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울어야 이 고통이 무뎌질까
살면서 눈물을 흘렸던 순간은 많았다. 어릴 적부터 살던 정든 집을 떠날 때는 아쉬움의 눈물을, 가녀린 동물이 생존을 위해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봤을 땐 감동의 눈물을, 오랜만에 해외에서 귀국해서 부모님을 만났을 때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지금의 난 다시 눈물을 흘린다. 이건 '고통의 눈물'이다.
고통
(명사) 몸과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
요즘 난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통에 대해 얼마나 인식하고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하다. 특히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은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궁금하다. 일련의 힘든 사건을 겪어오면서, 나는 마음에 자리 잡은 고통과의 싸움에서 졌다. 그리고 한없이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다.
늘 누군가에게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부모님한테 차마 불효할 수 없어 말할 수 없었고, 친구들한테는 계속 이야기하자니 들어주는 친구한테 미안했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계속해서 끄집어내고 여러 명의 친구에게 말해야 하는 나한테도 못할 짓이었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는 건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그렇게 상담을 시작했다.
내가 구상하는 좋은 세상은 고통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세상이다.
- 은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작가님의 책을 처음 읽은 건, 회사에서 가끔 카피라이팅을 할 때 '글을 잘 쓰고 싶어서'였다. <쓰기의 말들>,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 그 후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접하게 되었다. 은유 작가님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글을 읽어보면 왠지 많은 고통을 겪어냈고, 또 그런 사람들을 많이 바라봐왔다는 생각이 든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내게 와 닿는 문장을 책 구석구석에 담아내셔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녹록지 않은 세상을 꿋꿋이 견뎌낸 삶을 꾹꾹 글로 담아내는 멋진 분인 것 같다.
긍정으로 힘을 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긍정 없이 하루분의 울컥을 삼켜야 할 때가 더욱 많다.
- 은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의 책 소개
난 내가 정말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긍정적으로 힘을 내서 하나하나씩 헤쳐가면 된다고 믿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힘내', '긍정적으로 생각해', '곧 좋은 일이 생길 거야' 등의 말로 위로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깊이 없는 표면적인 위로인가 싶다. 하루분의 울컥을 삼켜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때의 나는 몰랐다. 고통을 알아보지 못했다.
긍정의 힘을 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긍정이 통할 수 있는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가는 사람에겐 긍정은 특효약이 아니다.
한동안은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에게 화가 나서 매일 욕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고, 한동안은 겪어온 상황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회사에 가는 것도 너무 버거울 정도로 무기력한데, 찬찬히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노라면 또 눈물이 난다.
지금이 고통을 겪어내는 과정인 것 같은데, 무뎌지는 게 언제일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