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기자의 연예수첩 59
참으로 허망한 마무리다. 왠지 극적이어야 할 결말부에서 줄거리를 이끌어가던 주인공이 절대자의 갑작스러운 계시로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춘 격이다. 얼마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머나먼 이국땅 라트비아에서 숨진 고(故) 김기덕 감독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앞서 지난 5월 '이젠 언급조차 조심스러운 김기덕과 홍상수'란 제목으로 고인을 이미 한 차례 다룬 적이 있다. 이들이 한국 영화계와 상업적으로 결별한 듯한 이유에 대해 분석했던 예전 칼럼을 바탕 삼은 글이었다. 엇비슷한(?) 처지의 로만 폴란스키와 우디 앨런까지 모셔왔는데, 제 아무리 세계적인 거장이더라도 대중이 자신들을 상대로 요구하는 삶의 윤리적 잣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로울 순 없다는 내용이었다.
김 감독의 다소 뜬금없는 부고 소식을 접하고 다시 오래전 기록들을 뒤져봤다. 추모 여부를 두고 벌어진 세간의 갑론을박을 반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지난 행적을 기억하고 소환하고 싶어서인데, 역시 뉴스메이커답게 고인과 관련된 글들은 꽤 많았다.
이 중 지난 2013년 8월 4일자로 출고했던 '가위질당하지 않을 권리, 제대로 볼 권리'는 김 감독의 18번째 연출작 '뫼비우스'의 제한상영가 논란을 소재로 쓴 글이다.
요즘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가 꽤 적극적으로 일하고 있다. '뫼비우스'의 제한상영가 논란과 관련해서다.
영등위는 지난달 30일 언론사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은 영비법 제29조 제2항에 근거한다"며 "2011년 박선이 위원장의 취임 후 제한상영가 영화가 크게 늘어났다는 일부 매체의 보도는 그동안 증가한 영화 편수를 고려할 때 사실 관계를 오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영등위가 이처럼 팩트를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모습은 인정할 만하다. 그런데 이 모습이 영화인들과 일반 관객들의 정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법 조항에만 집착하는 것처럼 비친다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
제한상영가 논란의 핵심은 법 조항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등급 분류 기준이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하고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과 영화인들 및 관객들의 권리 부재(不在)에 있다.
전자의 경우, 쉽게 예를 들어 어느 영화는 제한상영가를 피해 가고 또 어느 영화는 못 피해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결과가 잦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 등급 분류 기준에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권리 행사 요구는 소박하고 당연하다. 정성껏 만든 창작물을 흠집 없이 보여주고자 하는 '표현의 자유'와 가위질당하지 않은 작품을 내 돈 내고 온전하게 관람하고 싶어 하는 '감상의 자유'로, 민주 사회의 일원이라면 누구든지 희망하고 응당 누려야 하는 것들이다.
다음 회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