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X 300h 오너가 렉서스의 2세대 NX를 만나보고
지난 6월 21일과 22일, 제주에서 열린 렉서스 '뉴 제너레이션 NX & UX 미디어 시승회'에 다녀왔습니다. 준중형급 SUV인 NX는 풀체인지를 거친 2세대, UX의 경우에는 브랜드 최초의 BEV(Battery Electric Vehicle) 즉 흔히 말하는 전기차인 300e를 시승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중 UX 300e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고 먼저 NX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 합니다. 제가 1세대 NX300h의 오너이기도 하고요. 자동차 자체에 대한 상세 정보보다는 코어, 충성 고객의 유지와 커먼, 미래 고객의 획득이라는 기로에 놓인 브랜드의 고민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신형 NX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플래그십 세단인 LS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8년 한국에 출시된 5세대 LS는 '재미있는 차 만들기'라는 모토로 개발된 신형 플랫폼인 TNGA(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의 후륜구동용을 기반으로 제작됐습니다. 전체적으로 섀시에 적용되는 소재들의 강성을 높이고 강성별 소재 결하을 스포츠카와 비슷한 느낌으로 구성한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자동차 성능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졌고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SUV조차 트랙을 탐하는 트렌드가 고조되는 가운데,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따르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략이 소비자들의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구름 같은 승차감은 어디 가고 돌바닥에 앉은 듯한 피로감이 몰려온다는 불만이었습니다. 비단 한국만의 불만은 아니었죠. 북미에서도, 유럽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같은 TNGA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적용한 ES는 인기를 누렸는데 말입니다. 토요타와 렉서스는 어리둥절했지만 페이스리프트 모델에 개선된 댐퍼를 적용하여 최댛나 이전 세대와 비슷한 안락감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정량적인 데이터는 아니지만 렉서스를 선택하는 이들은 정숙성과 안락감을 가장 큰 선택의 이유로 꼽는데 그 메리트가 사라진 데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정량적 데이터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젊은 시절 딱딱한 차는 충분히 즐겨봤다는 이들이 더 이상 고생하기 싫어서 선택한다는 이야기도 있죠.
LS의 경우가 좀 극단적이긴 하나, 렉서스의 코어, 충성 고객들은 다른 브랜드에 있어서 여러 모로 보수적인 경향을 가집니다. 어떻게 보면 북미 소비자들의 성향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죠. 탄탄한 코너링을 보장하는 단단한(rigid/stiff) 섀시 세팅보다 유연한 감각을 좋아하고, 배기량 당 출력이 높은 엔진보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회전 질감의 엔진을 선호합니다. 렉서스의 하이브리드가 미국에서 인기를 얻는 것도 바로 이 부드러움의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이죠. 1세대 NX의 하이브리드에 적용된 2.5리터 엔진은 최대 토크를 15kg.m도 되지 않게 설정했는데 이는 엔진과 모터의 전환 시 이질감을 극도로 완화하고 정숙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치고 나가는 힘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정지상태에서 100km/h 도달 시간이 무려 9.1초나 됩니다. 물론 고속도로 추월 시에는 회전 질감의 토요타답게 고속 주행 중에는 빠르고 부드럽게 엔진회전수를 높이고 모터 출력을 더하지만 초반 가속이 굼뜬 것은 약점으로 꼽히죠.
그런데 렉서스 오너들은 이런 점을 약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드뭅니다. 자동차 정보 습득력이 높은 요즘 고객들이 이걸 모르고 선택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목적지 도착 시간은 크게 차이도 나지 않는데 순간순간 확 치고 나가도록 밟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이들이 렉서스를 찾는 이들입니다. 오히려 강한 순발력을 발휘하는 차들에 따라오는 내구성 문제와 정비 등에서의 비용 증가 등에 질린 경우라고도 할 수 있죠. 독 4사를 탔거나 이미 보유하고 있지만 일상을 편하게 해줄 차가 필요해서 찾은 브랜드가 렉서스란 겁니다. 그리고 그런 코어 고객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그럼에도 신형 NX는 변화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새로운 플랫폼의 적용이 예고돼 있었으므로 예상할 수 있었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차는 가벼워졌고 가속은 타이트했으며 스티어링휠은 빡빡했고 차는 다소 딱딱해졌습니다.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은 커졌고 볼 것도 많아졌습니다. 제가 탔던 차는 NX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종인 450h+하고도 최상위 트림 F 스포츠였는데, 기존 NX의 시트가 최고급 사무용 의자였다면 이건 스포츠카 시트에 준하는 수준으로 바뀌었습니다. 몸에 딱 붙는 느낌은 훌륭했지만 동시에 이게 렉서스인가 하는 생각이 들 만했습니다.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은 렉서스가 NX를 통해서 바라는 것이 기존 고객의 유지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LS를 통해 고객들의 반응을 경험해본 이들이 타 브랜드들이 지향하는 스포티한 감각을 받아들인 것은 분명 코어 고객들에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있었습니다. 독일 브랜드 자동차를 오래 타다가 특유의 성마른 분위기가 싫어서, 제네시스 같은 한국 브랜드는 운전자 편의를 넘어선 기능 포르노 같은 느낌이 싫어서 렉서스를 선택한 것이었는데 이번 NX는 '그게 대세라면 따르겠다'라는 태도였습니다.
사실 이런 선택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모든 마케팅과 개발 전략의 가치는 결과론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가 나오면 '이래서 잘 됐다'라고는 하지만 그 선택이 다른 사안에도 같은 결과를 불러올지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럼에도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변화의 시기입니다. 통상 변화의 시기에는 기존 고객을 보수적으로 지키기보다 위기를 기회 삼아 도전하라는 것이 기업계의 금과옥조이기도 합니다. 자동차처럼 덩치가 큰 제조업 분야마저도 위기에는 혁신론이 힘을 얻습니다. 지금은 자동차 역사상 가장 큰 변혁기죠. 이전의 성격을 모두 버릴 것을 요구받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은 불황의 초입이기도 합니다. 불황엔 코어, 충성 고객을 중심으로 하는 마케팅이 정석이죠. 이건 빅데이터도 판단을 제대로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일 겁니다.
물론 렉서스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이런 선택을 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또 기존 고객들 중에서도 새로운 변화의 방향을 요구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죠. 대형 인포테인먼트 스크린, 컬러 그라데이션 숫자 표시창이 있는 공조장치 조절 레버 등은 매력적이었습니다. 토글화한 기어 레버, 기어박스 앞쪽으로 놓인 무선충전 패드,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기존 소비자들의 반발보다는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사양들이죠.
하지만 역시 연비 그것도 실연비를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직접 경험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경우에는 공인 복합 연비 14.4km/L, 도심 15km/L, 고속도로 13.7km/L입니다. 배터리 용량이 18.1kWh로 꽤 큰데도 공차 중량을 기존 NX300h보다도 가벼운 2,030kg에 묶었습니다. 덕분에 실제 주행 연비는 18km/L 가 넘었습니다.
배터리 용량이 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답게 주행 모드가 세분화돼 있는데요. EV 모드와 하이브리드 모드를 선택해 주행하거나, 자동 전환할 수 있는 모드, 배터리 충전을 우선으로 할 수 있는 엔진 중심의 모드까지 다양합니다. 지표도 여러 가지로, EV 주행의 비율도 알려줍니다. 다만 EV 우선 및 EV/하이브리드 자동 전환은 배터리 양이 부족하거나 급가속 시에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렉서스의 ADAS 시스템인 LSS+에는 야간 자전거 감지, 주간 모터사이클 감지 기능이 더해진 긴급 제동 보조 시스템(PCS), 저속으로 주행하다가 급가속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전방 충돌 방지, 도로 표지판 어시스트(RSA) 등이 적용되었습니다. 도로표지판 어시스트의 경우 다이내믹 레이더 크루즈 컨트롤 사용 시, 헤드업 디스플레이 창에 현재 도로 표지판의 속도를 보여주고 속도조절을 권하는데요. 이 조작이 조금 복잡해서 DRCC가 해제되기도 했습니다. LSS+의 기능이 추가된 것은 좋지만 뭔가 조작 단계가 많아졌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습니다. 단점이라기보다 이용자 개개인의 적응이 관건일 듯합니다.
NX의 개발진은 코어 고객과 현재 가장 핫한 트렌드를 좋아하는 커먼 고객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 후자에 가까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핵심 개발자들은 '1세대 NX가 아니라 IS의 SUV화를 염두에 두었다'며 비판의 예봉을 피해가려고 합니다. 그럴듯한 말이지만 과연 지금의 NX 오너들이 IS를 그리워할까요? IS 가 준중형급 후륜구동 세단에서 독특한 성과를 냈고 나름의 입지도 있지만 해당 영역에서 눈에 띌 족적을 남긴 차라곤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코어 고객과 미래 고객 사이에서 고민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 렉서스뿐만은 아닐겁니다. 그 독일 브랜드들은 전기차가 싫다고 아득바득 이를 갈아대는 고객들은 눈치를 보며, 최대한 전기차 같지 않은 전기를 만들려는 괴상한 시도에 골몰하는 중이죠. 그렇게 따지면 주행 질감에 대한 약간의 불만을 조정하면 되는 렉서스의 입장은 오히려 편할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