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악녀 프레임이라는 닻을 거두고, 여성 악역을 향한 항해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 밤이 궁금해 오늘은 어떤 사건이 날 부를까?’, [미재사건파일] 시리즈는 명탐정 코난의 오프닝 곡 가사처럼 눈만 뜨면 새로운 사건이 눈앞에 닥치는 세상에서,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미디어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재현에 대해 다룹니다. 이번 [미재사건파일]에서는 익숙하고 재밌지만,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인 ‘악녀’에 대해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이번 시리즈가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사건의 실마리가 되길 바라며, 사건 파일 오픈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둘 사이에 눈에 띄게 변화한 지점은 없었다. 즉, 약 20여 년의 세월 동안 '악녀 프레임'은 더욱 공고해졌을 뿐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두 악녀는 악행의 스케일도, 목표하는 바도 달라 보이지만 둘을 비교해봤을 땐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았다.
우선 가장 큰 특징은 두 악녀 캐릭터 모두 전형적인 악녀 프레임에 갇힌 여성이라는 것이다. 먼저, 두 악녀는 진한 화장과 화려한 외형을 내세운다. 시대의 차이가 있기에 외형이 완전히 같다고 할 순 없지만, 각자의 시대에 유행하는 옷차림과 메이크업을 강조한다는 것은 동일하다. 두 캐릭터 모두 도시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차갑고 날렵한 느낌이 느껴지도록 스타일링한다는 것도 같았다. 허영미와 천서진은 각각 '진선미'와 '오윤희'(유진), '심수련'(이지아)이라는 대립 관계에 놓인 여성 캐릭터가 존재했으며, 이들과 늘 비교당하는 위치에서 시기와 열등감을 느끼는 것도 공통된 프레임이었다. 마지막으로 '허영미'와 '천서진'에겐 각자 맹목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존재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허영미'에겐 '김우진'이라는 남성 캐릭터와 아나운서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가 이에 해당했고, '천서진'에겐 딸 '하은별'(최예빈)과 프리마돈나로서의 명성, 청아예술재단 이사장 자리 등이 있다. 이들은 이 목표를 이루고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주로 이 목표를 위해 그들이 악행이 진행된다.
앞서 언급했던 세 가지 프레임뿐만 아니라 각자 들키지 말아야 할 과거사가 있다는 것 또한 동일한 프레임이었다. '허영미'의 경우 과거 동네 건달과의 문란한 연애사가 밝혀져 아나운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천서진'은 '오윤희'와 청아예술제 대상 자리를 놓고 경쟁했으나 아버지의 권력을 이용해 부당하게 대상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이 과정에서 오윤희의 목에 상처를 입혀 평생 노래를 부를 수 없도록 만든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또, 두 캐릭터 모두 권선징악이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과 남성을 통한 경제적 지위 상승을 시도한다는 것도 프레임 속 악녀로서의 특징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변화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악녀로서의 차이라기보단 주변 인물과 맺는 관계에서의 차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허영미가 등장했던 시대의 드라마에선 착한 여성과 나쁜 여성으로 여성 캐릭터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선한 여성 캐릭터를 부각하려는 경향이 강했다면, 최근 천서진이 등장한 펜트하우스에서는 이러한 구도만을 선택하진 않았다.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모두 선과 악이 불분명하며,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또한, 같은 남성을 목표로 여성 캐릭터 간의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은 여전하지만, 갈등의 원인이 전부 한 명의 남성으로 귀결되진 않는다. <펜트하우스> 내에서는 여성이 여성과 동시에 남성과도 대립 관계를 이루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관계성 속에서 여성은 서로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다가도 자신의 이익이나 죄책감을 이유로 서로에게 협조하기도 한다. 이는 ‘여성 대 여성’의 갈등으로 묶였던 과거의 대립 관계가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각자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갈등으로 변화했음을 뜻한다.
이처럼 거의 20년의 세월 동안 공고하게 이어져 온 '악녀 프레임'은 드라마의 전개를 이끄는 '부스터'인 동시에 스테레오타입을 공고히 하는 '시멘트'의 역할을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먼저 부스터의 측면으로는 드라마의 성공에 있어서 악녀가 필수라는 성공 공식이 있다. 해당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악녀'는 극에 재미를 불어넣고 시청자의 답답한 마음을 대변해주기도 하며 서사를 이끄는 역할을 해왔다. 또한, 악녀 캐릭터가 여성 배우의 인생 캐릭터로 자리 잡으며 시청률 보증 수표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한다. 특히나 신드롬을 일으켰던 연민정과 천서진을 연기한 배우 이유리와 김소연은 해당 캐릭터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으며 연기대상에서 각각 대상과 최우수연기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이런 측면과 대비되는 시멘트로서의 특징도 공존한다. 드라마 속 '악녀'의 존재는 시대의 이상적인 여상상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주체적이며 욕망하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형성하는 데에 이용된다. 이처럼 착한 여성은 선택받고 나쁜 여성은 배제되는 구조를 통해 여성의 내면에 대한 입체적 표현이 아닌 납작한 묘사를 성행하게 한다.
또한, 악녀는 쾌락의 도구로 소비된다. 권선징악의 결말을 통해 파멸을 맞이한 악녀는 선한 여성 주인공과 그의 곁에 있는 남성 주인공에게 심판 혹은 용서 받게 된다. 이렇게 '망하기 위해' 그리고 '욕먹기 위해' 만들어진 여성 캐릭터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우린 그 평가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악녀의 역할은 악행이며, 존재 이유는 파멸이기 때문에 그를 비난할 때 어떠한 필터링도 거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여과 없이 분출된 평가는 곧 '여자는 원래 질투가 많다.', '여자는 남자만 잘 만나면 된다.', '얼굴만 봐도 못되게 생겼다.', '이래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등의 여성 혐오적인 평가와 연결되며, 이는 특정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불러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프레임은 여성 연대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강화하고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 악녀와 선한 여성 주인공이 대립하는 구도는 전형적인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다. 이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갈등과 이해관계의 충돌을 그저 '여성'과 '여성'의 싸움으로 규정지으며, 여성 간의 연대를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최근 불어온 '여성 연대'의 흐름과 성과는 ‘여적여’라는 편견을 깨고 여성 버디 장르에 대한 가능성을 증명했다. 또, 여성도 남성 간의 우정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다룰 수 있는 관계가 다채롭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러나 그와 대비되게 이런 '악녀 프레임'이 공고해질수록 여성 서사에 대한 인식은 연대가 아닌 적대로 자리 잡게 되며 서사의 다양성이 오히려 위축될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악녀'를 여성 서사의 한 축으로 보는 시각이 가능할까? 물론 악녀의 존재를 통해 비중 있는 여성 캐릭터가 수적으로 증가했으며, 욕망하는 여성과 늘 웃는 얼굴로 일관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각인 효과는 분명했다. 과거 어디에서나 말 잘 듣고 말 예쁘게 하는 여성만이 '여성스럽다'고 인정받았던 세태와는 달리, 이젠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상이 부각되고 있다. 부당한 일에는 저항해야 하고, 할 말이 있으면 해야 하는 여성이 미디어에 자주 노출될수록 이 동향은 힘을 얻는다. 순종과 순응만이 전부가 아니며, 욕망은 나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여성의 수가 늘어날수록 현실의 여성들에게 전해지는 영향력의 크기는 커지기 마련이다. 드라마 속에서 악녀를 통해 욕망하는 여성에 대한 재현이 이루어지며 이 캐릭터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은 이를 뒷받침한다.
드라마 밖에서 재현되는 악녀도 마찬가지다. 악녀를 연기했던 여성 배우들이 '희대의 악녀 특집'이라는 명목하에 <런닝맨>과 <집사부일체>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드라마 속 캐릭터처럼 자신의 욕망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쉽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도 과거처럼 제재나 야유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호 받는 상황은 그만큼 악녀 캐릭터가 여성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을 인식하게 하는 데에 긍정적 효과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악녀 프레임'을 그대로 유지하는 캐릭터를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것은 찍어내기에 불과하다. 이런 악녀 프레임의 반복이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여적여' 구도를 확산시키며 여성 서사를 오히려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문제의 방점은 '악녀'가 아닌 '프레임'에 찍혀있다. 프레임 속에서 악녀가 자기복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같은 모습의 악녀가 매번 자신의 행동과 욕망을 이유로 타인에 의해 뭉개지듯 끝을 맞이한다는 것과 결국 조금이라도 양보, 희생 등의 여성적 선함을 가진 여성 캐릭터만이 선택 받고 살아남는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럴 때면 종종 '가상의 캐릭터인데 별 상관없지 않아?'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는 대중문화 속 캐릭터의 '대표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현실이 반영되어 대중문화 속 캐릭터가 탄생하지만, 때론 대중문화 속 캐릭터가 다시 현실의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우리가 소위 '갓생' 사는 대학생을 <치즈인더트랩>의 '홍설'이나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로 부르고, 취준생과 사회초년생을 <미생>의 ‘장그래’로 부르는 것이 그 예시다. 이처럼 이 대표성은 대중문화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또 다른 편견을 생성한다. 따라서 그저 가상의 존재이기에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경계하고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근 '악녀 프레임'에서 벗어나 온전히 '여성 악역'으로서 존재하는 여성 캐릭터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여성 서사가 탄생하고 있다. <빈센조>의 최명희(김여진)는 빠글빠글한 파마머리에 정장과 민소매를 번갈아 입으며 출퇴근하는 평범한 여성 직장인처럼 보이지만, 쌈밥을 입에 욱여넣으며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악역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아들이나 남편과 관련된 서사 하나 없이 온전한 악의 축으로서 악행을 일삼는다. 빨간 립스틱을 바르며 복수를 다짐하지도, 높은 목소리로 절규하지도 않지만, 그 내면의 욕망은 화면을 넘어서 우리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구경이> 속 용숙(김혜숙)과 송이경(김혜준) 또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악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여성 악역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구경이>에서는 절대권력자도, 사이코패스도, 그들을 쫓는 추격자도 심지어 권력에 의해 배신을 종용받는 캐릭터도 모두 여성이다. 늘 피해자로 등장했던 여성은 이 드라마 내에서 사건의 중심에 서 있고, 남성의 역할을 ‘송이경’과 ‘용숙’에게 죽임을 당하는 피해자이거나, 여성 인물을 돕는 조력자에 그친다. 한 드라마 안에서 이렇게 다양한 여성의 모습이 등장한 건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절대권력자인 ‘용숙’과 사이코패스인 ‘송이경’은 선한 얼굴과 악한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며 기분 좋은 낯섦을 선사했다.
드라마 <마인> 또한 자칫 악녀의 전형성을 답습하는 것처럼 보이는 '강자경'(옥자연)의 설정을 새롭게 구성했다. 멀리서 보면 양모인 '서희수'(이보영)과 생모인 ‘강자경’은 아들과 남편을 두고 경쟁하는 '여적여' 구도로 보이지만, 이 설정을 한 번 더 비틀어 여성 간의 연대를 무기로 남성 권력에 대항하는 새로운 여성 서사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이 프레임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신선한 시도라고 평가받는 작품이 탄생한다. 그러나 이는 최근의 동향일 뿐, 아직도 현저히 부족한 추세다.
드라마 <빈센조>에서 '최명희'를 연기한 배우 김여정은 관련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악녀는 우리의 행동과 사고의 범위를 좁혀요. 너 그렇게 하면 나쁜 여자야. 이렇게 작동하죠.' 이처럼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단순히 '나쁜 여자'로 묘사되는 것을 뛰어넘어 더욱 입체적인 내면을 가진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다.
악녀의 말로를 바라진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악녀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했고, 그들의 노고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진정 말로를 바라야 하는 건 그들에게 씌워지는 프레임이다. 정박한 배는 안정적으로 파도를 견딜 수 있지만, 어디로도 갈 수 없다. 그러나 닻을 거두고 해류에 몸을 맡긴 배는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미디어 속에서 재현되는 욕망하는 여성이 단순히 '악녀'로 규정되는 것을 넘어 '여성 악역'으로 더욱 폭넓게 불리며 새로운 대륙에 도달할 수 있는 날을 희망하며, 오늘의 사건 파일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