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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미아 Aug 02. 2020

#9. 감정은 넣어두고 현실

장거리 부부의 주머니 사정


애하기 전에 둘이 택시를 타고 집에 가게 된 일이 있었다.


때마침 장마가 막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고, 갑작스레 너무 많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삼십 분이면 갈 거리를 거의 한 시간 반 정도 타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참 비슷하다고 느꼈다. 집안마다 하나씩은 있는 아빠 사업하다 사기를 당해 급격히 어려워진 사연, 그 뒤로 부모님들 고생한 기억, 그리고 집안이 다시 일어나기까지 십수 년이 걸린 그런 이야기.



그래서 그런지 우리 둘 다 과소비는 잘 몰랐지만, 생활의 기본이 되는 즉 의식주에 쓰이는 돈은 크게 개의치 않고 썼다. 특히 먹을 것에. 이런 소비습관은 결혼을 하고도 한국에 사는 내내 계속되었던 것 같다. 저축보다는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아침 대충 먹고, 점심 사 먹고, 커피 한두 잔 사 먹고, 느지막이 회사일 끝나고 오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저녁도 사 먹고, 술도 이따금 한잔씩 먹고 들어오는 그런 생활. 일주일에 한두 끼 해 먹을까 말까 한 그런 게으름뱅이 생활. 둘 다 집밥을 많이 먹고 커서 사실 외식하는 음식을 매일 먹는 것은 몸에 무리가 간다는 것은 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었지만, 입에서는 분명히 맛있다고 했다. 그리고 일 년에 한두 번씩 가는 해외여행. 그야말로 YOLO 트렌드세터.



그러다 보면 그냥 둘이 얼마 간의 정해진 용돈이나 이런 개념 없이 결국 아주 소액의 보험이나 적금을 제외하고는 월급 탕진. 사실 따지고 보면 둘이서 버는 돈이 그다지 적은 돈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생각해보면 결혼 후 첫 이삼 년은 그다지 가계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은 그런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장거리 부부를 결정할 때도 크게 부담 없이 결정했던 것 같다.



어차피 이렇게 쓰나 저렇게 쓰나 없는 게 마찬가지라면,

하고 싶은 경험이라도 해보는 게 남는 게 아닐까.






그렇게 부담 없이 결정된 장거리 부부의 삶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일 년에 최소 4번은 얼굴을 봐야 한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중에 두 번이야 내가 출장으로 한국을 간다고 하지만, 나머지 분기는 남편이 와야 했다. 그러면 최소 들어가는 항목만 하더라도, 비행기 값 + 비행기 값만큼의 외식비 더하기 이런저런 여행/쇼핑비 더블에, 묻고 (내가 한국 가서 쓰는 비용) 또다시 더블.



그리고 2015년의 두바이는 집값이 너무 비쌌다. 해외는 전세가 없으니까, 월세 개념으로 보통 혼자서는 스튜디오나 원베드 아파트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당시 집세만 한 달에 200만 원이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다행히 회사에서 지원이 나오지만, 그래도! 그리고 이런저런 숨겨진 비용이 어찌나 많던지, 내 한국 퇴직금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조인한 지 얼마 안 된 병아리가 월급 가불이라도 해달라고 할 판이었다. 거기에 자동차까지. 중고차를 샀지만, 그래서 그런가 차알못은 중고차 수리비로 수십을 가져다 바쳤다.



목돈이 한두 달 사이에 후-욱 나가고 나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싶었다. 이러다간 똔똔이가 아니라 적자가 되겠다는 위기감에 그냥 우선 월급에서 뚝 떼서 돈 모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에서처럼 회사에서 야근하는 문화가 거의 없다 보니, 일을 집에 싸들고 오더라도 우선 집에 일찍 오니까 역시나 집밥을 훨씬 자주 해 먹게 되었다.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고 살이 빠졌다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이자 0%의 두바이 은행에 잔고는 조금씩 쌓여 갔다.



남편이 두바이로 와서 생활하던 그 1.5년의 시간은 둘이 버는 절대금액이 하나로 줄어드는 그런 기간이었다. 반면 소비 액수는 여전히 비슷했다. 우리의 분기 별 만남을 위해 쓰이던 그 돈이 남편의 생활비가 되었을 뿐. 둘이 함께 있는 대신 럭셔리한 두바이 생활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었다. 다행히도 그냥 둘이 함께하는 일상만으로도 기쁨이자 행복이었으니. 풋.



감정은 넣어두고 하여튼, 우리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목돈. 서울 빌라 전셋집 보증금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 보증금을 위해 빌렸던 돈을 갚고 나니 1억 정도 되는 돈이었는데, 여기에 이것저것 잊고 있던 보험이며, 남편의 적금이며, 나의 두바이 저축을 모두 합쳐보니 대략 1억 중반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용기였나 싶은데, 우리가 살던 동네에 지나다니며 보았던 작은 빌라가 매물로 나온 것을 보았고, 집은 직접 보지도 못한 채 전세를 끼고 사게 되었다. 언제든지 곧 한국에 돌아오게 될 것 같아서, 돌아오게 되면 우리 둘이 누울 집이라도 한채 있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작은 집이지만, 나중에 돌아가면 어떻게 리모델링을 할까 지금도 가끔 누워서 생각해본다 :)






지금은 둘 다 해외에서 일하고 있다 보니 경제적으로는 생활이 훨씬 윤택해졌다. 그리고 생활이 크게 변했다. 나와 남편의 경우, 해외에서 따로 살고 있다는 것은 언제라도 서로의 나라로 혹은 한국으로 떠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많은 것을 사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7년 전에도, 3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우리가 쓰는 돈은 비슷하다. 매년 오르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해보면, 오히려 줄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만, 역시 소비"패턴"은 크게 변동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인지 단출한 생활, 단순한 소비습관이 자동적으로 생기게 된 것 같다.

대신에 단순무식 정직한 저축 잔고도 덤으로.

그리고 투자에 대한 관심과 액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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