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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Dec 22. 2020

이젠 언급이 필요 없어진 김기덕 2

조 기자의 연예수첩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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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쉽게도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한 영등위의 태도는 '국민 정서에 위배되는 유해 영상물을 차단해야 한다'는 아주 오래전 해묵은 보호 논리에 여전히 매달려 있는 것 같다.


국민 정서에 위배되는 유해함의 수준을 과연 어느 정도로 판단하고 있는지가 대단히 궁금해진다. 그리고 청소년을 제외한 이 나라의 구성원들이 합법적인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 아직도 관계 기관의 지도 편달(?)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조금 늦었지만 영등위는 이제라도 등급 분류와 관련해 진짜 목소리를 들어보길 권한다. 언론 보도를 상대로 법 조항을 따지기에 앞서 제한상영가 전용관 마련 등과 같은 문제부터 주무 부처와 손잡고 해결하길 바란다.


자신들의 말마따나 "영상물의 창작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 세워진' 기구라면 응당 해야 할 일들이다. "우린 법대로 잘하고 있다"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쉽지 않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 담당 기자들과 애증의 관계를 오가는데 능수능란했다. 매체와 날 선 공방전을 벌이고 '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 너희들은 만나지 않겠어' 식의 무시 작전을 펼치다가도, 여론의 지지가 필요한 시점에서는 흥미로운 기삿거리 제공으로 화해의 손짓을 내밀었다. 한 마디로 언론을 쥐락펴락할 줄 아는 '밀당의 귀재'였다.


당시도 그랬다. '뫼비우스'가 극 중 근친상간을 연상케 하는 몇몇 설정으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을 위기에 처하자. 김 감독 측은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매체를 등에 업고 여론전에 나섰다. 주인공을 연기한 조재현도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의 부당함을 알리려 백방으로 애썼는데, 한때 '김기덕의 페르소나'였던 그 또한 '미투(Me Too) 논란'으로 지금은 모습을 감췄다. 


위의 칼럼 역시 '뫼비우스'의 완성도를 높이 평가하거나 극 중 메시지에 동의하진 않지만, 김 감독과 조재현이 주장하던 '표현의 자유' 수호만큼은 지지하는 차원에서 썼다. 기꺼이 그들의 원군으로 나섰던 셈이다.


표현의 자유 말고도 주류를 향한 반감 혹은 끊임없는 문제 제기와 약자가 겪는 부당한 대우에 대한 항의는 김 감독의 작품 외적인 행보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4년 아카데미 출품작 선정 여부를 두고 영화진흥위원회와 격렬하게 대립했을 때의 일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김 감독의 '빈 집'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 출품작으로 선정했다가 자격 요건 미비를 이유로 철회한 뒤 '태극기 휘날리며'로 다시 선정하자, 한해 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이어 2년 연속 후보 출품을 노리던 김 감독은 메이저 투자 배급사인 오리온 계열 쇼박스의 입김이 작용했다며 부당함을 호소했다.


쇼박스와 김 감독의 악연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연출부 출신이던 장훈 감독이 자신의 휘하를 떠나 쇼박스와 손잡은 '의형제'로 흥행에 성공하고 고 예산이 투입된 전쟁 블록버스터 '고지전'까지 내리 협업을 이어가자, '고지전'의 스크린 독과점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후 본인이 출연과 연출을 겸한 '아리랑'에서는 장훈 감독을 배신자로 규정짓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듯한 내용을 담아 논란을 부추겼다.


돌이켜보면 김 감독은 우직해 보이지만 영리한 때로는 영악한 '곰 같은 여우'였다.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자신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영화를 만들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또 제도권 영화계를 상대로 구애와 외면 그리고 화해와 다툼을 반복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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