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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휠로그 Mar 18. 2023

자동차 기자가 본 미국 골프공 규제 논란

문제의식도, 목적도, 방법도, 합의점도 없는 논란

세계 골프계가 시끄럽다. 로열 앤 에인션트 골프 클럽(R&A)와 미국골프협회(USGA)는, 2026년 남자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경우 성능 제한을 지키는 공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할 전망이다. 선수들을 포함한 전문가 사이에서도 찬반 논란이 뜨겁다. 



골프장 전장이 늘어나서 환경을 파괴한다고?


골프공의 비거리는 단연 소재 공학과 관련이 있다. 일단 골프공의 제원은 다른 종목의 공처럼 제원이 정해져 있다. 무게는 45.93g으로 통일되고 지름은 4.11~4.27cm 내에서 조절된다. 여기서 코어가 일그러졌다가 복원되게 하는 것, 추진력과 양력이 최적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스핀을 만들어내는 것 등이 제조사의 기술이다. 



골프공의 코어는 금속과 결합한 폴리부타디엔 고무로 이뤄져 있고 커버는 우레탄이나 설린(sulyn)이라 불리는 특수 플라스틱으로 이뤄져 있다. 코어 제조 기술은 당연히 고무와 관련된 제조업체들이 강점을 갖고 있다. 세계 1위의 골프공 브랜드 타이틀리스트의 모기업인 아쿠쉬네트는 1910년대 매사추세츠 주에서 설립된 고무 및 라텍스 회사다. 같은 이유로 자동차 타이어 제조사 역시 산하 혹은 형제 기업으로 골프공 제조사를 갖고 있다. 스릭슨의 모기업인 스미토모 고무도 산하에 타이어 브랜드인 던롭이다. 나이키 철수 이후 타이거 우즈가 사용하고 있는 브리지스톤은 말할 것도 없다. KLPGA 대회를 주최하는 세인트나인도 넥센타이어 산하 브랜드다.


R&A와 USGA의 골프공 반발력 규제의 이유는 환경 비용이다. PGA의 경우, 과거와 달리 메이저리그나 농구 등에서 활약할 수 있는 운동 신경의 선수들이 강력한 스윙을 장착했는데 공의 반발력까지 뛰어나니, 이런 선수들 사이에 변별력을 만들어내려면 코스 전장은 점점 길어져야 한다. 이 경우 골프장이 넓어져야 하고 그만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 등 전설적 선수들은 물론 USGA 전문가들은 2010년대 초중반부터 이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 골프공의 소재이기도 한 고무와 플라스틱의 개발 방향이 다른 산업 예컨대 자동차에 기여하는 방식을 생각하면, 골프볼 규제의 환경 요인론은 다소 역설적이다. 우수한 마찰력을 발휘하면서도 강한 탄성의 고무나 우레탄 소재의 타이어는 구동 저항을 줄여 연비를 높인다. 연장되는 수명 역시 환경 영향 저감에 기여한다. 


가벼우면서도 경도가 우수한 특수플라스틱 도료는 차량의 실내와 외관 주요 부분에서 안전과 디자인 우수성 향상에 기여한다. 또한 차량 무게를 줄여 역시 연비를 향상할 수 있다. 


물론 자동차의 경우도 이런 소재의 적용만으로 친환경성을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소재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친환경적인가 하는 논란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목적은 세부적인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실제로 소재 기업들은 소재 수급 과정에서까지 환경 영향을 저감하는 밸류체인 강화를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실질적인 성과도 내고 있다.


이런 흐름을 보면 R&A와 USGA가 말하는 전장 증가로 인한 환경 영향이 과연 얼마나 논리적인 것인지에는 의심이 간다. 차라리 14개의 골프 클럽을 사용하는 능력이 아니라 드라이버-웨지-퍼터로 이어지는 골프의 단순화 때문에 공의 반발력을 규제해야 한다는 이유가 더 설득력 있다. 



그런 점에서 2017년, 타이거 우즈의 골프공 규제 제안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던 타이틀리스트의 수장 월리 율라인의 지적은 날카롭다. 타이거 우즈와 계약한 브리지스톤을 깎아내리는 발언이 다소 아쉽긴 했지만, 기술력으로 공정 경쟁을 하지 않고 골프 단체의 힘을 빌어 게임의 판을 바꾸려 한다는 의심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R&A와 USGA는 또한 코스가 너무 크고 거창해져 부동산 분양업자들만 배불린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미국처럼 땅이 넓고 불모지가 많은 나라에서, 녹지에 가까운 골프 코스를 더 만드는 것이 왜 친환경적이지 않은지는 명확지 않다. 현재 자동차 제조사들은 앞다퉈 숲을 가꾸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전장만으로 골퍼들을 어렵게 할 수 없다면 자동차 제조사들의 도움을 받아 아름드리 나무로 미로를 만들어버리는 것은 어떤가? 소나무 17그루면 내연기관차 자동차 1대가 1년간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는데 말이다. 



프로용 공과 아마추어용 공은 다르니까 괜찮다고?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만든 LIV 골프로 이적한 선수들 중 상당수는 돈 외에도 ‘골프를 재미없게 만들려는 PGA의 다양한 노력’을 꼽았다. 최근 극한의 장타 도전을 포기한 ‘람보’ 브라이슨 디섐보도 USGA의 골프공 규제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 바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빨리. 쿠베르탱이 창시한 근대 올림픽의 슬로건의 3가지 덕목은 사실 스포츠의 가치다. 스포츠는 끊임없이 상식을 파괴하며 발전했다. 이승엽의 56홈런을 왜 기다렸고 사사키 로키의 퍼펙트 게임에 왜 열광하나? 비거리를 줄인 공으로 골퍼들의 창의력 부족을 개선하겠다는 발상은, 의도가 어쨌건 안이하다. 영국 문화를 싸잡아 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자동차 분야에서도 그렇고 영국이 관련된 분야에서는 유독 관습에의 안주와 고집으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은 게 우연이기만 한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규제가 적용되는 공을 프로 경기에만 적용하면 된다는 생각은 아예 R&A와 USGA 스스로 골프를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아마추어는 프로페셔널 선수가 되기 위해 기량을 연마하는데, 경기 공이 다르면 기술도 달라져야 한다.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이 실력의 차이로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장치에 의해 단절되는 것이 과연 스포츠 정신에 맞는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물론 최근의 PGA 경기에서 선수들의 플레이가 다소 비슷비슷한 방식이고 정해진 정답을 찾아가는 느낌은 있다. 애초에 문제가 없다면 이런 이야기도 안 나왔을 것이다. 2022년 기준으로 북미에서 PGA 투어의 TV 시청률은 전년도 대비 크게 하락했는데 특히 일요일 파이널 라운드의 시청률이 전년도의 60%에 그친다는 보도도 나왔다. 위기 의식이 그만큼 큰 것은 사실이고 R&A와 USGA도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방법이 맞느냐는 것에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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