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성준 Oct 28. 2020

마이너 영화 수입업자의 가치3

조 기자의 연예수첩 49

이전 회에서 이어집니다


지난달 칸 국제영화제 마켓에서 만난 한 수입업자는 "제 아무리 '흙속의 보석'같은 외화를 어렵게 사 오면 뭐하나. 극장망을 끼고 있는 대기업 배급사들과 손잡지 않을 경우, '퐁당퐁당'(교차상영을 뜻하는 영화계의 은어)은 고사하고 개봉 자체가 어렵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영화계 관계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부가판권 팔아먹고 사는 보따리 장사들이 망한다고 무슨 악영향이 있느냐"며 비아냥대고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균형 있는 발전과 문화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대단히 안타까운 현실이다. 마이너 영화 수입업자들도 한국영화 산업의 보이지 않는 한 축이며, 이들이 있어야만 관객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한국영화로는 채워지지 않는 문화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요가 먼저 바뀌어야 할 때다. 관객들이 먼저 블록버스터가 아닌 소규모 외화들도 가끔씩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모두가 우~하니 몰려가 바람둥이 천재 사업가의 슈퍼 히어로 원맨쇼만 넋이 빠져라 보는 광경은 조금 재미없지 않나?


수요 즉 관객들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문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 이전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극장을 찾는 관객들 자체가 줄어든 마당에 문화의 다양성을 운운하는 것은 얼핏 사치스럽고 한가하게 들릴 법한 얘기다.


그럼에도 우리가 볼 수 있는 외화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프랜차이즈물과 넷플릭스 상영작으로만 한정되는 미래는 별로 반갑지 않다. 소수의 최상위 포식자들만 살아남는 생태계는 결코 건강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마블 슈퍼 히어로물로 대표되는 블록버스터 쏠림 현상이 심해지기 전인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정은 요즘과 달랐다. 마이너 수입업자들이 들여온 외화들 가운데 일 년 중 많으면 서 너 편이 '깜짝' 흥행에 성공했다. '깜짝' 흥행작 대부분은 천문학적인 제작비 대신 기발한 아이디어와 탄탄한 연출력,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의 호연을 앞세워 틈새시장을 파고들곤 했다.


물론 작품만 좋아선 그냥 히트할 수 없다. 제 아무리 잘 만들어진 영화라 하더라도 수입하지 않으면 공식적으로 볼 방법이 없다. 그래서 수입업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완성품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나리오 감독 출연진 등 극히 제한된 정보만으로 '흙 속의 진주'를 미리 골라낼 줄 아는 이들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감식안과 촉이 곁들여질 때 '깜짝' 흥행작이 비로소 탄생되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대가 맞아 그냥 본 영화인데 의외로 재미있게 감상했다면 그건 우선 제작진과 출연진 덕분이겠지만, 괜찮은 작품을 기획 단계부터 알아본 수입업자들의 공이기도 하다.


만나서 혹은 건너 건너 전해 듣고 있는 그 동네 상황은 얼마 전부터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매우 우울하기만 하다. 코로나19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직격탄을 맞아, 개점휴업을 넘어 문 닫기 일보 직전까지 이르렀다며 울상이다.


한 수입업자는 "카운터를 맞고 쓰러졌는데 다시 해머링 파운딩으로 확인사살당하는 종합격투기 선수 같은 신세"라며 한숨만 내쉬었다. 또 다른 수입업자는 "한 번씩은 대박이 터지던 시절, 번 돈으로 건물이나 사 둘걸 왜 계속 이 짓거리를 고집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처지를 한탄했다. 반면 "허리띠 졸라매고 산지 꽤 됐다. 이골이 나서 아무렇지도 않다"며 짐짓 너스레를 떠는 쪽도 있으니 그야말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외화 수입업의 이 같은 위기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때 영화 산업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와 코로나19라는 외부 영향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이므로, 솔직히 관객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럼에도 지금의 상황이 조금은 걱정스럽고 안타깝다. 계층 간의 이동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영화계마저 이른바 '언더독'의 반란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다. 


듣기에 따라선 다소 불량스러운(?)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영화 한 편 수입 잘하면 팔자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산업적으로 역동적이고 건강한 모습이다.

그러나 요즘 같아선 그 같은 상황은 아예 꿈도 못 꾼다. 앞서 얘기한 대로 할리우드 불록버스터 프랜차이즈물과 넷플릭스 아마존 등 글로벌 OTT의 상영작 등 소수의 최상위 포식자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인생도 영화도, '마이너의 역전 신화'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추세다. 그래서일까? 세상 살기 참 재미없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




















작가의 이전글 마이너 영화 수입업자의 가치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