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 벗어난 전기차, 진짜 인프라를 고민할 때

도로, 주차장 등 전기차 하중에 대비돼 있나

by 휠로그

전기차가 캐즘(chasm, 초기 수요 해소 이후 다음 수요 사이의 간극으로 인한 침체)을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듯하다. 2025년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총 22만대를 넘었는데 이는 전년 대비 50~60% 성장한 실적이자 2023년과 2024년의 침체를 완전히 벗어난 수치다. 국내 제조사들이 고가형 전기차에만 집착하지 않고 실용적인 전기차 개발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 BYD와 같은 중국 브랜드의 가성비 전략, 테슬라의 할인 전략도 크게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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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전기차를 아직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다. 감정, 감성적인 이유도 있으나 전기차가 주는 편익이 기존의 자동차를 대체할 만큼이 아닌 상황에서, 전기차 중심으로 주어지는 혜택 등에 불만이 있는 경우가 아닐까 한다. 논리적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하지만 전기차를 위한 진짜 인프라가 준비됐느냐는 지적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충전이나 화재는 오래 전부터 드러난 문제라 비교적 빠르게 해법이 마련돼 간다. 의외로 문제는 가까운 곳에 있으나, 놓치고 있는 것들이다.


1. 도로는 충분히 튼튼한가?


전기차는 동급 내연기관 차종에 비해 무겁다. 심지어 하이브리드보다도 큰 공차중량을 자랑(?)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요소가 많다. 배터리는 물론이고 구동 모터 유닛도 그러하다. 전기차 플랫폼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서는 큰 직경의 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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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의 무게 때문에 도로가 파손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기차 운전자들의 안전이 걱정되는 상황 때문이다. 2020년 이후 한국 도로의 지반 침하로 인한 사고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고속도로의 포트홀 문제가 심각하다. 2024년, 한국도로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380건 정도에 불과했던 고속도로 포트홀은 2024년 1,103건으로 급증했다. 가장 사고가 많은 곳은 부산과 춘천을 이으며 내륙을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중앙고속도로가 압도적이며, 그 다음이 서해안 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다. 모두 극한 기상현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여름 폭염과 겨울 혹한, 결빙 등이 반복된다. 특히 중앙, 중부 고속도로는 국내 골재 기업들이 포진한 곳이다. 골재 운반용 트럭은 과적 문제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도로 조건과 차량의 체급이라는 변인을 통제했을 때, 전기차 타이어가 노면과 접촉할 때의 하중은 내연기관차 대비 20% 정도 무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살펴봤듯 부품들이 크다. 그런데 전기차의 타이어는 큰 내경을 가지면서도 효율을 위해 폭이 좁게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단면적 당 하중의 집중이 일어난다. 즉 결락 위험이 많은 도로를 지날 때, 주행 중인 차량 바퀴 바로 아래서 결정적인 파손일 일어날 확률은 전기차 쪽이 높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건 전기차 뿐만 아니라 육중안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 시승했던 레인지로버 스포츠 PHEV는, 일반적인 레인지로버 대비 전장이 약간 짧은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3톤이 넘었다.


[사진 2] 캐딜락, 2026년형 올-일렉트릭 에스컬레이드 IQL_전면.jpg


전기차의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진다면, 전기차 그 자체도 도로의 수명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50년대 후반 미국 도로교통공무원협회(AASHO)가 수행한 대규모 실험 결과에 따르면, 도로 파손율을 자동차 중량의 4제곱에 비례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서울시 도로는 상당수가 노후화되고 있다. 물론 시 차원에서 '전담 주치의'를 꾸려 시설물을 관리하고 있지만 급변하는 기후 상황 등에 대처하기는 부족한 상황이다.


2. '노인학대' 철제 주차장


한국의 안전 분야 정책이 아쉬운 것은 꼭 눈에 보이는 사고가 나야 이를 수습하고 대책을 마련한다는 점이다. MBTI 식으로 말하면 '극 S(감각형)' 성향. 즉 눈에 보이는 것만 실재를 인정하는 경향인데, 이런 이들은 기우(杞憂)를 싫어한다. 한국에서 사고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은 기나라 사람이다.


본인도 그럴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기나라 사람이 하나뿐만 아니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내가 무너질까봐 걱정하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노후한 옥외 철제 주차장이다. 철제 기둥과 복공판(deck plate)으로 이루어져 있는 옥외 주차장은, 미어터지는 한국 도시에 숨통을 틔워주는 시설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설들이 무척 낙후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안전 점검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이 사유지에 지어진 사익 시설이라서다. 연면적 3,000제곱미터 미만이라면 건물주의 자체 점검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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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복공판이 지지할 수 있는 하중도 시대 변화에 따라 그 기준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KDS 41 12 00 (건축구조기준-하중)에 따르면, 옥외 주차장용 복공판의 경우 폭 2.5미터, 길이 5미터 주차장용을 기준으로 했을 때 3,825kg을 견뎌야 한다. 물론 최근 자동차들의 전동화로 인해 차량 중량이 무거워진다는 것을 아는 관리자들은 입차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질은 규정의 이면에 있다. 보이지 않는 위험은, 단순히 복공판 한 장이 한 차량의 무게를 견디느냐 마느냐와는 다른 사안이다. 시설을 이용하는 차량들의 평균적 중량 증가는 스트레스 누적을 의미한다.


서울만 해도 비좁은 골모고 사이에 자리잡은 사설 주차장이 적지 않다. 이런 주차장들의 경우 이용 차량들 중 전기차의 비중이 커진다면 그만큼 전체적인 스트레스가 크게 가해진다는 의미다. 차량 크기가 비슷한 기아 EV5(싱글모터)와 혼다 CR-V 하이브리드 전륜 구동 모델의 경우, 모두 19인치 휠을 장착했을 때, 전자가 후자 대비 170kg 이상 무겁다. EV9의 듀얼모터 롱레인지 19인치 휠 모델은 2.5톤을 넘는데, 현대차 팰리세이드보다 500kg 이상 더 나간다. 아찔한 사고를 걱정하는 것이 과연 기우일까.


거듭 나는 전기차에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 일상적으로도 장점이 많은 파워트레인이다. 이미 현대차 아이오닉은 급속충전만으로 50만km 이상을 주행하고도 안정적인 배터리 상태를 자랑한 사례가 알려져 있을 정도다. 또한 토크가 강하지만 변속 충격 같은 것이 없어 폭이 좁은 나선형의 주차장을 오르내릴 때 차량을 훨씬 안정적으로, 침착하게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은 사회적 인프라와의 조화를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 지금 언급한 두 가지 문제는, 전기차가 모빌리티의 대세가 되기 전에 대비하고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