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나리 Dec 11. 2020

코로나 시대에 수습기간 견뎌내기

여기서 통과 안되면 갈 곳은 있을까

수습기간: 정식으로 일하기 전에 미리 일을 배워 익히는 기간.  <네이버 국어사전>


한국에 비상 착륙하기까지 결국 퇴사하고 공백이 꽤나 길었다. 끝없이 탈락의 고배를 마시던 중, 감사하게도 이 어려운 시기에 최종 합격을 하게 되었고, 기나긴 3개월의 수습기간을 견뎌낼 차례가 왔다. 근로계약서에서 쓰여있듯이, 수습기간에는 상호 간의 협의 끝에 '수습기간을 종료'할 수 있다. '미리 일을 배워 익히는 기간'이라 월급의 80%를 주는 곳들도 많은데, 나는 100%를 받아서 다행이었다. 내가 고용주라면 수습기간은 꼭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할 것 같지만, 전 직장에서 수습기간이 끝나면 계약을 종료하는 경우를 이따금 봐왔기에 근로계약서에 이 조항이 쓰여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내 마음은 무거웠다.


작년 12월부터 정말 이력서도 많이 썼고, 면접도 많이 봤는데,
코로나 시대에 난 도무지 그걸 다시 할 자신이 없었고,
수습기간 통과에 대한 내 간절함과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재택근무 시작하기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첫 출근 날 전사 재택 권고를 받게 되었다. 이제 갓 이메일 주소를 받고 구글 드라이브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뿐인데, 집이라는 섬에 뚝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사이버 동료들과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직무를 변경한 탓에 공부해야 하는 부분도 많았고, 맡은 일의 범위도 굉장히 광범위했다. 영업/제휴, 협상, 계약서 작성, 실행 기획 및 준비, 세금 등 각종 서류 처리, 수출 그리고 마케팅까지. 외부와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을 아우르며 하나하나 질문하면서 어떻게든 일을 이끌어나가야 했고, 영어와 중국어로 업무를 하는 것도 익숙지 않았다. 외국어로 업무를 종종 한 적은 있었지만, 풀타임으로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맡은 바 일을 처리하는데만 집중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다 보니 한없이 고요한 서울의 한 원룸에서 소리 하나 없이 일만 처리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마치 감정 없는 로봇 같았다. 게다가 사람과의 교류는 테이크 아웃 시 가격 결제할 때가 다였는데, 친구들과 시간 내어 영상 통화라도 하지 않으면 곧 미쳐버릴 것 같았다. 마음을 위로할 재택근무 환경 조성과 루틴이 시급했다.


그렇게 첫 아침 루틴은 조금 일찍 일어나서 빵집에서 쿠키를, 근처 힙한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사 오는 걸로 시작했다. 나중엔 시간이 갈수록 커피를 사러 가는 게 부담스러워져서 드립백을 사다 놓고 아침에 방을 커피 향으로 가득 채우는 것으로 아침을 맞이하기도 했다.



일에 적응하는 것도 어렵고, 며칠이고 사람을 만나지도 않고 교류하지도 않으니 마음이 한없이 불안해지기도 했다. 요즘 여러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코로나가 마음 건강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느꼈는데, 나 또한 이런 영향 때문인지 어떤 날에는 전에 느껴본 적 없는 강한 불안함이 찾아오고, 그런 마음이 도무지 잡히지 않을 때가 있어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저 불안함이 잦아들기를 마냥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래도 클로바 스피커에 재즈를 틀어놓기도 하고 캔들이나 커피로 방안을 향기롭게 채우다 보면 마음이 잠잠해졌다.  


사이버 동료들과 협업하기

같은 팀부터 다른 수많은 부서에 이르기까지 사이버 동료들에게 궁금한 점을 묻고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가면서 채팅으로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정말 지친다는 생각을 했다. 몇 년 전, 처음 취준을 할 때는 '커뮤니케이션을 잘합니다.'라는 이야기를 이력서에 적거나 면접에서 말하곤 했는데,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건 너무 어렵고 그걸 잘한다고 말하고 다녔던 건 역시 대학생의 패기였던 것 같다. (아무랑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처음 몇 가지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이끌어 가면서 채팅이나 이메일, 즉 텍스트로 동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경우가 많았다. 텍스트로 설명을 하는 게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어떤 때는 동료와 대면하여 말로 설명하는 게 효과적일 때가 있다. 그렇게 종종 동료들과 콜을 하고 나면 마음이 가뿐해지기도 했다. 


내가 전에 퇴사했던 때는 올해 2월이었는데, 대부분의 기업이 전사 재택근무를 본격적으로 도입할 때였다. 그래서 재택근무를 길게 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나름의 루틴과 근무 환경을 만들어간다면 좋은 것 같지만, 신규 입사자의 온보딩은 쉽지 않다. 회사에 처음 오면 물어볼게 산더미이니까. 그래도 팀장님, 같은 팀/다른 팀 동료들이 정말 나의 질문 폭탄에 답을 잘해주셨다.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재택근무로 신규 입사한 분들 힘내세요)


오피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처음으로 나에게 맡겨진 프로젝트를 혼자 잘 해내었다. 이걸 못해냈으면 계약 종료될까봐 덜덜 떨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안 떨리는 건 아니다. 수습기간 종료가 하루하루 다가올 때마다 마음이 옥죄어온다. 올해는 정말 이력서도 면접도 충분히 봐서 몇 년간 다시는 구직/이직은 하고 싶지 않다.


그저 회사로 돌아가 동료들과 조금 친해지고 싶다. 회사에 적응하고 싶다. 수습 통과하고 싶다.


이 상태라면 회사 적응에 1년은 걸릴 듯하다.




Photo by whereslugo on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