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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cial Scientist Dec 08. 2019

[책]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

많은 학자들이 현시대를 일컬어 'Post-truth(탈진실)' 시대라고 한다. Post-truth 시대란, '사실의 진위와 상관없이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어떻게 post-truth 시대가 도래하게 됐는지를 설명한다.

 

왜 진실은 위기를 맞이했을까? 저자는 1960년대 신좌파의 문화전쟁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상에서 해답의 첫 실마리를 찾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보편적 진실은 없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누구나 동의하는 완전한 진실 따위는 존재할 수 없으며, 단지 사회적 세력이 형성하는 '인식'만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 문화전쟁을 이끌었던 신좌파는 기득권 세력의 목소리가 '유일한 진실'로 취급되는 것에 반대하며,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의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 과정에 반영돼야 한다는 정치적 운동을 펼쳤다. 이 운동은 성공적이었고 그 후로 진실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려 있으며 사실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상대주의적 시각이 보편화됐다.

 

문제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상대주의가 아니라, 이를 이용하여 새로운 문화전쟁을 벌이는 사람들에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좀 더 평등주의적 담론을 촉진했고 이전에는 권리를 박탈당했던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틀렸다고 밝혀진 이론을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또는 동등하게 취급할 수 없는 것들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포스트모더니즘적 상대주의를 이용하고 있다. 예컨대 창조론자들은 과학 시간에 ‘지적설계론’ 또한 하나의 과학적 ‘사실’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며, 트럼프와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기후변화를 부정한다. 그들이 만들어낸 대안적 ‘진실’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사회학자 모이니핸은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이지, 저마다의 사실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부어스틴은 “사람들은 어떤 것이 사실인 지보다 ‘그것을 믿는 게 편리’ 한 지에 더 관심을 둔다”라고 했다. 보드리야르는 “오늘날의 대중매체 중심 문화에서 사람들은 매일의 지루한 ‘실재의 사막’보다 디즈니랜드 같은 모조 현실 또는 조작된 ‘과잉 현실’을 선호하게 된다”라고 역설했다. 니콜스는 <전문가와 강적들>에서 “확립된 지식에 대한 고의적인 적대감이 좌파와 우파 모두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관한 의견은 모두 나머지 다른 의견만큼 좋은 것’이라고 공격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라고 썼다. 스탠리 피시는 “객관성의 죽음은 올바름의 의무를 덜어준다. 그것은 흥미로움 만을 요구한다”라고 일침 했다. 많은 학자와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바로 사람들에겐 사실 그 자체보다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 같은 정치인들은 이 지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능숙하게 이용한다.


상대주의의 오남용이 확산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다른 요소는 바로 인터넷, SNS 등을 포괄하는 과학기술혁명이다. 가짜 뉴스, 가짜 (유사) 과학, 가짜 역사, 가짜 팔로워와 ‘좋아요’가 주목을 받고 돈이 되는 ‘가짜’의 시대에서, 과학기술혁명은 의도치 않게 ‘가짜’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준 셈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자아를 무한 확장하고 현실을 만들어 내기까지 한다. 내가 브런치 앱에서 ‘작가’라는 이름으로 아무 말이나 쓸 수 있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SNS 작가들의 감성 에세이를 통해 위안을 얻는 것도, 유튜브에서 각 정치 진영의 논객들이 필터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다 그 일부분이겠다. 지식보다 의견을, 사실보다 느낌을 더 찬양하는 시대에서 ‘진실’은 더 빠르게 그 힘을 잃어간다.


정리하면, 저자는 19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유산이 2000년대의 과학기술혁명과 만나면서 Post-truth 시대가 도래했다고 설명한다. 상대주의의 오남용이 낳은 감정과 두려움보다는, ‘공통된 사실’에 기초한 논쟁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하지만 ‘공통된 사실’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가? 어디까지 진실이고 사실인지 우리는 판단할 수 있을까? (이미 확립된 과학적 사실 외에) 이 사회에서 ‘공통된 사실’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가? 사회과학 분야의 여러 문제들은 자연과학과는 달리 ‘정답’이라는 게 없다. 여러 버전의 ‘정답’들이 싸워서 대중적 지지를 받은 것들이 (일시적으로) 채택될 뿐이다.


 책의 해제를  정희진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는 담론 내용의 ‘옳고 그름 대한 것이 아니라, 발화된 담론의 ‘효과 대한 것이어야 한다. ‘너의 의견도 맞고  의견도 맞아 아니라, 강자가 발화했을 때와 약자가 발화했을 때의 효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트럼프가 이민자, 여성, 성소수자, 외국인을 차별하는 ‘농담 하는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하자. 외국인이 실제로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았든 아니든, 그러니까  발화의 옳고 그름이나 객관성을 떠나서, 트럼프라는 강자의 논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어떤 사회적 결과를 낳을지 상상해   있는가?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고소득 백인 남성으로 태어나지 않은 자신을 상상해보라. 눈앞의 '사실' 관계에만 집착하든 만들어낸 ‘대안적 현실 집착하든,   사회적 함의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우리의 상상력은 빈약해진다.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은커녕, ‘그건  탓이야라며 사회적 문제를 (아주 쉽게) 개인으로 환원시키게 된다(   생각이다).   



+ 알렉시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는 읽어본 적 없지만 언젠가 꼭 읽고 말 것...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삶에 과잉 공급되는 소소하고 보잘것없는 즐거움을 얻는 데 치중해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무시하게 된다." (소확행이 최우선 과제였던 과거의 나 반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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