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인 문제 해결 후 찾아온 평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의 불화로 마지막이라 생각해 늦은 밤에 집을 나섰습니다. 아파트 23층 꼭대기에서 떨어질 생각에 옥상 문을 열었지만 실패해서 추운 날이니까 얼어 죽을 생각으로 옥상 문 앞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추워서 잠자긴 힘들더라고요. 노숙자분들이 잠자기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퍼뜩 난 이렇게 죽을 준비하는데 아무 연락도 안 하는 남편이 너무 미웠어요. '집에 애들이랑 있을 텐데.', '혼자 재워야 할 텐데.'라는 상념들이 떠올랐죠.
그리고 직계가족에게도 마지막 전화를 하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산책 겸 밖에 나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직계가족 중에선 제일 편한 사람이 동생들이라 먼저 전화를 걸었죠. 둘째는 받지 않아 막내에게 전화 걸었습니다.
다행이랄지 전화를 받아주니 마음이 좀 놓이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남편과 싸울 때 힘든 심경을 얘기했죠. 하지만 깊숙한 곳에 있는 건 꺼내기 두려웠어요. 가족 모두가 꺼리는 주제기도 하고 모두가 가슴 아픈 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그런데 동생이 "언니가 우울증이라길래 논문을 찾아봤다."라는 말을 해주더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얘기에 심장이 쿵 하더니 코끝이 먼저 찌르르했습니다. 눈물은 전화 끊고 나더라고요.
너무너무 고마운 일에 형용키 어려워 횡설수설했던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말을 하며 끊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고, 오로지 감사한 감정과 덕분에 심해 속에 있던 기분을 조금이라도 수면 가까이 끌어 올려진 느낌만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제일 중요했던 요소는 저를 알아주려고 노력한 마음이었죠. 외면하지 않고 제대로 보려고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구나 하고요. 그리고는 실성하듯 웃어젖혔어요. 바보 같은 방법으로 죽으려고 한 나 자신에게 웃겨서요. 정말 죽을 생각이라면 더 혹독한 생각이라야 가능하구나, 내가 하려던 거는 시위뿐인 되지 않았다고 하는 생각 때문에.
그다음은 울었어요. 꺼이꺼이 울고 싶었는데 가슴에 뭐가 꽉 막혀 풀어지지 않아서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그냥 집에 낭창낭창 걸어 들어갔습니다. 아직도 남편은 그때 제가 화가 나서 외출을 한 거고, 아무 일도 없던 것으로 알 겁니다. 정말 짧은 시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도요.
그다음 날부터는 정말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서 엄청난 노력을 했습니다. 전처럼 자해하지도 않았고 손발이 떨린다거나 어지럼증 같은 것도 없었기에 오롯이 살기 위해서 ‘나’를 찾아가는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죽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진 건 아닌지라 그 불안감에서 빠르게 헤어나오기 위해 힐링 되는 영상을 틀어놓고 강제로 봤어요. 좋아하는 게임 스토리 영상이나 플레이 영상보다는 사람 냄새나는 미담뿐인 이야기들 위주로 보면서 나도 주변에 저런 사람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텐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 보다가 내가 혹은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궁금해져서 심리쪽을 팠습니다. 오은영 박사님 강연 같은 영상들을 보고 조금씩 이해하고, 정혜신님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도 개념을 채웠죠.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 도움들뿐인지라, 제 안에 저도 모르게 자리잡은 꼬인 쇠사슬을 푸는데는 조금 헤맸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본 외국인 강의 내용에서 완벽한 해답을 얻고 그날부터는 죽고 싶다는 생각부터 사라지면서 불안한 상태가 점차 나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