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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미아 May 30. 2020

#1. 남편을 보내던 그날의 기억

첫날밤의 Random Emotion


2015년 3월 27일, 꽃할배 두바이 편 방송하던 날.

부르즈 칼리파가 나오던 그 시각 두바이행 비행기를 탔다. 시작은 혼자는 아니었다.


단순히 중동이라는 지역이라서 가족 모두가 걱정을 했는데, 사실 당시만 해도 두바이가 어떤 곳인지 특별한 관심도, 알만한 계기도 없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환경에서 살게 될지 잠깐이라도 직접 눈으로 보는 편이 낫겠다 싶어 남편도 일주일 휴가를 내고 함께 두바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두바이가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 독일을 간다고 했어도 둘이 갔을 것이다.

그런 게 부부니까.


짐이 평소 여행보다 좀 많기는 했지만, 그동안 여행에 익숙했던 나라들과는 전혀 다른 공항에서부터 느껴지는 아랍 국가의 초 이국적인 모습에 마치 여행을 온 것 같은 설렘과 즐거움이 있었다. 하루는 멀리서도 반짝이는 부내 나는 쇼핑몰에 가서 둘러보기도 하고, 도심에서 고작해야 십분 거리에 있는 바닷가에 가서 휴양지의 느낌도 느껴보고, 한국에서 누군가에게 들어본 치즈케익팩토리에 가서 미쿡스케일의 메뉴/사이즈에 놀라기도 하면서


"맛있는 것도 많고, 깨끗하고, 안전한 것 같고, 생각보다 살만한데? 나쁘지 않겠어" 둘이 함께 서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현실감각 없이 안도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여행 같은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 남편과의 시간이 고작 이틀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 되었을 때 시간은 이전과 확연히 다른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잠깐 쉬고 나면 서너 시간이 금세 지나서 늦은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금방 내일이 올 것만 같아서 맘이 급해졌다.



.

.

.

우리 오늘은 나가서 저녁 먹을까?


아는 곳이 별로 없고 외출 준비를 하고 싶은 마음도 그다지 들지 않아서, 결국 떠나기 전날 밤에는 그냥 묵고 있는 호텔 1층에서 먹기로 했다. 흔한 호텔의 간단한 뷔페식이었는데, 맛이 없었다. 그냥 정말 아무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밥을 먹다가 남편이 빤히 오랫동안 내 얼굴을 쳐다보는데, 눈을 마주치자마자 갑자기 울컥. 눈가가 뜨끈한 게 눈물이 금세 그렁그렁 차올랐.


내가 선택한 거니까 씩씩하게 웃는 얼굴로 남편이 떠나는 날까지 시크하고 쿨하게 있고 싶었는데, 모태 감성찔찔이인 나에게 그건 그저 나의 바람이었다. 남편은 애써 나를 웃겨주려고 진정 다정한 쿨남의 표정으로 농담을 던지고 있었고, 또 네가 울면 나는 어떡해야 할지... 라며 진심을 전하고 또 격려해 줬다. 그래서 나는 울먹이면서 또 웃었다.



나의 마음은 사실 엉망인 얼굴 표정만큼 복잡하지는 않았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은 이미 한국에서 두바이행을 결정했던 그 순간부터 느껴왔던 감정이었다.


그 마지막 밤엔, 혼자서 심한 터뷸런스를 겪으며 돌아가야 하는 남편의 9시간 비행길이 외롭게 느껴질 것 같았고, 한국에서 나의 빈 공간을 느끼며 한동안 살아야 할 남편이 좀 짠해졌다. 다른 집안일은 누구보다 잘하지만, 요리에는 영 재능이 없는 남편이 걱정도 되었다. (후에 더욱 오동통해진 남편을 보고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무엇보다 이제 막 시작한 이런 헤어짐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니, 그냥 정말 헤어지는 것 같은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일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은 어차피 나의 몫인 만큼,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할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하고 왔지만, 이별에 대한 감정에 대한 것은 백번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무방비 상태에 옆구리를 푹-하고 찔린 것 같이 터져버리는 게 소용이 없었다.



우리가 진짜 장거리 부부가 되던 첫날밤,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훔치면서 배웅하러 공항으로 갔다. 체크인을 하고 남편은 네가 먼저 택시 타고 호텔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했다. 아마도 훤히 밝은 공항에서 나 혼자서 누가 봐도 울고 난 버얼건 얼굴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탄 택시를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남편의 또 다른 배웅을 받으며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의 택시 기사 아주머니는 유난히 다정하게 알라신과 인샬라를 찾아가면서 이런저런 위로를 해주었다.

내릴 때가 되어서야 그것은 추가 비용 2500원어치의 위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눈물이 쏙 들어가고, 다시 전투태세가 되어버린 첫날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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