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기자의 연예수첩 76
이전 회에서 이어집니다
눈 깜빡할 사이에 1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한 번하고도 절반 이상 바뀌었지만, 이제는 무대를 바꿔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위주로 그를 추모하는 열기는 여전하다.
그러나 호텔 16층에서 왜 스스로 몸을 던져야만 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그래서 더욱 문득문득 그립
다.
장궈룽이 '불멸의 신화'로 남게 된 이유를 자문해본다. '영웅본색'과 '패왕별희'에서 그랬듯이 아마도 나이와 성별을 자유롭게 오갔던 극 중 캐릭터 덕분이었을 것이다.
단언컨대 고인은 이들 작품에서 소년도 청년도, 남성도, 여성도 아니었다.
또 '아비정전'과 '해피 투게더', '동사서독' 등에선 퇴폐와 허무의 끝까지 질주하길 서슴지 않았다. 자기 파괴적인 에너지가 너무 넘쳐흘러 보는 이들조차 위태롭게 만들었었다.
여기에 어떤 장르의 연기를 하더라도 내면의 기품을 결코 잃지 않던 모습까지, 동서양의 웬만한 배우들을 통틀어봐도 지금까지 이런 배우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본다.
어느덧 장궈룽이 천상으로 떠났던 나이가 됐다. 학창 시절 그의 영화에 울고 웃었던 시네마 키드는 갱년기를 걱정하는 중년남으로 변했다. '어쩌면 영생의 삶을 얻게 된 장국영은 그 모습 그대로겠지?' 오늘 밤 맥주 한잔에 어울리는 안주는 그가 남긴 영화들이다.
이 칼럼을 썼던 게 2년 전 요맘때, 우리 나이로 40대의 끝자락이었다. 올해부터는 나이를 얘기하며 '5'자를 먼저 말하게 됐다. 좋게는 그냥 아저씨, 나쁘게는 꼰대로 불리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후덕해진 외양도, 변화를 기피하는 사고방식도 이 같은 시기로의 진입을 부추긴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건 나이를 먹을수록 타인의 죽음에 갈수록 덤덤해질 것 같은데 오히려 더 예민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 친구 선후배는 물론이고, 일면식조차 없는 사람들의 부고 소식에도 쓸데없이 울컥하곤 한다. 곧 닥칠 갱년기를 걱정하다 갱년기의 정점을 찍는 수준으로 이른 게 분명하다.
어렸을 적 열광했던 홍콩 스타라 해도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다. 게다가 장국영은 한참 혈기방장 했던 시절 개인적으론 주윤발 다음이었다. 살기를 내뿜다가도 웃으면 땅콩 모양의 입이 되는 주윤발에게 푹 빠진 적은 있어도, 야리야리한 부잣집 막내 도련님 이미지의 장국영은 솔직히 '별로...'였다. 그의 죽음이 별다를 게 없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장국영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 한 구석에 찬 바람이 들어오는 듯하다. 그 시절 모든 일에 서툴렀지만 나름 열정 하나는 최고였던 예전 모습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친구들이 덩달아 오버랩된다. 또 장국영처럼 '일찌감치 먼저 떠난 녀석들도 이젠 꽤 되겠지'란 생각에 괜히 울적해진다. 이처럼 장국영의 추억까지 더해지는 갱년기는 견뎌내기 참으로 버겁다.
천상의 장국영은 언제까지나 '아비정전'에서처럼 군살 하나 없는 매끈한 몸매에 속옷 차림으로 한가롭게 맘보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반면 그보다 한참 어린 누구는 늘어가는 주름과 뱃살 그리고 흰머리를 걱정할 새도 없이 가족 부양과 노년에 대한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발 없는 새처럼 불현듯 날아가버린 장국영이 오늘따라 유독 야속하다. 당신에게 열광하던 우리는 이렇게 늙어 지쳐가고 있는데, 정작 당신은 세상 모든 일에 초연한 표정으로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다. 빠르게 흘러가버린 세월이 서글퍼 장국영을 다시 소환하고 싶어 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