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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미아 Jun 06. 2020

#2. 그냥 평범하게 살면 안 되겠니

평범을 다른 평범으로 뿌시기

기러기 가족이라고 하면 보통 아빠나 남편이 해외로 가고 자식들과 엄마, 혹은 와이프는 한국에 있는 경우가 여전히 대다수의 케이스다. 최근에 많이 소개되는 있는 전업 파파도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엄두내기 힘든 소수의 특권 혹은 아주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남편을 한국에 두고 해외로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을 때, 이 결정을 모두가 쉽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나의 엄마 아빠는 우리에게 큰 표현을 하진 않으셨지만, 사위에게 고마운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세 딸 중에서도 평소에 가장 이기적이고 가끔 제멋대로인 첫째였기에, 남편도 지지해준 그런 결정이었다고 말해도, 상대적으로 순둥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위가 결국 져줄 수밖에 없었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다. 어쨋든 예전에 3년 정도 해외로 딸내미를 보내본 경험이 있는 친정부모님은, 특히 갱년기를 한창 지나고 있던 엄마는 맘속으로는 딸이 가까운 곳에 있기를 누구보다 바랬을 텐데, 그럼에도 내색 없이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다. 그래 너 인생이니까.



한편, 시댁 부모님은 약간 놀라신 것 같았다.

둘이 지금도 잘 살고 있는데 굳이 왜 그런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인지, 사실 따지고 보면 굉장히 근본적인 질문을 하셨다. 엄마 친구 아들 딸들은 뒤늦게 결혼해도 손주들도 척척 낳고, 저축도 하면서, 오손도손 잘 사는 것 같은데, 그렇게 떨어져 살면 이런 것들은 어찌하려고 하는지 걱정하시는 듯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기 전에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마다 항상 물어보셨다. "그냥 평범하게 살면 안 되겠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물어보신다. 사실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아쉬움에 대한 푸념이다. 며느리가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게 되셨던 것이지.


우리 시댁 어른들, 특히 어머님은 유쾌하기도 하시지만 원체 성격이 쿨하신 편이라 생각하는 것들은 편하게 표현하신다. 덕분에 나도 그냥 크게 돌리지 않고 말씀드리는 편이다. 한마디로 착한 며느라기가 되기를 포기했다는 말이다. 그런 나에게도 답변하기 참 애매한 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거다.




"제 주변엔 해외에서 사는 애들 엄청 많아요,
다들 직장 잘 다니고 아주 평범하게 잘 살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물론 그들이 보통 가족 전체가 이민이나 혹은 대학원을 목적으로 이사 갔다거나, 대다수가 싱글이라는 이야기는 따로 덧붙이지 않았다. 혹은 국제결혼이라거나.



아마도 1950-60년대에 태어나신, 열심히 가족들만을 위해서 살아오신 어른들에게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 오손도손 아들딸 낳고 키우면서 경제적으로 알뜰살뜰 살면서 집 사고, 큰 탈없이 사는 것이 <평범한 행복>이라는 것의 가장 평범한 정의일 것이고, 그것은 요즘에도 크게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미 그 <평범한 행복>을 위해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식이 굳이 조금 다른 삶을 살겠다고 결정한 것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인 데다, 가능하면 그냥 한국에서 살도록 설득하고 싶어 하셨던 것 같다. 둘이 장거리 부부가 되기 전, 한국에서의 마지막 2-3개월의 시간 동안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계속해서 안심시켜드리고, 결과적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모두가 만족할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불편한 주제였으니까 말이다.


부모님의 아쉬움도 이해하지만, 이렇게 (당분간) 살기로 결정한 것은 우리로서도 쉽지 않았고, 우리가 제일 힘들 것이라는 것은 너무 분명했기 때문에, 당사자인 나와 남편 이외에 다른 이들을 위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불편하지만 필요했던 이런 순간들을 거쳐 두바이에 도착해서 고작 몇 달이 채 되지도 않았을 때, 바로 알게 된 것은 나의 삶은 지극히 평범하다는 것이었다.


어디에 살든 간에, 같은 국적의 사람들은 서로 교류를 하게 되어 있는데, 두바이에서도 나와 같은 장거리 부부생활을 하는 동생도 만났고, 해외에서도 애 낳고 일하면서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다. 나를 포함해서 전혀 특별할 것 없이 회사생활에 대해, 삶에 대해, 경제생활 및 연애, 결혼생활에 대해서 같은 고민을 하고, 노력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는 언니, 동생, 친구들 말이다.



나도 40을 곧 바라보는 어른이지만, 나의 어른들은 더더욱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며 평범하게 살아"라고 하시는데, 그런 말에 너무 깊게 동의하거나 맞추어 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오면서 평범한 행복이라는 그 세대만의 공식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이 살아오신 세월보다는 훨씬 다양한 종류의 즐거움과 행복이 있고, 생각보다 쉽게 경험할 수 있으며, 살아가는 방법도 예전보다 다채롭기 때문에 자기 확신과 자신이 있다면, 불편해도 그냥 마주할 가치가 있다.


지금도 그다지 마음 편하지 않은 그런 주제이지만, 평범이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면 계속해서 말씀드리게 될 것 같지만,


.

.

.

저희 평범하게 잘 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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