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 일대기를 돌아보며 케이팝오타쿠들에게 보내는 헌사
*‘덕후’라는 표현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결코 비하의 표현이 아닌 ‘한 분야에 미친 정도로 빠진 사람’이라는 통속적인 의미에서 사용함을 미리 밝힙니다.
* 2021년 초반에 쓴 글을 재업로드했음을 밝힙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의 덕질 일대기는 이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까지 좋아할 계획은 없었는데요.’ 그냥 발만 잠깐 담근 줄 알았는데 익사 직전까지 빠졌다. 처음엔 그냥 잠시 쉬었다 갈 간이역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종착역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첫 덕질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남녀공학을 다니다가 여중으로 전학을 갔는데, 반에서 덕질을 안 하는 얘가 나밖에 없었다. 다들 아이돌 그룹 하나쯤은 좋아하길래 나도 그 재밌다는 덕질 좀 해보려고 이 그룹 저 그룹 찾아보다가 하필 잡은 게 그 그룹이었다. 여전히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 어딘가엔 있을 것이기에 최대한 모두의 취향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그룹명을 밝히진 않겠지만, 만약 중학교 2학년일 때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내 멱살이라도 잡고 당장 관두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이야 그때보다 많이 자랐고 보는 눈도 달라졌으니 깨달은 거지만, 그땐 그 사람들이 마냥 잘났다고만 생각했다. 몇 번 나오지도 않는 음악방송에서 항상 엔딩 무대를 꿰차는 것도 멋있었고, 가끔 나오는 예능에서 남들이 다들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라고 치켜세우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년을 그들의 팬으로 살았다. 덕질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었다. 그 그룹을 좋아하는 마음보단 덕질이라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다. 좋아하는 그룹이 겹치지 않아도 일단 같은 덕후라는 이유만으로 연결고리가 생기는 게 신기했고, 덕질 덕분에 일면식도 없던 다른 반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생기는 게 생각보다 학교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덕질이 없었으면 아마 전학을 와서 적응하는 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다. 실제로 전학을 갔을 때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은 덕질을 하다가 만났고, 그 친구들이랑 2년 내내 붙어 다녔다. 반에 덕후밖에 없다 보니 대부분의 쉬는 시간을 다 같이 덕질하면서 보냈고 서로가 좋아하는 그룹이 컴백을 하거나 작은 떡밥이라도 뜨면 내 그룹처럼 같이 앓았다. ‘내 친구 새끼는 곧 내 새끼다’라는 마인드로 다른 그룹의 음원 스트리밍도 돌려줬다. 한 번은 반에서 어떤 친구가 자기 최애 생일이라고 케이크를 사 왔길래 다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면서 축하해주기도 했다. 오늘 누구 생일이길래 아침부터 케이크를 먹냐는 질문에 한 아이돌 가수의 생일이라고 대답하자, 예나가 선정이 딸이라는 말에 충격받은 아침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마시던 주스를 고대로 뱉어냈던 담임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돌이켜보면 그때 한 반에 적어도 30명은 넘었는데, 그중 아이돌 덕질하던 사람이 3분의 2가 넘었다. 심지어 각자 좋아하는 그룹도 다 달라서 겹치는 사람도 없었다. 유독 우리 반만 심했던 건 아니었다. 우리 학교에 덕질 수맥이라도 흘렀던 건지 다른 반도 우리 반과 상황이 비슷했다. 옆 반에선 흔히 ‘팬덤 싸움’이라고 불리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 당시 싸움의 주인공이었던 엑소엘(엑소 팬덤) 친구와 샤월(샤이니 팬덤) 친구가 사이좋게 교무실로 불려 가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점심시간은 항상 전쟁이었다. 우리 학교에선 점심시간에 방송부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신청곡을 받아 노래를 틀어주었는데, 여러 그룹의 컴백이 겹치는 시기에는 그 신청곡을 따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언제 한 번은 소위 ‘컴백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가수의 컴백이 겹쳤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방송실로 뛰어가는 모습의 거의 동물 다큐멘터리에서나 봤던 민족대이동 같았다. 물론 나도 그 대이동 사이에서 슬리퍼 벗고 달리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렇게 2년을 꼬박 덕질에 쏟아붓다가 고등학생이 됐다. 중학교 3학년을 마침과 동시에 덕질은 접었다. 옆에서 같이 덕질하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슬슬 재미도 떨어졌고, 무엇보다 점점 덕깍지(덕후+콩깍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가수가 너무 대단하고 소중하고 업고 다니고 싶었는데, 한순간에 그들이 연예인인지 쓰레기인지 구분이 안 됐다.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눈 막고 귀 막고 있었던 여러 논란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고 서서히 그들의 그런 말과 행동을 알면서도 그들의 덕후라고 얘기하는 내 모습에 쪽팔림을 느꼈다. 더욱이 그들은 진짜 갱생의 가능성이 없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도 나빠졌으면 더 나빠졌지 나아지진 않은 것 같다. 도대체 그때 내가 그 인간의 뭘 보고 좋아했는지 의문이다. 이런저런 수식어로 포장된 그들의 겉모습이 아니라 팬이라는 이유로 애써 무시했던 ‘진짜’ 모습을 한번 인식하고 나니 걷잡을 수 없이 정이 떨어졌다. 그래서 그들이 본인 손으로 시원하게 열어준 탈덕문을 그대로 통과하면서 아주 말끔하게 2년 동안의 덕질을 정리했다. 애초에 온 마음 다 바쳤던 덕질이라기보단 학교 내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기에 마음을 정리하는 일이 오래 걸리지도, 힘이 들지도 않았다. 몇 개 없던 앨범과 굿즈는 여전히 그들을 놓지 못하던 친구에게 공짜로 넘겼고 나름 팬의 마음으로 차곡차곡 정리해놨던 핸드폰 갤러리 속 그들의 사진은 한방에 초기화시켰다.
그리고 그게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덕질이라고 생각했다. 덕후렌즈가 완전히 빠지다 못해 말라비틀어져서 이제 마음 가는 아이돌도 없었다. 더욱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새 학기에 친구들 사귄다고 정신이 없었다. 새 환경에 적응하느라, 수업 진도 따라가느라 정신없이 바빴기에 덕질할 시간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깔끔하게 돌판(아이돌덕질판) 떠나서 광명 찾자는 마음으로 공부에 몰두하려고 했는데, 진짜 그랬는데. 어쩌다 발견한 티저 사진 한 장에 고등학교 인생 3년을 꼬라박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른 날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그날도 중학교 때 덕질했던 경력을 살려 자기 가수 컴백했다고 스밍 돌리는 반 친구들이나 도와주고 있었다. 진짜 여기에 덕질 수맥이 흐르는 게 맞는지 여중을 졸업하고 진학한 여고에서도 한 반의 과반수가 아이돌 덕후였다. 그렇게 아침부터 요즘 누가 잘 나가는지 토론하다가, 한 친구가 어제 티저 뜬 애들인데 얘네 아냐면서 사진을 한 장 보여줬다. 무대 잘한다고 이름 몇 번 들어본 어느 그룹의 티저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이건 된다. 무조건 된다.’였다. 누가 봐도 소속사에서 성공에 눈이 멀어 각 잡고 이 갈아서 찍은 사진이었다. 당시 소속사도, 가수도 워낙 절박했던 상황이었기에 덕후들 쓸어 모으겠다고 작정하고 나온 듯했다. 그 사진을 보자마자 당장 숨겨놨던 핸드폰을 꺼내 서치를 시작했다. 얘네가 원래 이런 컨셉이었나? 다른 친구들이 몇 번 그 그룹의 영상을 보여줬을 때도, 얘네 노래 절대 내 취향 아니라며 한사코 거부했던 기억이 났다. 상상도 못 한 사진에 너무 놀라서 그날 1교시부터 방과 후 보충 시간까지 틈날 때마다 그 그룹 서치하다가 하루 만에 한 달 치 핸드폰 데이터를 다 썼다. 스스로도 미쳤다고 생각했는데도 멈출 수 없었다. 손가락에 자아가 생긴 것처럼 알아서 움직였다. 뭘 그렇게 많이도 찍어놨는지 그 그룹의 유튜브 채널엔 볼 영상이 차고 넘쳤고 트위터는 왜 그렇게 또 열심히 하는지 그 계정의 피드를 내리고 내려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꼬박 하루 만에 그 그룹의 유튜브 채널과 트위터 계정을 거의 다 훑었다. 밤을 새워 영상을 보다가 밖을 보니 해가 떠 있었다. 창문에 기대서 멍하게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인생 제대로 코 꿰였다.
그날로 입덕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덕질을 다시 시작했다. 입덕부정기는 길면 길수록 본인 손해다. 이건 되는 주식이라는 느낌이 왔을 땐 일단 사들이는 게 맞다. 다신 덕질에 ‘덕’자도 꺼내지 않겠다는 내 다짐이 겨우 넉 달 만에 깨진 모습을 보며 친구들은 그럴 줄 알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애초에 덕질을 하기에 여고는 너무 최적화된 환경이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덕질은 중학교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일종의 의무감으로 하던 덕질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덕질이었다. 덕질을 그만둔 뒤로 텅텅 비었던 플레이리스트엔 자연스럽게 이번에 컴백한 앨범의 전곡이 들어갔다. 온종일 그 노래들만 반복해도 질리지 않았다. 아마 티저에서 치였어도 노래가 별로였으면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 거다. 근데 티저 이상으로 노래가 좋아서, 또 노래 이상으로 뮤비와 무대가 좋아서 정말 어쩔 수 없었다. 그 티저를 보고 그 노래를 듣고 그 무대를 본 이상 입덕하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그러다 정말 거짓말처럼 내가 좋아하자마자 1위를 했다. 이전에 1위 후보까진 오른 적 있어도 1위를 했던 적은 없었다. 컴백 직전의 인터뷰에서 2015년에 이루고 싶은 것을 물었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멤버들 모두가 음악방송 1위라고 대답했을 정도로 간절했다. 그래서 그날 1위 후보에 올랐다는 소리를 듣고는 혼신의 아픈 연기를 펼쳐 보충 수업을 빼고 집으로 달려갔다. 1위 후보로 맞붙은 상대 그룹이 대중적으로도 유명하기도 했고 연차도 꽤 있던 그룹이라 불안하긴 했지만, 우리도 음원 진입 순위 좋았고 앨범 판매량도 저번 앨범보다 월등히 높아져서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재빠르게 문자투표를 보내 놓은 후 집에서 물 떠 놓고 한 번만 도와달라고 빌었다. 원래는 다른 사람들 하는 것처럼 기도라도 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간절해도 불교 집안에서 기도는 좀 아닌 것 같아서 급한 대로 반야심경이라도 틀어놨다. 그렇게 혼자 온갖 난리를 치며 티비 앞에서 기다렸는데, 정말 기적처럼 그날 1위를 했다. 1위를 한 건 걔네였는데 운 건 나였다. 좋아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감정 이입해서 우는 나를 쳐다보던 우리 집 강아지의 표정은 진짜 세상 가관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날의 1위는 그들에 대한 나의 마음을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탈덕의 문을 봉쇄해버렸다. 내가 생각보다 이 그룹에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뭐가 날 그렇게 진심으로 만들었는지 돌이켜보면, 아마 그들이 서사가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큰 위기 한번 없이 데뷔하자마자 탄탄대로를 달렸던 몇몇 대형기획사의 아이돌 그룹과는 달리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여기까지 올라온 그들이 서사는 입덕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점점 그들의 위치가 올라갈 때마다 그들의 성공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아이돌들이 고생하지 않고 성공했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끝장나게 운이 좋은 게 아닌 이상 노력 없는 성공은 없기에 다들 본인의 위치에서 부단히 노력하여 그만큼 성공했을 것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그들이 중소기획사에서 별다른 기대 없이 시작한 아이돌이었고 모두가 망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 예상을 뒤엎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 그 성공의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1위를 하고, 당연히 처음 좋아했을 때보단 마음의 크기가 줄어들 줄 알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내 예상은 빗나가기 마련이었다. 첫 1위를 하고 그 후에도 이 활동으로 몇 번의 1위 트로피를 더 받았을 때도 똑같이 벅찼다. 가수도 팬들도 만족스러웠던 활동을 마치고 찾아온 공백기에도 아무 타격이 없었다. 공백기인지 활동기인지 모를 만큼 양질의 자체 콘텐츠가 자주 올라왔고, 멤버들은 거의 매일 트위터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대부분 셀카나 다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을 올리고, 오늘 하루 먹은 음식이나 추천하고 싶은 노래를 올리기도 했다. 공식 카페에는 더 사적인 이야기가 올라왔다. 오늘 이런 연습을 했는데 어디가 부족했고, 어떤 곡을 녹음했는데 이만큼 칭찬을 받았고, 가사를 썼는데 피디님한테 까였다는 등 누가 보면 우리도 같이 활동하는 것처럼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다. 매일 눈 뜨자마자 트위터와 공식 카페를 돌며 새로운 소식을 확인하는 게 기분 좋은 아침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 좋은 아침의 중심에는 항상 내 최애가 있었다. 그 사람의 무대가 좋았다. 귀엽게 생긴 손도, 웃을 때 접히는 눈도, 뒤돌면 보이는 풍성한 뒷머리도 좋았는데 그중 가장 좋았던 건 무대 위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모든 무대에 최선을 다했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시간 동안 내 최선의 기준은 언제나 그 사람이었다. 가끔은 무대가 먼저 부서질까 아니면 그 사람이 먼저 부서질까 싶을 정도였다. 센터에 있든 사이드에 있든, 본인 파트든 남의 파트든 늘 어디 한 곳 골절될 것 같을 정도로 춤을 추고 목이 터지도록 노래했다. 덕분에 백스테이지에서 늘 보이는 모습은 산소호흡기를 입에 대고 사는 모습이었다. 무대를 마치고 백스테이지에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좋았다. 그렇게 숨넘어가기 직전까지 갔으면서 다시 무대에 오를 땐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는 그 모습이 좋았다.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습은 더 좋았다. 늘 더 좋은 무대를 보여주지 못해 미안해했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여전히 더 성장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지난 몇 년간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는데 소위 ‘발캠’(발로 찍은 카메라)으로 인해 안무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때도, 가끔 어이없는 음향 사고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도 그깟 일 정도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굴었다. 그에게 무대에 서는 행위는 삶 자체였다. 무대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이는 그의 재능이, 그 재능을 가졌음에도 늘 자신의 부족함을 파고드는 집념이, 그리고 그 재능과 노력을 생색내지 않는 무던함과 꾸준함이 그렇게도 좋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학년이 올라가고 그들은 연차가 쌓였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강하다는 고3이 되었고 그들은 어느덧 신인에서 훌쩍 자라 다른 후배 그룹의 인사를 받는 선배 그룹이 되었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무섭게 성장했다. ‘걔네가 누군데?’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그들은 이제 ‘걔네는 알지’라는 말을 듣는 위치가 됐다. 그리고 그 성장의 뒤엔 우리가 있다는 게 참 좋았다. 대화 한번 나눠보지 못한, 눈 한번 제대로 맞춰보지 못한 누군가의 성공을 이렇게까지 응원할 수 있다는 게 좋았고, 그 마음에 아무런 대가도 없다는 게 좋았다. 그런 점에서 덕질은 얼핏 짝사랑과 비슷하다. 덕질과 짝사랑 모두 사람을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게 만들고, 태어나서 한 번도 안 해본 짓을 하게 만든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상식 좀 보겠다고 그 무서운 학생주임 선생님이 야자 감독인 날에도 무작정 컴퓨터실에 숨어있던 적도 많았고, 컴퓨터실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다가도 어느 사이트에서 그룹 관련 루머를 퍼트리거나 다분히 의도적으로 분쟁을 조장하는 악플러들을 만나면 각 잡고 키보드 배틀을 뜨기도 했다. 나는 살면서 내가 학생주임 선생님의 감시 아래에서 악플러와 키보드로 한 판 붙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만 덕질과 짝사랑의 차이점은 바라는 게 다르다는 것이다. 짝사랑은 상대방의 관심을 끌고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이 모든 일을 하지만, 덕질은 아니다. 덕질에서는 내 행동으로 인해 그들이 잠시라도 행복하면 그걸로 만족한다. 내가 누구인지 알든 모르든 상관없다. 그냥 한 번 밝게 웃어주면 그걸로 됐다.
그러나 애정은 변한다. 누군가는 감정이 변한 게 아니라 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변한 거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아무리 뜨거워도 결국 식기 마련이다. 다만 ‘몇 도까지 낮아지느냐’의 차이다. 팔팔 끓다가 적당히 뜨뜻미지근한 정도의 온도가 되느냐 혹은 급속냉각기라도 단 것처럼 영하의 온도로 식어버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고등학교 때 모든 걸 쏟아내고 끼니 대신 덕질을 챙기던 과거와는 달리, n년이 지난 지금은 딱 뜨뜻미지근한 온도다. ‘탈덕’이 아닌 ‘완덕’을 한 느낌이다. 차갑게 식어버려 끝냈다기보단. 스스로 ‘이만하면 됐다’하는 마음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렇다고 이제 아예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다. 지금도 종종 좋은 소식이 들릴 때마다 진심으로 더 잘 됐으면 좋겠고, 여전히 내 최애가 아프지 말고 삼시 세끼 잘 챙겨 먹고 웃을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응원하지만, 예전보다 조금 덜 뜨거울 뿐이다. 주위에는 후자인 친구들도 많다. 어제까지만 해도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내 가수를 하루아침에 사회 1면에서 범죄자로 만나게 된 친구도 있고, 돈과 마음 다 퍼줬더니 그걸 연애와 결혼으로 갚아 뒷목 잡고 쓰러진 친구도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참 덕질이 속절없게 느껴지고 현타가 오다가도, 누군갈 그렇게 열렬히 좋아했을 때 느꼈던 마음의 온도를 생각해보면 또 그것만큼 인생의 원동력이 되는 게 없는 것 같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덕질이라는 문화가 종종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덕질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물론 지나친 과몰입은 화를 부를 수 있지만, 적당한 과몰입(이라고 쓰긴 했으나 과연 적당히 과몰입하는 게 가능한가 싶다)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누군가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함께하고 온 마음을 다해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 행운을 붙잡은 세상 모든 덕후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덕후임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우리는 모두 행운아니까!
*이 이야기는 추후 '당근마켓에서 아이돌 굿즈 팔다가 눈물 흘린 썰 푼다.txt'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