해준 공신들이다. 또한 골프 등 대중적 차종의 경우에는 고급차 고객의 세컨드카로 어필할 수 있는 고성능 트림을 마련해 전체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완전히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기아가 유럽 시장에서 걷고 있는 행보는, 폭스바겐이 2000년대 초 보여줬던 대중적 프리미엄 브랜드 도약의 모습을 잘 재현하고 있다. 특히 EV6의 경우에는 독일 자동차 시장에서 프리미엄급으로 통한다. 통상 브랜드 분류에서 ‘프리미엄’은 동급 대중, 양산 제품 브랜드(mass brand) 대비 1.5~3 배 가격을 책정해도 팔리는 제품이다. 실제 EV6는 최근 몇 년간 독일 올해의 차를 포함해 유럽 올해의 차 시상식에서는 프리미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등장한 EV9은 전기차 시대의 폭스바겐 투아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그 이상 가지 말란 법도 없다. 게다가 적어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에 있어서 EV9이 열세를 보일 만한 동급 차종도 찾기 어렵다. 사전 계약에 돌입한 EV9의 가격은 EV9 2WD 에어 기준 7,671만 원에서 시작한다. 가장 비싼 GT-라인도 8,781만 원. 배터리 용량과 크기를 감안했을 때 비싸다고도 할 수 없다. 결국 불필요한 동력 성능으로 가격을 올리기보다 실제 소비자들이 편의를 누릴 수 있는 부분에서 가치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EV9이 패밀리카 성향의 차란 점을 감안하면 더욱 합리적인 길이다. 


폭스바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건 현재 폭스바겐이라는 회사의 위치를 생각하면 나오

는 답이다. 



GT-라인 말고 GT의 가능성?


물론 EV9의 동력 성능이 이렇게 겸손하게만 정리될 가능성은 낮다. GT-라인이라는 이름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AMG-라인과 다르지 않은 의미다. 즉 EV9 GT의 등장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



공식적으로 기아 측의 언급은 없었지만 EV9 GT의 등장은 기대해 볼 만한 소식이다. 만약 실현된다면 최소한 EV6 GT 이상의 성능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아직 이르지만 적어도 620~630ps 급의 최고 출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EV9의 고객 인도가 상당한 시일을 요구할 것인 만큼 GT에 대한 소식은 생각만큼 이른 시기에 나오진 않겠으나 적어도 2023년 말에는 대략적이나마 언급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어찌 됐든, 대중적 확장이 가능한 등급과 트림이 있다면 차종과 브랜드 가치의 업그레이드를 견인할 트림도 있어야 한다. 원래 프리미엄으로 출발하지 않았지만 프리미엄 영역에 안착해 가려는 볼보와 폴스타가 500ps대의 출력을 발휘하는 전기차를 공식적으로 출시할 시점도 2023년 말 2024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아로서도 고성능 트림의 가능성을 완전히 접을 순 없다. 물론 이것이 앞서 언급한 ‘폭스바겐의 길’과 배척적인 가치는 아니다. 골프도 각 라인업에서 고성능 라인업을 운영하거나 그랬던 이력이 있다. 



EV9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기아의 입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줄 차임에 틀림없다. 동시에 전기차 시장에 나타날 또 다른 변화를 대표할 모델이기도 하다. 고성능의 가능성을 꿈꾸며 대중적인 가치와 교감하는 플래그십, 이제 소비자들의 평가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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