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

한바탕 구르고 나면 꽃이 피니까

by 이브의 설렘




새로움의 연속이다. 벌이 아직 벌집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적에 벚꽃과 매화와 목련이 한꺼번에 피더니, 이제는 완연한 봄의 시기인데도 봄이 아니다. 밀린 인류세를 내라고 독촉하고 있다. 여름의 기온으로 불쑥 들어온 날씨가 반갑지가 않다. 꽃샘추위가 아니라 꽃샘더위 때문에 시원해지는 저녁을 대비하기 위해 긴옷을 입어야 하는지 낮의 더위를 피해 반팔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잘 때 입었던 그대로 나왔다. 브라도 없이 바지만 갈아입고서.


아! 내 마음도 옷차림처럼 대중이 없다. 조금 기쁘고 많이 혼란스러웠다가 조금 기쁘고 많이 평온해진다. 말 그대로 오락가락한다. 주말엔 좀 들뜨기도 멜랑꼴리하기도 했는데, 어제와 오늘은 길었던 미련과 후회와 작별할 수 있어 후련한 기분이다. 흐렸다가 맑았다가 붉었다가 노랗다가 한다. 사시사철 변하는 빛이 가슴 안에서 무수히 흘러간다.


4월엔 내 이야기를 쭉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는데 거의 그러질 못했다.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 걸까. 어떻게 하면 나에게 집중해서 생산성 있게, 알차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인지 삼십 년째 모르겠다.






엊그제엔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시작한 지 3주째였다. 3주라고 해도 시간으로 보면 3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내 이야기를 압축하거나 부분을 상세하게 따오거나 하며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뱉어내고, 전문가의 조언과 판단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보냈다. 아무 문제가 없어보이는 신체여도 정기검진을 받는데 心은 그러지 못 할 이유가 뭐가 있겠냐는 생각을 하게 된 뒤로 언젠가 심리상담을 받아보고 싶었는데, 올해 초 대전시 청년 상담 지원 소식을 보고 신청해 7회짜리 지원 상담을 받고 있다.


멀쩡한 게 더 많아 보였던 마음을 털어보니 스스로 알지 못 한 결핍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상처는 생각보다 깊고 커서 내 생활과 정신 체계의 방식을 특정 방식으로 끌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직 모르는 게 더 많지만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평소에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근래 내게 가장 큰 이슈와 복잡한 감정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줄줄 털어놓는 편이고,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나눌수록 나와 상대의 중심에 깊숙이 맞닿을 수 있어 그런 시간이 너무나 만족스럽고 소중하지만 상담은 친구와 대화하는 것과는 다른 이점을 가져다 준다.


상담 전문가가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전문적인 지식으로 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데, 이름과 이력과 얼굴 생김새밖에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생각과 감정을 속속이 밝히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괜찮은 일이라는 걸 경험 중이다.


비폭력대화를 배우면서, 지난 1여년은 현재 또는 과거의 감정과 욕구와 느낌을 알아차리려 노력해온 나날들이었다. 나의 불안과 두려움과 수치심을 숨기거나 외면하지 않고 직면해 보았지만, 앞에 걸린 거울 없이 내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나를 멀리 떨어져서 보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나 자신과의 대화 뒤엔 아쉬움이 남곤 했다.


명암이 드리워 결여되어 있는지도 몰랐던 점을 전문가분이 짚어주고 그러면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휴지를 찾는다. 몇 분 숨을 가다듬고선 '그러네요. 저한테 그런 게 있었네요. 맞아요. 그랬네요.' 라고 말한다. 아마 평생 알지 못 할 수 있던 나의 결핍에 한 대 얻어맞았는데 후련해하고 있다.


평생 해나가는 일이겠지만 내 안에 있는 불안과 수치와 두려움 속엔 무엇이 들어있어서 그런 빛깔을 밝히고 있는 것인지 계속해서 들여다 보고 싶다. 나를 위로하고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과거에는 너무나 억울하고 힘들었다. 누가 내 인생을 대신 좀 살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지금은 나만이 나를 토닥이고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른다.


25일이 다음 상담일인데 얼른 이날이 오면 좋겠다. 벌써 4회밖에 남지 않아서 아쉽다. 외면을 가꾸는 데에 돈을 덜 아끼게 되었으니 내면을 위해서도 돈을 들이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상담을 계속해보고 싶다.





언젠가 또 힘들어지는 때가 오겠지. 그럼 그때는 '똥밭을 굴러도 이승에서 뒹구는 게 낫다.'는 유명한 농담 뒤에 '한바탕 뒹굴고 나면 그 위엔 싹이 트고 꽃들이 피어날 거야. 그러고 나면 그 향과 색과 풍경은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울 거야 ' 라는 말도 덧붙인 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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