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텔과 마세라티 협업 핑크 그레칼레의 이모저모
바비가 잘 나간다. 영화 <바비>(감독 그레타 거윅, 주연 마고 로비∙라이언 고슬링)이야기다. 해외 개봉은2022년인데 2023년 7월 19일 국내 개봉한 이래 4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국내 박스오피스 4, 5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이 바비에게 힘이 되는 특별한 차가 있다. 최고 출력 530ps의 그레칼레 트로페오 기반 ‘바비 그레칼레’다.
상당수의 남성들은 마세라티를 잘 알지만 마텔은 모른다. 마텔이 바비(Barbie) 인형으로 유명한 회사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투자 강연가 존 리가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경제와 주식에 대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예를 드는 이야기에 꼭 나오는 게 바비와 마텔 이야기다. 뭐, 바비 인형을 사주지 말고 바비 인형을 만드는 마텔 사의 주식을 사주는 게 현명하다는 그런 이야기였는데, 정작 그 때 마텔은 회사가 넘어갈 지경이었다. 이를 두고 ‘그러니까 자산관리 맡긴 고객들이 도망간다’라는 빈축도 나왔다.
그런데 그 마텔이 지난 1, 2년간 바짝 부활했다. 게임에 밀려 갈수록 죽어가던 완구 시장은 팬데믹 기간 동안 집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아이들로 인해 다시금 수요가 증가했고, 마텔도 그 덕을 봤다.
마세라티는 절치부심 자체 개발한 고성능 네튜노 엔진 기반의 슈퍼카 MC20을 내놨다. 또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확장하는 한편, 포뮬러 E를 통해 전동화 역량을 담금질하는 등 혁신을 위한 노력도 이어가고 있다. 그레칼레는 그런 노력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모델이다. 포르쉐 마칸, 알파로메오 스텔비오 콰드리폴리오, 메르세데스 벤츠 GLC의 AMG 라인업 등이 대표적인 경쟁 차종이다.
그런 점에서 마텔의 바비와 마세라티 그레칼레는 잘 어울릴 수밖에 없다. 어려운 시기, 헤리티지라는 힘 하나로 버틴 존재라는 동질감도 있을 것이다.
바비 그레칼레의 색상명은 ‘오뜨 핑크(Haute Pink)’ 혹은 ‘후크시아 핑크(Fuchsia Pink)’다. 참고로 이 컬러는 미셸 오바마 여사가 가장 좋아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이 핑크는 외장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곳곳에도 적용된다. 마세라티가 자랑하는 고급 가죽의 스티치도 이 컬러이며 센터콘솔 및 도어 트림에도 이 컬러가 적용됐다. 시트 헤드레스트에는 이 핑크 컬러로 바비를 상징하는 ‘B’ 레터링이 크게 들어가 있다.
외장의 ‘B’ 레터링은 블랙이다. 프론트 펜더 좌우 덕트와 마세라티의 튜닝포크 엠블럼이 붙는 C 필러에도 들어가 있다. 프론트 펜더 덕트 아래에는 이 핑크 그레칼레를 독점 판매한 미국 고급 백화점 니만 마커스의 레터링이 들어가 있다.
이 두 차량의 판매 수익금 중 10%는 마텔의 캠페인인 ‘’드림 갭 프로젝트(The Dream Gap Project)”에 기부됐다. 2018년 새로운 바비 시리즈의 런칭과 함께 시작된 이 캠페인은 다양한 사유로 꿈을 실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세계의 소녀들을 후원하는 프로젝트다.
사실 이 모델은 다시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 지난 2022년 크리스마스 시즌 북미 한정으로 2대만 생산됐다. 판매 가격은 33만 달러(한화 약 4억 2,900만 달러)였다. 이 차를 다시 갖고 싶다면 경매 시장에 나오는 중고가 유일할 것이다. 아마 돌아오는 겨울에 경매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높은데 경매와 기부가 일반화된 미국인만큼 훨씬 높은 가격에 나올 가능성도 있다.
바비는 많은 페미니스트에게 공격의 대상이기도 했다. 바비의 아름답고 비현실적인 외모가 남성들이 바라는 가치를 반영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영화를 만든 그레타 거윅 감독은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사회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1950~60년대, 바비는 차를 몰고 은행도 갔다”며 바비 캐릭터의 진취성을 이야기했다.
사실 영화 <바비>는 생각보다 무거운 철학적 배경을 담고 있다. 죽음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기 시작한다는 개념이나 그것이 바비를 가지고 놀던 소녀의 심경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내용 등은 연작을 기대할 수 있는 세계관이다.
사실 브랜드의 존립에 대한 고민은 마세라티 쪽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세기만 해도 여러 번 회사가 사라질 뻔 했고, 최근 들어 라인업의 대중화를 위해 채택했던 파워트레인은 정체성을 애매하게 만들었다. 판매 부진보다도 마세라티라는 브랜드가 희미해졌던 것이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마세라티는 분명 다르다. MC20과 그레칼레 그리고 추후 등장할 폴고레 등의 모델들은 마세라티의 새 시대를 이야기한다. 혹시 누가 아는가? 2023년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이 협업의 후속 버전이 나올지.
참고로 드레스업에 관심 있는 그레칼레 오너들이라면 이 핑크 그레칼레는 충분히 레플리카로 구현해볼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