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연자매는 느리게 돌지만 가루는 아주 곱지요’
“증권 거래소에 다녀요. 전형적인 주식 중개인이죠. 만나면 아주 따분하실 거예요. 그이는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지 않아요. 증권 거래소에 다니기는 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마음씨만은 착하고 다정하지요”
스트릭랜드 부인은 십칠 년째 살아오고 있는 남편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면서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 미소 뒤로 감췄을 단어들... 한때 너무나 사랑했고 그래서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책임을 묵묵히 해 오고 있는 남편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삼켰으리라. 그녀가 말로 하지 않은 남편에 대한 다른 설명들을 나는 상상할 수 있다.
그렇게 예술엔 문외한이요 너무나 따분한 증권 거래소 직원이었던 마흔 살의 남자는
어느 날 모든 것을 버린다.
아내와 두 아이와 직업과 자신의 삶을 이루던 전부를.
하필 단란했던 여름휴가를 마친 직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런던으로 먼저 돌아간 남편은 아직 휴가지에 있는 아내에게
이 편지를 보낸다.
“에이미 보시오.
집 안은 다 잘 정돈되어 있으리라 생각하오. 앤에게 당신이 말한 대로 일러두었으니 돌아오면 당신과 아이들 식사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오. 하지만 나는 당신을 보지 못하오. 당신과 헤어지기로 마음먹었소. 내일 아침 파리로 떠날 작정이오. 이 편지는 그곳에 도착하는 대로 부치겠소. 다시 돌아가지는 않소. 결정을 번복하진 않겠소.
찰스 스트릭랜드 ”
십칠 년을 함께 해 온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은 편지를 받고 그녀는 남편이 정신이 나갈 만큼 사랑하는 여자가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함께 파리로 떠난 것이라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선택한 건 여자가 아니라 그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이가 여자랑 달아났다면 가망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일이 오래 가리라고 생각진 않으니까요. 석 달만 지나면 여자에게 진절머리를 내고 말 거예요. 하지만 사랑 때문에 나간 게 아니라면 다 끝났어요.”
남편에 대한 오랜 믿음이 허물어지고 그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아내는 빠르게 적응했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나간다.
스트릭랜드 역시 아내와 아이가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살아간다.
열여덟 살도 아니고 마흔이 넘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림을 선택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냐는 비야냥에 그는 이렇게 일갈한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착하고 선량했던 그가 마치 한순간에 악마에 홀린 것처럼 그림에 홀려버린다. 그림을 삼켜버린 그는 악마처럼 살아가는 것에 개의치 않게 된다. 그는 그림에 미친 악마가 되고 만다.
서머싯 몸이 화가 고갱의 삶에서 모티브를 찾았다는 이 소설 ‘달과 6펜스’는 참 괴상한 작품이다.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스트릭랜드 같은 선택을 한, 한때는 가까운 지인이었던 한 사람을 생각했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기어코 자신이 일군 가정을 깨트리고 떠나버린 그를 나는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솔직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그는 마치 드라마에서나 등장할 법한 순도 백 퍼센트의 악인이었고 그로 인해 고통받게 된 이들을 가까이서 지켜봐야 했으니까. 심지어 그는 스트릭랜드처럼 그림 같은 추상을 선택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 때문에 모든 것을 버렸던 걸까? 나는 이해하려 노력하는 대신 마음 편히 미워해 왔었다.
서머셋 몸은 다른 작품들 ‘인생의 베일’이나 ‘인간의 굴레‘에서도 보이듯이 성평등 지수가 그리 높지 않은 작가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해도 그의 작품에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여자에 대한 불신은 잔뜩 날이 서 있다. 그 날카로운 지적에 가끔 뜨끔할 때가 있는데 이 책에 그런 부분이 있었다.
스트릭랜드가 이 책의 화자에게 한 말이다.
“여자는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의 정신을 소유하기 전까지는 만족할 줄 몰라. 약해서 지배욕이 강하지. 지배하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못해. 여자는 마음이 좁아요. 그래서 자기가 모르는 추상적인 것에 화를 내는 버릇이 있어. 마음을 쓰는 건 물질적인 것뿐이야. 관념적인 것은 시기나 하고. 남자의 정신은 우주의 저 머나먼 곳에서 방황하는데 여자는 그걸 자기 가계부 안에다 가둬두려고 하는 거요. 내 아내 생각나오? 블란치도 차츰 같은 수작을 쓰려고 하더란 말이야. 자기 딴엔 무한한 참을성을 발휘해서 나를 함정에 몰아넣고 올가미를 씌울 작정을 하고 있었어. 나를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싶었던 거지. 나 자신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 내가 자기 것이 되어주기만 바랐지. 하기야 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했어요. 내가 원하는 것 한 가지만 빼놓고 말이오. 난 혼자 있기를 바랐거든.”
이 작품을 여러 차례 읽었다고 스트릭랜드나 한때 지인이었던 그를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책에서 이 구절을 찾아낸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아니지만 이 서사를 마무리하면서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그런 이야기 끝에 나는 타이티에서 찰스 스트릭랜드에 관해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타와 어린애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머지 이야기는 되도록 정확하게 옮겨주었다. 우리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로버트 스트릭랜드(그의 첫째 아들)가 성냥을 그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하느님의 연자매는 느리게 돌지만 가루는 아주 곱지요” 그가 말했다. 자못 감동스러운 말이었다.
딱히 종교는 없지만 이 말을 믿고 싶어졌다. 권선징악 같은 결말을 기대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저 내가 미워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이해는 앞으로도 하지 않을 테지만 더 이상 미움이라는 불편한 감정을 나를 위해서 갖지 않겠다는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