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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미아 Aug 10. 2020

#10. 여행하듯 사는 일상의 여행

추억으로 심폐소생 중


멀리 떨어져 사는 부부들의 최고의 장점이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너무 가끔 봐서 10년이 가까운 지금도 애틋한 마음으로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 아직도 오랜만에 만난 첫 하루 이틀의 시간을 마치 소개팅 첫 만남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그리고 이전의 편안함을 기억해내는 순간까지 약간은 떨리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특히 오랜만에 만난 시간의 추억은 촘촘하게 계획으로 꽉 차있어 모든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항상 공항에서부터 우리의 추억이 시작되는데, 서로를 만나러 공항으로 내달리는 그 도로에는 여행을 가는 것 같은 그런 설렘이 있다. 혼자인 나의 일상은 그냥 생활인데, 그와 함께하는 일상은 여행을 하는 듯한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장거리 부부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틈틈이 여행을 다녔다.

두바이와 서울을 오가는 것도 지칠 때쯤에는 발리나, 세이셸에서 만나기도 했고, 두바이에서 같이 살던 그 1.5년의 시간에도 유럽 스페인, 이태리도 가보고 이집트, 혹은 베트남에 가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여행은 이웃나라 오만이었다. 그다지 볼 것이 넘쳐나지도, 먹을 것이 다양하지도 않은 나라인 데다 UAE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나라라서 풍경이 그다지 다르지도 않아 참 의외다 싶긴 하지만, 그럼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고나 할까.






2016년 두바이 한여름의 무시무시한 더위가 끝나갈 무렵, 11월 끝자락. 어디든지 가기로 했다.

가뭄에 콩 나듯 있는 두바이의 연휴가 있는 주간이었기 때문에 그냥 두바이에서 보낼 수는 없어서 여기저기 찾아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연휴 일주일을 앞두고 도착지가 어디든지 간에 비행기 값은 이미 오를대로 올라있었고, 우리는 외벌이 기간이었던지라 가성비가 아주 중요했다. 평소보다 비싼 돈을 내면서 까지 붐비는 비행기 안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아서 운전해서 갈만한 딴 나라를 찾아보니 오만밖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연휴 3일을 앞두고 구글 지도를 보면서 우선 갈만한 도시 몇 군데를 정해서 바다를 끼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을 계획하며 숙소를 예약했다.



물론 떠나는 날 아침이 되어서야 비로소 짐을 후다닥 싸기 시작했다. 체크인 시간도 없고 우리가 준비되면 떠나면 되는 여행이니까. 그리고 이런 여행에 술이 빠질 수 없지... 며칠 전 출장길에 사 온 미니와인 세트도 한 박스(라고 해야 7병), 이런저런 먹거리, 한국 컵라면도 몇 개 챙기고, 옷이랑 신발도 이것저것 넣고 신나는 마음으로 떠났다. 한국에서의 동해바다, 제주의 해안도로를 상상하며, 여행 직전 모든 점검을 마친 든든한 나의 귀여운 푸조, 일명 푸돌이에 올랐고 우리는 오랜만의 장거리 운전에 신나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우리 둘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긴장과 설렘이 공존하는 그런 여행이었고, 그게 시작이었다.



국경을 처음으로 넘는지라 앞차만 정처 없이 따라서 가다 보니, 하필 초대형 트럭들이 주욱 서있는 사이에 마치 근육맨들 사이에 끼어있는 어린이 같은 모양새로 한참을 서있다가, 줄을 잘못 선 것 같아서 여기저기 물어보다가 그만 국경 넘는데만 세 시간이 걸렸다. 긴장감으로 땀을 빼고, 남들 서너 시간이면 온다던 거리를 두 배는 넘는 시간이 넘게 걸려 첫날, 무스캇 숙소에 도착했다. 오는 동안에 것이라고는 돌산밖에는 없었지만, 쿵짝 쿵짝 노래를 들으면서 오는 길이 신났다.






오만에서 다들 간다는 유명한 곳 중 하나는 싱크홀 호수였는데, 말하자면 한국의 계곡과 같은 곳이었다. 물이 워낙 맑아서 그런지 적어도 새끼손가락만 한 근육질 닥터피시들이 엄청 많은 곳이었다. 우리가 방문한 그 날, 그 동네 물고기들은 먹을 것 많은 잔치에 초대되어 잔치에 참가하는 족족 다들 몇 분 만에 통통하게 살이 쪄 돌아갔고, 남편은 십여 년 만에 작고 보드라운 매끈한 아가 발을 가지게 되었다.



오만에서의 하이라이트는 가장 높은 자벨 샴스라는 돌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푸돌이를 끌고 돌산을 올라 시속 10킬로의 속도로 아찔한 절벽을 오른쪽에 두고 초미세 바늘귀에 실을 꿸 때의 집중력으로 호흡마저 참고 살금살금 기어 올라갔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을 때 다행히도 산 중턱의 슈퍼에서 커피 마시던 로컬 아저씨를 만나 구식이지만 멋진 4x4로 갈아타고 한 시간이 걸려 푸돌이 타고 올라온 거리만큼을 고작 십 분도 되지 않는 시간을 달려 정상에 도착했다. 오만의 그랜드 캐년이라는 아찔한 절벽이 즐비한 절경과 거기에서 부는 바람을 만끽하고 다시 쪼그라든 심장을 품고 푸돌이에 의지한 채 슬금슬금 기어 내려오니 또 다른 하루가 다 지나갔다.



두바이로 돌아오던 날까지 쪼그라든 심장은 펴질 새가 없었다. 제일 먼저 짐가방 속에 챙겨 넣었던 미니 와인이 화근이었다. 원래 음주면허가 없으면 술을 차에 넣어 운반하거나, 혹은 집에서 마시는 것도 불법인 나라인 데다, 하필 그 연휴라는 것이 종교적인 무엇인가를 기념하는 날이라 공식적인 "Dry Day - 술 판매 및 금주의 날" 였던 것이다. 그래도 설마 뭐 검사하겠어라는 생각으로 남은 미니와인 몇 병을 트렁크 속 깊숙한 곳의 미니 파우치에 넣어두었는데, 국경 시큐리티에서 갑자기 차 트렁크를 열어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설마가 사람 둘을 잡는 상황이었다. 떨리는 맘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트렁크를 열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슈트케이스와 그 안에 모든 파우치와 작은 주머니를 하나하나 검사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얼음이 되어갔다.


아... 술병 걸리면 머리 깎여서 교도소에 우선 집어넣는다는데, 교도소에 있다가 범죄기록 남겨서 본국으로 소환된다던데... 하는 갖가지 검증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공포스러운 루머가 떠오르면서, 우선 외벌이인 나는 감옥에 못 가는데 그럼 우리 남편은 이제 어쩌나(?)하는 마음에 머릿속이 깜깜하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남편을 감옥에 안 보내려면 소소하게나마 저금했던 돈이 얼마였지, 현금이라도 한번 찔러줄까 하는 갖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그 와중에 와인은 당연히 걸렸고, 누가 봐도 최대한의 노력은 안 보이게 조그마한 가방에 따로 싸놓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국경 시큐리티에서 일하는 언니는 그날 기분이 좋았는지, 이러면 안 된다는 경고만 한 채로 쿨하게 보내주었다.


하아 - 수명이 한 달은 단축된 기분이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돌아왔지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돌아와서도 한 2주도 채 되지 않아 푸돌이가 영 시원치 않았다. 한 동안 두바이 시내만 돌아다니는 꿀보직에 있다가 오만에서 몇천 킬로를 달려 무리해서 그런가 했는데, 이상할 정도로 기름 냄새가 계속 차에 퍼져 결국 다시 정비소에 찾아가니, 엔진오일을 넣는 곳의 뚜껑이 사라져 기름이 여기저기 튀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동차 보닛을 연적도 없는데, 어디서 뚜껑이 떨어졌다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여행 가기 전 그 정비소에서 점검했을 때 이것들이 까먹고 잠그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명백한 심증은 있었지만, 그 상태로 장거리 일주일 동안 40도가 넘나드는 뙤약볕에서 터지지 않고 시속 140Km를 매일 같이 몇 천 킬로를 달려 무사히 돌아온 것에 감사했고, 우리 둘 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우리가 미처 참전한지도 몰랐던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전우애와 같은 것을 쌓게 되었다.






이런 추억을 굳이 꺼내서 기억 심폐소생을 하고 있는 2020년의 나는,

한달 내내 5분 거리의 마트가도 좋으니, 얼른 하루빨리 여행 가는 기분으로 공항에 마중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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