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장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30년 전, 저는 프로골퍼를 꿈꾸던 주니어 선수였습니다. 벌써 30년 전이라고 쓰게 됐네요. 1990년대 초반의 일이고, 그 때 태어난 손흥민 선수가 이제는 만 30세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오랜 세월입니다. 그 때 제게 골프를 가르쳤던 아버지와 코치님들은 이제 칠순을 바라볼 겁니다.
제가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 어린이용 맞춤 클럽이란 건 찾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대도시라곤 하지만,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는 피팅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아이가 골프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던 정도였습니다. 클럽을 처음 잡았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여성용 클럽을 짧게 잡고 쳤습니다. 중학생이 돼서도 키가 별로 자라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힘은 붙다 보니 어른 남성용 클럽을 짧게 잡고 휘둘렀죠. 그래도 연습량이 있다 보니 어느 정도 공을 맞추는 데는 소질을 보였고, 진로의 가능성 중 하나로 이걸 택하게 됐습니다. 물론 전폭적인 지지는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버지가 전문직이긴 했지만 지금 골프에 드는 비용보다 그 당시에 요구되던 비용이 상대적으로 더 비쌌죠. 제대로 된 레슨 코치를 구하기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나빴던 건 클럽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마추어 골퍼들이 연장 탓을 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골프는 굉장히 예민한 운동이라, 몇 시간 전까지 잘 맞더라도 갑자기 공의 터치조차 되지 않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골프에서 중요한 것은 항상성인데요. 서는 것, 클럽을 잡는 것, 휘두르기 전에 클럽을 흔들어 보고 테이크백 궤도를 확인해보는 것 등 전부가 일관돼야 합니다. 그래서 루틴(routine)이라는 것이 신주단지처럼 생각되는 겁니다. 그런데 클럽이 좋지 않다는 건 클럽과 몸이 조화를 이뤄 이 항상성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잘 맞아도 어쩐지 요행인 듯한 기분이 들고 다음에 똑같이 이렇게 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쌓인 채, 매 스윙과 샷을 운에 맡기려고 하게 됩니다.
좋은 장비는 이런 망설임을 주지 않습니다. 골퍼가 최적의 장비를 만나는 구매와 되팔기의 반복은 마치 평생 함께 할 배우자를 찾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싱글 혹은 그 이상의 영역에 다다른 골퍼들이 클럽을 쉬 바꾸지 않는 것은 그런 과정을 거치고 안착했다는 의미입니다.
저의 경우 체격과 근골격계 발달 과정에 맞는 클럽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왼손잡이였습니다. 처음부터 오른손으로 배운다고 왼손잡이가 오른손으로 잘 칠 수 있는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골프의 샷은 극히 짧은 순간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 때 쓰는 힘은 아무래도 우세한 손의 힘이 필요합니다. 저는 항상 왼손 등을 돌리는 힘으로 공을 쳤는데 이 과정에서 왼팔이 자연스럽게 접혀 옆구리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페이드 샷의 피니시처럼 손 자체가 위로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른손에 일부러 힘을 줘서 임팩트 후 접는 동작을 만들려고 하면, 항상 오른 팔꿈치가 저렸습니다. 순발력을 발휘할 근력이 없었고 이는 트레이닝을 해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거의 오른손잡이의 오른손 같은 왼손잡이인 것이죠. 결국 그러다 보니 드라이버와 아이언으로 충분한 거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웃지 못할 결과지만 그래서 저는 어프로치가 기막히게 좋았습니다. 지금도 그러한데,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컨 샷이 그린에 바로 떨어지지 않았고, 그 전에 드라이버 티샷이 투 온을 시도할 만한 거리로 오지 못했습니다.
비단 키가 크냐 작으냐, 왼손잡이냐 오른손잡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몸을 얼마나 이해하는 골프를 하느냐입니다. 스윙의 항상성이 완성돼야 자기에게 맞는 클럽을 찾는다는 말은, 제가 생각하기엔 맞지 않습니다. 물론 샷의 완성도는 연습에 따라 달라지는 건 맞습니다만, 자신의 체격 조건에 맞는 클럽은 초보자의 입장에서 휘두르더라도 느껴질 만한 좋은 밸런스로 다가옵니다. 그렇지 못한 다른 클럽과의 차이가 큰데, 초보 시절엔 이를 설명하지 못하고 그저 '좋다'는 감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클럽의 탄성, 무게, 길이 등이 자신의 신체 반응 능력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느냐가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것이죠.
물론 이런 의미에서의 좋은 장비가 가격 면에서 고가 장비와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닙니다. 투어프로용이 아니라면 좋은 클럽일수록 자유자재이고 다루기가 쉬운 쪽으로 발전합니다. 자동차의 자동변속기와 마찬가지죠. 운전자의 직접 컨트롤보다 자체 변속기의 로직이 더 완벽한 상태가 요즘의 자동변속기입니다. 클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캘러웨이의 경우는 이미 수 년 전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해 수십만 번의 시타 테스트 시뮬레이션을 하고 거기서 최적의 조건을 찾아 클럽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샤프트의 탄도 등으로 골퍼들의 수준을 구분하지만 역시 동일한 실력대의 골퍼들이라면 큰 편차 없이 칠 수 있도록 만듭니다. 오히려 그러한 조건 속에서 각자가 코스를 대하는 상상력과 샷을 만들어가는 임기응변력을 겨룰 기회가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타이거 우즈가 '동년배의 거구들과 승부하는 데 장비의 발전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그러니 골퍼 여러분, 주변의 오지랖과 조언에 굴하지 말고, 좋은 장비에 대한 욕심을 부리시기 바랍니다. 짝을 찾는 여정만큼이나, 좋은 클럽을 찾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