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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휠로그 Oct 02. 2022

내가 결혼을 못한 이유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고 성장통을 공유할 각오 

"죄송해서 돈 못 받습니다"


저는 결혼 사진을 찍어본 적은 없습니다. 스냅 정도는 보조로 한두 번 정도 해봤지만, 역시 이건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부의 아름다운 모습, 멋진 신랑의 긴장감 등을 따로 담는 건 그래도 할 수 있는 작업이지만,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 선 모습을 담는 게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수백 장의 파일 속에서, 두 사람의 감정이 담긴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습니다. 물론 그 중 OK 컷은 있었지만, 다른 작업처럼, 아 이거가, 최소한 이 컷은 이 일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장면이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돈을 받기에는 양심에 찔렸습니다. 


그러다 최근 이전에 촬영한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아 이건 웨딩 스냅의 레퍼런스로 써도 되겠다'하는 장면이 몇 개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DS 오토모빌의 SUV 모델인 DS7 크로스백 루브르 에디션과, 임솔아라는 모델과의 개인작업 결과입니다. 135mm 화각이고, F2.8인데요. 여기서 저 의상에 베일을 쓰고, 화면 앞쪽에 남자의 실루엣을 흐리게 넣어 85mm 화각으로 찍었다면 영락없는 웨딩 스냅 중 한 장면이겠죠?



아래 사진도 역시 샵에 들른 신부의 느낌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장소는 이천 도자마을이죠. 공방 안의 은은한 조명과 아직 피기 전인 꽃나무, 그리고 커튼이 여러 가지를 준비하는 신부의 설렘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뒤 콘크리트 벽의 줄눈은, 결혼이 주는 안정감을 상징한다, 뭐 그렇게 해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저도 웨딩 스냅 사진에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의뢰에 응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차량을 한 대 협조받고, 희망하는 커플의 지원을 받아 무료로 한 번 진행하는 이벤트를 만들어볼까 그런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결혼 사진은, 결혼은 그런 게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해서, 좋은 결혼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저는 스스로의 작업에 회의를 버릴 수 없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찍는 웨딩 스냅은 그저 잘 건진 사진 몇 장 따위일 수 없습니다. 흔하디 흔한 그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요즘 절감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제가 미혼이라서 결혼을 앞둔 커플들의 감정을 살려낸 사진을 못 찍는다는 건 변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크고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을까? 내가 결혼을 앞둔 두 남녀의 모습에서 파악하고 담아내지 못하는 감정은 무엇이며 그 감정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나는 그 비슷한 마음이라도 가져 보려 노력한 적이 있나? 애초에 그것이 뭔지는 알고 있나?


지금 같은 시대에 결혼을 선택하는 이들은 결코 무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리하며 유능한 이들입니다. 쉽지 않은 문제를 풀어내겠다는 의지와 성실성도 갖춘 이들입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 중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들을 보며 고민해봤습니다. 결혼이라는 결심에 다다르고, 또 결혼한 몇 년 후까지 이들은 큰 두려움과 마주해야 합니다. 그걸 넘어가며 함께 성장하겠다는 각오, 두려움을 이겼을 때의 설렘과 평화가 공존하는 그 느낌이 바로 결혼식 사진에서 건져내야 할 두 사람의 감정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감정을 갖는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그런 각오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두 사람에게서 제가 공감할 수 있는 순간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장도 때가 있다, 때를 놓친 자는 얻을 수 없다

공부도 때가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장하는 결혼 생활을 할 기회와 때는 정해져 있다는 말은 실감합니다. 


결혼생활에서의 성장은 어느 정도 경제적인 면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이는 선택이라고 봐도, 어찌 됐든 경제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 특히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복지와 건강 진료 등의 것들은 모두 돈이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결핍은 부부가 미래를 향해 가는 데 걸림돌입니다. 이를 얻기 위한 과정에서 성장통이 따릅니다. 

그러니 결혼의 시기가 늦어질수록 결국 거의 개별적 성장을 어느 정도 이룬 상태에서 만나지 않는다면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20대끼리 결혼하면 월세 오피스텔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40대끼리 결혼하면 적어도 직주 근접성이 좋은 아파트가 하나는 있어야 이 결혼을 보는 주변인들의 시선도 부드러울 것입니다. 아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외적 환경은 부부의 성장 상태에 따라 견딜 수 있을 만한 것인지 견디기 어려운 불편함인지가 갈릴 겁니다. 


저는 누군가와 함께 성장하고 고통을 나누며 삶을 확장해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외피 중심의 문화를 혐오하면서도 오히려 그 힘이 두려워, 함께 성장하는 행복조차 피했습니다. 두려움에 졌습니다. 그런 주제에 그런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손을 잡고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 


저는 지금도 자신이 없습니다. 길고 긴 성장의 시간을 함께 지켜볼 용기가 없는데, 웨딩 스냅은 무리입니다. 저는 가짜 웨딩 스냅을 흉내내는 것이 전부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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