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과 이해가 가장 손해 없는 인간관계를 만든다는 박지원의 가르침
즐겨 듣는 유튜브 채널에서 심히 안타깝고 괴이한 사연을 들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전하는 이야기이므로,지어낸 말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으며 그런 것이 의심되는 경우도 많으나 그 중 한 사람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자신이 알고 있는 업의 범위를 결코 넘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가 전하는 남의 이야기는 오로지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전하는 것이며, 그래서 사실과 사실 간의 아귀가 잘 맞았습니다. 그래서 실제 일어났음을 믿을 법한 것입니다.
최근에 들은 사연은 이랬습니다. 어느 사람이 속한 모임에 돈을 잘 쓰는 부잣집 자제가 있었습니다. 그와 어울린 이들은 은연중 그가 베푸는 것을 익숙하게 여기게 되었고 때로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 사람이 많게 되었습니다. 무릇 한량없는 부를 가진 이가 친구를 사귐은 이와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이가 한 순간 곤궁한 상황에 몰려, 서민들이나 주고받을 수준의 금전 거래를 그 모임의 일원과 하게 됐습니다. 이 사람은 한동안 돈을 갚지 못했는데, 여흥의 자리에는 참석했다는 이유로 돈을 빌려준 이가 그를 욕보였습니다. 이에 화가 난 그 사람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 반 년 가까이 연락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큰 부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듯 곤궁함은 일시였고 다시 예전 인연의 지인들을 모아 여느 때처럼 연회를 즐겼습니다. 이 연회에 금전 관계가 얽힌 이도 섞였습니다. 부자 지인은 어마어마한 주대가 나오는 곳에서 유흥을 즐기고는, 돈을 빌려주었다가 그에게 욕을 보인 사람의 것만을 제외하고 술값을 지불했으며, 그에게는 분배된 술값을 지금 당장 내지 않으면 곤욕을 치를 것이라며 겁박하다가 결국 그에게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돈을 받아 자기 몫의 주대를 계산한 이는 이후 돈을 갚으려 했으나, 부자 지인은 연락을 피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람을 보내 자신이 소유한 건물의 비밀한 거소로 불러 회초리로 매우 쳐 지난 날의 분노를 앙갚음하였을 뿐만 아니라 6년 후에도 그러한 보복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패가망신하게 됐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잘못한 사람들입니다. 부자는 친구를 사귀는 방법이 그릇됐습니다. 아니 애초에 그는 친구를 사귈 마음이 아니라 자기가 베푸는 돈과 여흥에 익숙해져 자신에게 복종할 사람이 필요했던 건지 모릅니다. 거기에 자신에게 돈을 빌려주고 모욕한 자를 응징한 방법이 지나치게 폭력적입니다. 사실 이로 봐서는 그가 지방의 준재벌급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서울에 근거를 둔 500대 기업 총수 일가라면 보는 눈이 많아 그런 짓을 하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곤궁해졌을 때 돈을 빌려줬던 사람은 인연을 너무 가벼이 생각했습니다. 그 모임에서 그가 부자 지인으로부터 얻은 혜택은 수십 만 원의 가치 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조한 사람들은 비열하고 저열하며 한 치의 진심도 없이 사람을 대한 거렁뱅이들이었습니다. 아무리 부자 친구가 돈 쓰는 것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한 번쯤은 ‘내가 가진 것으로 내놓을 수 있는 밥상과 술상은 이런 것에 불과하지만 기껍게 즐겨 주길 바란다’며 고마움을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표했다면, 그 부자 지인도 그렇게까지 행동했을 리는 없습니다. 결국 그 지인들이 부자 지인의 폭력성과 의심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이들 모두에게, 특히 곤욕을 당한 이에게, 시간을 돌린다면, 아니 시간을 돌릴 수 없어도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책이 바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입니다. 번역이 잘 돼 있습니다. 특히 열하일기 중의 <경개록(傾蓋錄)>을 읽어보길 권합니다. <경개록>은 말 그대로 우산 아래서 나눈 이야기라는 뜻인데, 그만큼 한 번이라도 말을 섞을 정도의 인연이 된 이들과의 이야기를 연암이 기록해 놓은 짧은 내용입니다. 사람의 성격과 언행, 출신, 벼슬 및 개인이 받은 인상을 짧게 기록했는데, 은근히 농담이 섞여 읽기에도 나쁘지 않습니다.
연암 박지원은 <경개록>을 통해 아무리 짧은 시간 머물다 헤어지게 될 이들이라도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데 있어서 예의는 물론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함을 잘 나타냅니다. 혹은 학자나 벼슬아치, 상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과 이야기하는 동안 그는 우선 타인에게 최대한 예를 갖춥니다. 아무래도 외교관을 수행한다는 입장도 있읐겠으나 그는 어디서든 예의를 지켜 사람을 만났습ㄴ다. 그리고 자신의 학문을 기반으로 하여 타인들과 대화할 때 품격을 지켰습니다. 또한 함부로 타인에게 술값을 계산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진심을 다해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되 자신 처지의 유불리나 상대의 약점을 근거로 삼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태도라고 누군가에게 쌀쌀맞게 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말할 때, 행동할 때 그 말이나 행동이 나에게 달콤한가, 유리한가를 따지지 않고, 그가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야만 누군가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에 대해 감지할 수 있습니다. 분석과 판단이 아닌 존중과 이해야말로 가장 객관적인 태도입니다. 그 존중과 이해가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걸 갖출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의 여부를 모르겠다면 상대의 행동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행동을 통해 싫고 좋은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이야기를 할 것이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