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되고, 힐링이 되는 곳'
한양도성 시민 순성관은 한양도성을 순성하며 모니터링을 하고, 보수나 이정표가 필요한 부분을 보고하며 우리 유산을 지키는 활동을 한다. 결국 문화재를 지키는 것은 국가도 법도 아닌, 우리의 관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시민 순성관님들의 노력으로 한양도성에는 새로운 길이 생기고, 무너진 성벽이 보수가 되었다. 한양도성을 걷는 분들께 한양도성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해설사 활동도 함께 진행하고 계신다. 우리는 시민 순성관님을 직접 만나뵙고,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설국도성의 첫 번째 대면 인터뷰였다. 우리는 긴장한 마음을 가지고 남산 구간 근처의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 임정화 시민 순성관님께서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며 진심을 다해 임해주셨고, 덕분에 우리는 첫 인터뷰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Q1. 현재 한양도성을 지키는 시민순성관님이 약 120명 정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각 구간을 나누어 활동하시며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하고, 관광객 분들에게 문화제를 설명해주시기도 한다고 알고 있는데요. 혹시 임정화 순성관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으신가요?
기본적으로는 한달에 한번씩 개인 순성과 팀 순성을 병행하는걸로 진행해 왔습니다. 그리고 봄, 가을이나 특별한 기간에는 캠페인 또한 진행했어요. 보통 진행했던 캠페인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낙산 공원에서 진행됩니다. 여장 위에 올라가서 다리를 밖으로 내민다거나 하는 위험한 행동을 하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원래는 여장이 전쟁 시 던지는 용도로 쓰인 곳이라 안정적이지 않아요. 그래서 사람과 성곽, 둘 다 위험한 행동이기 때문에 ‘올라가지 말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왕산에서도 비슷한 캠페인을 진행했죠.
Q2. 2019년 한양도성 문화제에서는 ‘시민순성관이 바라보는 한양도성’이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셨던데요. 이런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저희가 순성을 할 때 모니터링도 하지만 보고서 용으로 사진도 찍거든요. 한양도성이 굉장히 예쁘기 때문에 그런 사진을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 때 작품을 냈는데, 사진전을 진행한 첫 해에는 도록도 만들어 혜화동의 전시 센터에 전시도 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흥인지문 도성 박물관 올라가는 갈대 밭에 전시하여 시민들이 오고가며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보통 시민분들은 흥인지문 아니면 낙산, 이 정도만 알고 계세요. 그래서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고, 이런 사진 전시회를 통해 ‘이렇게 예쁘고 멋진 곳이 있는지 몰랐다’며 다른 구간도 찾아가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또 저희가 도성 문화제를 진행할 때 흥인지문에서 수문장 체험을 기획했습니다. 저희도 군사복을 입고, 시민들과 관광객 분들도 옷을 입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죠. 특히 외국인 분들이 너무 재미있어 하고 좋아시더라고요. 대화는 잘 통하지 않았지만, 얼굴 표정에서 다 보이더라구요. 옷이 반응이 정말 좋아서 줄 서서 입어보고 그랬죠.
작년에는 코로나 상황이라 많이 힘들었지만, 비슷한 활동을 진행하긴 했습니다. ‘동대문을 지켜라’라는 프로그램으로 축제처럼 기획했죠. 올해는 순성관 활동도 팀으로 못 모이는 상황이라, 한양도성 문화제를 개최하지 말자는 목소리가 큰 상황입니다. 작년 ‘동대문을 지켜라’는 체험 키트를 만들어 관광객 분들께 드리는 활동을 진행했어요. 집에서 큐알 코드로 활동 키트를 즐기는 방법을 영상으로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원래는 활쏘기나 수문장 옷 입어보기 같은 활동을 진행했어야 했는데 많이 아쉬웠죠. 하지만 지금 기획하고 있는 활동은 아주 많답니다.
Q3. 굉장히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시민 순성관님께서 이런 의미있는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일반 직장을 그만두고 홍보 해설사 활동을 하기 위해 알아보던 중이었습니다. 사실 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죠. ‘돌 쌓아놓은게 뭐 대수라고’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별로 안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설과 봉사를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성균관 지킴이’라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재에 대해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는 활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에 시민 순성관 모집 공고를 봤고, 호기심에 지원했죠. 선발되고 난 후 교육을 받고 나니 돌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하게 여겨지고, 애착을 가지게 되고, 내가 사는 동네에 이렇게 중요한 문화재가 있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Q4. 임정화 순성관님께서는 2015년부터 6년가까이 시민 순성관 활동을 해오셨는데,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활동이 있을까요?
2017년에 단순히 순성하고 모니터링을 하는 것을 너머 새로운 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공부방을 만들었습니다. 3년간 진행을 하며 한달에 한번 씩 도성 박물관에서 책도 읽고 전문가 분도 모셔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죠. 그리고 다른 문화재에 종사하신 분들과 교류하기도 하며 여러 활동을 했습니다. 사실 순상관 분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으세요. 그래서 컴퓨터로 보고서를 쓰는 방법을 몰라서 활동 인정을 못 받으신 분도 계실 정도로, 전자기기에 미숙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을 위해 컴퓨터 교육도 하고, 찍어 둔 수많은 사진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보관을 한다던지 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호응이 좋아서 즐겁고 재밌게 한 것 같네요. 또, 한양도성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많은 성들을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산성을 걷는 사람들’이라는 모임도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도 1년에 네다섯번은 다녀오는 식으로 활동을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시민순성관 활동을 하며 모니터링한 결과를 보고하면, 조금 늦더라도 저희의 의견이 반영되는 걸 볼 수 있어요. 그럴 때면 그래도 내가 이 활동을 통해 한양도성에 기여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깨진 돌을 보수하고, 이정표가 없는 곳에 이정표를 만든다던지 하는 결과를 눈으로 확인했을 때 제일 뿌듯한 것 같아요.
Q5. 한양도성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유적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도 이번 활동을 하면서 한양도성의 가치와 숨겨진 역사에 매번 놀라는데, ‘한양도성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이런 정보를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한양’하면 궁궐 위주로 생각을 하잖아요. 임금님의 그 모습을 떠올리지만, 사실 임금과 신하, 백성이 있는 성곽까지가 한양의 완성이거든요. 그래서 한양이라고 하는 이 도시는 성곽까지 포함해야 완성이 된다는 걸 강조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한양도성은 외국의 성들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국의 자금성이나 유럽의 성들을 가면 다 평지에 엄청나게 높은 산을 쌓는데, 우리나라는 높은 산 위에 성을 지었거든요. 정말 이런 수도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만의 특별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네요.
Q6. 한양도성은 도시와 어우러진 모습을 하고 있다는 특징도 있는 것 같아요. 현대인이 바라보는 한양도성은 어떨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순성관을 하며 매우 건강해졌습니다. 현대인들은 도심에서 힐링을 찾으려 하잖아요. 한양도성은 도심 속에 있지만, 이 길을 걸으며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힐링을 제공할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산성을 걷는 사람들’ 모임에서 순성을 하며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오시는 분들이 굉장히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람소리, 새소리, 땅의 느낌을 느끼며 하는 간단한 명상입니다. 한양도성만의 가치를 잘 이용하면 현대인들에게 좋은 기억을 주는 장소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만리장성을 여행했을 때, 해설사 분께서 만리장성을 ‘세계 최대의 무덤’이라고 표현하더라구요. 사실 한양도성을 만들면서도 이에 대한 설화가 있을 정도로 죽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돌 하나하나가 소중해 보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찾아내고 알려드리면 더 풍성한 한양도성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7. 시민 순성관 활동을 하면서 한양도성의 모든 것을 알게 되셨을 것 같아요. 관광객이 아닌 관리자 입장에서 본 한양도성은 또 다를 것 같은데, 현장에서 바라본 한양도성 관리의 아쉬운 점이나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들이 있을까요?
제일 아쉬운 점은 끊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성곽을 볼 수 있게 되어있으면 순성을 하면서도 계속 성벽을 따라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도시화되어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그래도 저는 옛날보다는 사람들이 한양도성에서 순성도 많이 하시고,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능 프로 같은 곳에서 한양도성이 자주 등장하고, BTS도 한양도성에서 찍기도 했고요. 제가 순성관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낙산공원에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이제는 밤에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알려져 있더라고요.
광인문에서 올라가는 성곽의 길을 건널 때 표시가 없었습니다. 자주 길을 잃게 되는 구간이었는데, 이런 부분이 나중에 반영이 되어 이정표가 생기고 바닥에 화살표도 생겼습니다. 점점 개선되어 가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렇게 변화되었으면 좋겠네요.
Q8. 아마 이 인터뷰를 통해 시민순성관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시민순성관이 되기 위한 자격조건이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이 두가지가 없다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사가 아닌 억지로 해야하는 숙제가 될 수 있거든요. 그리고 도성을 잘 지켜서 후손에게 물려줘야 겠다는 주체의식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튼튼한 다리. (웃음) 보통 한 구간 당 최소 3시간에서 4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열정이 있으시다면 되겠지만, 우선은 몸 관리를 잘 해서 건강한 몸으로 오시면 좋을 것 같네요. 단순히 모니터링하고 쓰레기만 줍고 끝나는 것이 아닌, 보고서를 작성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경험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Q9. 마지막으로 한양도성을 감상하려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한양도성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주세요!
등산의 묘미는 전망을 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코스마다 보는 전망이 정말 다르거든요. 전망 하나만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양도성은 전망이 다 다르고 또 예쁘다는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Q10. 시민 순성관님께 한양도성은 어떤 의미인지 한 문장으로 말씀해주세요.
저에게 한양도성이란, 친구가 되고 힐링이 되는 곳입니다.
임정화 시민 순성관님께서는 시민 순성관이 입는 유니폼을 입고 오셨다. 인터뷰가 마무리된 후 우리는 함께 남산 구간을 걸어보았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한양도성 유적 전시관을 방문하며 임정화 시민 순성관님의 생생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었지만, 한양도성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카페와 회사가 모여있는 도심에서 조금만 걸으면 이런 자연과 역사를 만날 수 있다니, 역시 한양도성은 현대와 과거가 연결다리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