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태면 마음이 아픈 걸까요?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들이 몰아치던 어느 수요일, 심리상담센터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상담 가능한가요?
이번 주는 예약이 꽉 차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나는 지금 이 삶을 못 견디겠고 누군가한테는 이 상황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마음이 급해졌다. 다음 주 평일은 어떻냐는 말에, 고민 없이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아까운 나의 반차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상담하는 날까지 버티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학생 때는 절대로 손에 잡지 않던 책인데, 직장인이 된 요즘 인터넷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활자 하나하나 읽는 게 잡념을 줄이는 데 효과가 좋다는 걸 깨닫고 틈틈이 독서를 하고 있다.
우울한 일상에서 눈을 사로잡는 구절은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삶이란 별게 아니다. 젖은 우산이 살갗에 달라붙어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
- 김영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사는 일은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립다.
- 은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이런 문장들을 만나면 왠지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이 커다란 세상 속 누군가도 힘든 삶을 견뎌내고 있고 어쩌면 모두가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아서인 것 같다.
젖은 우산이 살갗에 달라붙는 건 불쾌하다.
우산 주인에게 괜히 뭐라고 하고 싶어 지기도 하고, 우산 위 흐르는 빗물은 얼마나 더러울지 생각하니 찝찝하다.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 버스가 뿜어내는 배기가스, 나쁜 건 다 담겨있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에 우연히 착 달라붙는다니 난 참 운도 없다는 생각부터 든다.
우산이 내 살갗에 닿는 순간부터 마음이 불편한데, 우산 주인이 언제 이 우산을 가지고 내릴지 모른다는 건 정말 공포스럽다. 금방 내린다면 조금은 더 참아보고, 나중에 내린다면 자리도 바꾸고 피해 볼 텐데, 언제 내릴지 모르는 우산 주인이 선사한 예측 불가능한 불편함을 참고 견디는 건 '멘붕'을 가져다준다.
지금 내 삶은 자주 괴롭다.
상담을 해주시는 선생님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예측 가능한 사실인데, 지금은 나나가 견디기 어렵구나라고 말씀해주셨다. 내게 괴로움을 가져다준 '젖은 우산'같은 사건은 언제 내게서 떠나갈지 모른다. 이 사건은 내게 엄청난 존재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자신감이 넘치던 나 자신에 대한 끝없는 의구심을 일으키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이 불편하고 괴로운 상황을 조금은 더 참아볼지, 오래갈 거라면 자리도 바꾸고 피해볼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