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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토리 Jun 22. 2021

우울증은 '울분'에서 시작해요

나를 만지는 중요함

 제가 봤던 외국인 강연 영상은 우울증에 관한 강연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는 영상들을 알고리즘에 의해 따르다 보니 얻어걸린 영상이었죠.


 영상 속 강연자가 하고 싶은 말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저는 재미없게 듣고 있다가 딱 하나에 꽂혔습니다.


[과거는 축복이다.]


 과거의 내가 자의든 타의든 어떤 이유로 아파했고, 아픈 과거들을 이겨내거나 덮고 세월이 흘러 현재의 내가 된 게 축복이라는 내용이었죠. 과거는 성숙해질 수 있는 기반이자 요소. 세상의 순리이자 이치이지만 지금 내가 왜 아픈지에 대한 해답은 거기 있었어요.


 기질에 따른 각자의 성향도 있겠지만, 쌓이고 쌓이는 경험치와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의 부정적인 지름길이 많을 때 사람은 아파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개념이 생겨나기 때문이죠.


 정신질환의 발병이유 중 외부적 요인이 클 수밖에 없는 건 태어날 때부터 부정적인 회로가 열려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후천적으로 상황에 따라 긍정적인 영향의 길이냐 부정적인 영향의 길이냐가 판가름납니다.


 부정적인 와중에도 긍정적인 길을 트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지만, 정체성이 자리 잡을 때까지 부정적인 지름길이 많아지면 인간은 자신을 부정하는 부분이 분명히 생깁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겁니다. 우울증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정말 행복하게 자란 사람도 집안이 아닌 바깥활동에서 오는 부정적 상호작용이 클 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생길 수도 있어요.


 저도 부모님께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랐지만, 그것을 비판하거나 지적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냥 제 부모는 그런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내 상태 그대로를 인정하는 게 제일 첫 번째 할 일이에요.


 제가 가지고 있던 ‘울분’의 원인은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영향받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양상의 영향이 ‘존재부정’이었기에 정체성의 확립이 어그러진 것을 인정하고 수용했습니다.


 그리고 제 안에 멈춰있는 어린 저의 상처들을 몇 살 때인지 거슬러 올라가 하나씩 상기하고 나와 대화를 하면서 보듬어줬어요.


“그때는 너무 서운하고 슬펐지, 그 사람은 너한테 그러면 안 됐어. 그 사람은 옳은 방향으로 널 대한 게 아니야. 하지만 그런 경험 덕분에 지금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 그리고 그런 가치 없는 사람들 때문에 이제 더는 상처 받지 말자. 그 사람보다 네가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거야.”


 충분히 시간을 들여 위와 같은 대화를 했습니다. 그렇게 상처를 한 땀 한 땀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를 보듬어주고 나서야 비로소 단단해지고 편해지거든요. 


 그렇게 저는 마음속 깊숙하게 자리 잡은 쇠사슬을 다 잘라냈습니다. 그리고 저의 독립된 가족에 전력을 다했던 태도부터 바뀌었죠. 0순위가 제 아이들과 남편이었는데, 지금은 0순위가 저예요. 물론 위험한 상황에 놓이면 순위는 뒤바꿀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고 유연해졌습니다.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던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어떤 마음인지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고, 그게 저에게는 둘도 없는 유레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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