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구속보다 제구" 타령,
그만 보고 싶다

그러면서 오타니랑 사사키 로키는 부럽나?

by 휠로그

수준 이상의 선발 투수로서 그리고 준수한 타자이자 야수로서 동시에 활약해 '이도류'를 성공시킨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 올해 일본 프로야구 2년차로 리그를 폭격할 준비를 마친 사사키 로키(치바 롯데 마린스). 부활을 다짐한 탈삼진 머신 후지나미 신타로(한신 타이거즈).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150km/h 후반대의 공을 쉽게 뿌리는 강속구 투수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그 공을 무척 안정적으로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죠. 물론 후지나미 신타로는 최근 2~3년 정도 부진했지만 혹사의 여파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그 외에도 일본 프로야구에는 150km/h 이상을 쉽게 뿌릴 수 있는 투수들이 많습니다. 고등학생 중에도 구속이 빠른 선수들이 즐비하죠. 심지어 도 대회 탈락 학교에도 구속만 따지면 부럽지 않은 선수들이 적지 않습니다.


요즘 일본 프로야구를 중계해주지는 않으니 가끔 단신으로만 보게 되지만, 그럴 때마다 '일본엔 매년 괴물이 나오는데 왜 한국에는...'이라는 탄식 같은 논평이 더해지는 걸 가끔 볼 수 있습니다. 물론 2022 시즌 데뷔하게 될 한화 이글스의 문동주가 150km/h 후반대의 공을 쉽고 안정적으로 던지고, 아직 고교생인 덕수고 심준석도 150km/h 대를 자유자재로 던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프로에서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에서 이런 선수들이 프로 입문에서 부진하면, 다음 날 나오는 기사에는 어김없이 '구속보다 제구' 이런 야구인들의 논평이 사족처럼 낍니다. 제구가 되지 않는 강속구는 볼에 불과하므로 차라리 구속은 3~4km/h 덜 나와도 구석구석을 찌르는 피칭과 절묘한 변화구 구사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일본에서 그렇게 많은 강속구 투수가 나오는 건, 그들은 제구보다 구속이 중요하다 생각해서일까요? 일본의 강속구 투수들은 어떻게 그렇게 안정적으로 패스트볼을 컨트롤할 수 있는 걸까요?


골프의 경우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43세인 저는 어릴 적 주니어 골프 선수로 프로의 꿈을 키웠...다가 좌절해 그냥 공부해서 대학 갔습니다. 그런데 그 때의 골프와 지금의 골프 교수론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골프는 공을 정확하게 맞춰서 똑바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저처럼 체격 조건이 좋지 않은(성인인 현재 163cm, 58kg)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런 교육이 이뤄졌죠. 그런데 지금 주니어 골프 선수들에게는 충분한 스윙으로 자신의 폼을 만들어 공을 강하게 타격하는 것부터 가르칩니다. 방향성이라고 하면, 그렇게 강한 폼, 100% 이상의 힘으로 쳐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방향성이기 때문에, 방향성부터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몸의 잔근육을 통해 맞추는 감각을 익히는 골프가 아니라 큰 근육으로 골프의 메커니즘을 깊이 받아들이는 프로페셔널 스포츠 교육입니다.


다시 야구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골프와 야구는 몸을 쓰고 힘을 모은 후 사용하는 메커니즘이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지금 학원 스포츠에서 말하는 제구는 골프에서 잔근육으로 똑바로 칠 것만 종용하던 30년 전의 야바위 골프와 다를 게 무엇이 있습니까? 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스포츠 물리학을 잘 공부하고, 메커니즘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한 코치가 많아져서 다행이지만 아직도 일부 야구인들은 어린 강속구 투수들에게 제구 운운하면서 다트 던지기 같은 투구를 시킵니다. 큰 근육의 사용 기법을 균일화하기 위한 코칭이 아니라 당장의 과녁만 맞히기 위한, 투구라고도 할 수 없는 야바위를 가르쳐 놓고는 제구를 잡았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야구대표팀이 겪은 수모는 투수진 구위의 문제였습니다. 일부 투수를 제외하곤 강호들의 예봉을 꺾지 못했습니다. 고영표는 생소한 유형의 선수, 이의리는 전통적으로 일본 타자들이 약한 좌완 속구 투수였지만 두 번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한국의 강속구 투수들이 발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문제는 그들이 강속구를 던지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강속구를 균일하게 못 던지는 메커니즘이 문제였던 겁니다. 그 강속구를 균일하게 던질 수 있도록 하는 코칭이 아니라 공을 살살 던져서 표적을 맞추는 것이 무슨 제구입까? 골프에서 드라이버를 원래 치던 힘의 80%로 친다고 생각해보세요. 똑바로 나갈 것 같습니까? 오히려 감기고 밀리기 일쑤입니다. 몸을 강하게 돌려서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것은 타이밍과 밸런스, 리듬입니다. 이는 선수가 지신의 몸에서 낼 수 있는 최대를 활용해야 잡힙니다. 70~80%의 스윙으로 공을 미는 게 무슨 밸런스이며 무슨 타이밍이며 무슨 리듬입니까?


아쉽게도 그런 기사가 또 나왔습니다. 지방 모 구단의 강속구 투수가 '구속은 150km/h면 충분하다'며 제구에 신경쓰겠다는 각오를 밝혔더군요. 얼마나 거지 같은 코칭스태프입니까. 운동선수가 자기 제일의 장점을 적당한 수준으로 무디게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걸 안정화시켜주는 메커니즘을, 수입해 와서라도 이식해주진 못할 망정, 선수가 스스로 그런 입으로 말하게 하다니, 이건 허위자백을 위한 고문보다 못한 짓입니다.


만약 올해 데뷔한 강속구 투수들, 작년에 기대 속에 데뷔했으나 아직 1군에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장재영 같은 선수가 '구속을 내려 제구를 잡았다'는 류의 기사가 나온다면, 한국 야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향수만을 그리워해야 하는 처량한 처지가 될 겁니다. 일본 투수들이 만루에서 연속 변화구를 던질 수 있는 역량은, 강속구를 버리지 않고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는 스포츠물리학 연구에 기반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고 한국이 일본을 앞지른다고요? 꿈에서 깨시길 바랍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번엔 달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