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5
상담을 받고, 아삭한 친구들과 깔깔 웃고 나는 내가 좋고
by
이브의 설렘
May 27. 2023
아래로
"에? 뭐야 이 테이블은? 이제 봤어~ 예쁘다~!" 하고 놀라며 감탄하는 나를 보곤
아삭한 친구들은 "아니!? 어떻게 저걸 이제 봐? 들어올 때 이게 안 보였다고?" 하고 나보다 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문 앞에서 이 테이블이 정말 안 보일 수가 있는가~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깔깔 웃었고 그 모습에 나도 깔깔 웃었다.
이 예쁘고 화려한 꽃들이 올라가있는 커다란 테이블이 떡하니 놓여있는 걸 나중에서야 알아봤다니.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눈앞 정중앙으로 테이블이 자리잡아 있고, 그 위에 이렇게 풍성하게 꽃들이 꽂혀있는데
그걸 못 보고 지나쳤다니 말이야! 대단한 걸?
역시 나는 내가 관심 있는 부분만 보는구나! 전체가 이렇게나 눈에 안 들어온다니! 재차 봐도 놀라웠다.
더 놀라운 건 이 친구들과 있으면 이런 점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에~~~ ㅋㅋ 신기해라! 나 진짜 잘 못 본다~ 왜케 잘 까먹지? ~ 기억이 안 나다니~~ 내가 관심 있는 거만 보이고 기억한다니~~"
하고 그냥 그런 내가 인정이 되고, 귀엽기까지 한다.
오늘도 몇 번이나 단어를 엉뚱하게 들어서 빵 터졌고~
(그 와중에 뭘 엉뚱하게 들었는지가 기억이 안 나네)
수다를 떨다가 처음 들어보는 서점 이름이 나와서
와~ 거기가 어디야? 라고 말하다가
아! 맞다! 나 며칠 전에 거기 갔어! 하고 기억해냈고, 그 말을 들은 친구들과 다같이 깔깔깔 웃었다.
이 사람들과는 내가 뭐를 제공하지 않아도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가슴 속이 풍족해져서 절로 웃음이 난다.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건
아삭한 친구들 덕이다.
정말 너네가 너무너무너무 좋아!
앞으로도 나랑 같이 놀아! 라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아무 걱정 없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해주어 고마워.
예전엔 이런 나의 특성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들키고 싶지 않아도 이미 다들 알았겠지만 ㅎ)
과거가 쉽게 휘발되고, 산만하고,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흥미가 금새 다른 곳으로 옮겨져서 뭐 하나를 끈덕지게 잡고 있질 못하는 거 같은 나를.
주변 사람들이 나무라는 듯 할 때마다 당황스럽고 창피했고 내가 미웠다.
남들과 다르고 덜 떨어지는 거 같아서 말을 사리고 움츠렸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그냥 내 모습 중 하나이고 아주 재밌는 특징일 뿐이다.
이런 점들 덕분에 일상에 웃긴 에피소드도 많이 나와서 또 어떤 추억이 생기나 기대가 될 경지에 섰다.
전체를 잘 보지 못하는 대신 나의 관심사나 주의가 가는 곳에 극도로 집중이 잘 되고
주변 사람들이 찰나에 띄는 표정과 감정도 아주 세밀하게 관측할 수 있다.
잊고 싶은 기억도 잘 잊혀져서 미운 것도 화나는 것도 잘 잊혀지니 대체로 맘이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오늘 상담에선
상대를 돌보고 상대의 행복에 기여하는 데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생각&행동 패턴을 살펴보았고, 중심 결핍을 짚어보았다.
엄마는 나를 충분히 사랑해줬다는 걸 알지만
성인이 된 나를 돌아보니 '돌봄'이라는 테마의 결핍을 갖게 되었다.
그때의 엄마는 나를 사랑해주었고
동시에 많이 아팠고, 엄마이기 전에 한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힘이 벅찼기에 나를 혼냈고
힘이 넘치고 건강하고, 욕심이 많아 자기 주장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둘째이고, 알아서 잘 크는 아이처럼 보여서 언니와 동생들보다 신경을 덜 썼을 수 있겠구나.
그게 나는 슬펐구나. 아팠구나.
나도 더 돌아봐주고 돌봐달라고 칭얼대고 싶었구나.
그래서, 필사적으로 공부해서 만든 1~2등급이 찍힌 성적표를 엄마 아빠에게 보여줬는데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간 엄마아빠에게 많이 서운했구나
은우가 그랬구나. 하고 토닥이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내 마음은 어떤지 들여다보고 충분히 느껴주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뭐가 더 있을지 앞으로도 내 안을 살펴나가야지
엄마에게서 받고 싶었던 '방식/형태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감정이 내 안에 쌓여있어서
'돌봄을 받고 싶은 욕구'가 내 근간에 깔렸고
그 결핍을 채우고 싶어서 동물들과 친구들과 사람들을 돌보고 챙기길 좋아하게 된 것이라니.
내 보살핌으로 안전해지고 좋아지는 모습을 보며 일종의 대리 만족을 하게 되는 것이라는 설명에 아! 하고 감탄이 흘러나왔고 조금 많이 슬펐다.
거기다 남들에게 이렇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해 왔다랄까...그런 회로가 내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니.신기해!
나는 기질적이길 '사회적 민감성'이 고도로 발달해 있고, 성격적으로는 이타성이 높다고 했다.
타고나기를,타인에게 친밀감을 쉽게 느끼고 정서적으로 개방적이며 감수성이 높다는 것이다.
거기에 자극 추구(무절제, 자유분방) 점수가 높지만 위험을 회피하려는 면도 어느 정도 있어서
새로운 것들에 흥미를 가지고 그것들을 경험하는 데 활짝 열려있으면서도
나를 다치게 할 수 있는 것들을 본능적으로 경계할 수 있어서 나를 보호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다행인 점이었다.
(불쑥,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졌다고 면허와 헬맷도 없이 질주부터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걸 시도하되 주의할 건 주의하는 식이랄까)
자극을 추구하는 동시에 인내력(그 중 '근면')은 매우 낮은 편인데 이 덕분에 '실용적으로 움직이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이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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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래서 내가 다양한 것들을 하고 싶어하는데 그러면서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 한 것들이 있어온 거구나
그래서 아주 찰나에도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에서 탁탁탁 튀어나오는 거구나~
그걸 줍줍 하다가 그 바로 전에 했거나 떠올렸던 일은 머릿속에서 날아가버리기 부지기수인 이유가 있었구나~~
기억이 나지 않아~ 하는 게 참 많은 이유가 있었구나~~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풋살이 좋고, 사람들과 함께 하길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흥미를 가져서 시작했다가 금새 다른 데에 눈이 돌아가서는 더 재밌어 보이는 거를 하고 싶어했구나~
아하! 아하! 하며 머릿속이 바빠졌다. 나를 한 층 더 깊이 이해하게 되어 눈물이 나면서도 기뻤다.
아무튼 나는 이런 사람이고 아주 마음에 든다.
내가 마음에 든다니, 이십 대의 나에게 미래엔 너를 사랑할 수 있고 많이 행복해질 거라고 말해줘도 믿지 못하겠지.
원래의 나로 살아가는 기분은 정말이지 너무나 산뜻하고 가볍다. 그냥 나의 모습대로 살아가면 된다. 어려울 게 없다.
나를 들여다보고 알아차리고 인정해준 몇 년의 과정들은 날 울게 하고 웃게 하다가 드디어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훌쩍이다가도 툭툭 털고 길을 나설 수 있게 해주었고
투명한 눈동자로 반짝이며 웃을 수 있게 되었고
잘못 알아들으면 이렇게 잘못 알아들었다고 말하며 깔깔깔 웃고, 친구들을 데려다주며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게 뿌듯하고
나는 되게 빛나는 사람이구나~ 멋진 사람이구나~ 하는 하루를 보내게 해주었다.
하고 정확히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싶고 나를 숨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상대도 나에게 그러기를 바라기에 상대의 감정과 욕구를 살피고 싶고, 묻고 싶고, 함께 배워나가고 싶다고.
그렇게 해도 서로에게 갈등이 일어날 거고
그럴 때는 언제든 상담을 받아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에 도움을 받고 싶다고 대답했는데
예전의 나였으면 상상도 못 할 말을 하고 있어서 신기했다.
감정을 숨기기 급급하고, 욕구를 부정하고,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게 어려웠는데 말야...
그리고
애착하는 대상에게 '감정적으로 의존적'이거나
'독재적'으로 굴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는 말도 나왔는데
그동안 나에 대해 관찰하고 분석해온 상담사님이
애착하는 상대를 과도하게 신경 쓰고 의존하고 싶은 그 마음을 알아채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앞으로의 변화에 아주 긍정적인 면이니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좋겠고
(유대감과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서인 건지?) 파트너를 향한 감정이 오래 꾸준히 지속되는 편일 것이고, 상대의 감정을 살피고 의견을 조율해나갈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해주었다.
오오~~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누굴 사귀어 봤어야 알지~ 껄껄
나를 정확히 관찰당하고 분석당하는 건 정말 흥미롭다. 생기가 돋아나게 한다.
아무튼~~ 기억나는 것들은 여기까지이다.
벌써 새벽 2시 실화야?
긴 글 읽어준 사람들 땡큐 베리 감사.
아! 칭찬 하나 하자면
이런 속 이야기도 그냥 공개적으로 털어낼 수 있는 나, 아주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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