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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미아 Sep 05. 2020

조금 부끄러운데 말할까 말까,

/날카롭고 달콤한 추억/


엄마는 계속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와 둘째가 현재 진행형인 각자의 달콤하고 험상궂은 연애담을 자랑하듯이 쏟아내며, 한 여름의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한 잠실 도넛 가게에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엄마는 기계처럼 고개를 끄덕이는데 우리와 함께 앉아 있었지만 분명 거기에 없었다. 혼자 입꼬리가 씰룩하고 움직이더니 이내 입을 뗐다.



"그런데 말이야, 지난 주말에 아빠랑 영화 보러 갔잖아, 그 비 엄청 오던 날"

응? 뜬금없이 무슨 소리지. 그날 뭔 사고라도 있었나?


"아빠가 갑자기 길에서 뽀뽀를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너무 놀라가지고..."

분명 놀랐다고 하지만, 가뜩이나 통통한 엄마 볼이 발그레해가지고 입꼬리가 아직도 들썩이고 있었다.


"뽀뽀오-? 길에서?? 갑자기!!!"

너무 예상하지 못한 전개라 나와 내 동생은 입을 틀어막고 눈이 동그래졌다.








코엑스 메가박스는 수정이와 범수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관이었다. 강변 CGV보다 자리도 넓고, 영화관까지 걸어가는 길엔 평소에는 잘 안 가봄직한 카페며 레스토랑이 즐비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항상 기념일은 메가박스에 영화표를 끊었다.


그리고 그날은 장마철 끝물이라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려서 작은 우산이 하나 더 있긴 했지만, 그냥 둘이 큰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걸었다. 코엑스 앞 8차선 도로는 넓어서 그런지 횡단보도 신호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신호 하나를 보내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갑자기 큰 우산이 앞을 가렸다.



뭐지?

수정이가 옆을 돌려 범수를 보는데, 범수는 찰나의 순간에 담백하게 쪽.



너무 놀라 잠깐 멍하게 있다가 정신이 든 수정이는 혹시라도 주변에 본 사람이 있을까 싶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이 참 주책맞게... 그런데도 갑자기 두근 대는 심장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결혼 20년 만에 너무 놀라 그런 거지 싶었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온 것 같은데, 그다음 날이 되었을 때는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 따위는 기억나지 않고, 그냥 그 "쪽"하던 순간의 멈칫한 두근거림만 생각났다.








사실 엄마는 어딘가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다른 어른 친구들한테 이야기하기엔 야유를 들을 것만 같고, 딸들에게 이야기하기에도 왠지 모르게 남사스러워서 한참을 고민했다. 첫째의 20대 마지막에 시작한 연애 이야기며, 둘째의 서울역 고목나무 매미 폭행사건*따위는 관심이 사실 없었다.


그냥 이야기를 할까, 말까, 그냥 할까? 의기양양해진 엄마는 말했다.



훗, 너네만 알콩달콩 재미있는지 아니?

엄마도 아빠랑 이렇게 가끔은 두근대며 산다고.






*고목나무 매미 폭행사건: 장거리 연애 중이었던 둘째(매미)가 남자 친구에게 몹시 화가 나, 남자 친구의 부산 복귀전에 서울역에서 점프를 하며 고목나무와 같았던 남자 친구의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퍽퍽 내리친 사건. 이유는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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