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것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한 달이 지나도 다시 무기력해지거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나 혼자 심해 속으로 빨려간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울감처럼 보이는 기분은 아직도 제멋대로 찾아오더군요. 그래서 완벽히 불안을 떨치지는 못했습니다. 다시 이러다가 아파지면 힘들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저어하며 하루하루 보낸 것 같아요.
앞에 말했듯 불안한 기분을 떨치기 위해 노력한 몇 가지가 있는데, 일단 첫 번째로 먹는 것에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간식을 너무 먹어서 살찌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머리에서는 행복회로를 돌릴 수 있었어요.
두 번째는 도움 되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우울증에 위로받은 노래가 있었어요. 아티스트 선우정아 님의 ‘도망가자’라는 노래였죠. 가사 자체가 저를 토닥거려주는 내용이라 집에 아이들이 떠들어도 이어폰 끼고 이것만 반복해서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우울증 후 우울감의 상태는 저 노래가 도움이 잘 안되더라고요. 대신 밝고 귀여운 노래를 들었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분명한 건 슬프거나 늘어지는 노래가 저한테는 도움이 안 됐습니다.
물론 평범한 일상에서의 우울감은 슬픈 노래를 들어도 위로가 된 적이 있어요. 우울증에서 바로 벗어난 상태에서는 조금 달랐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귀여운 것들로부터 힐링 받는 거였어요. 사진 말고 되도록 움직이는 영상으로요. 너무 귀여운 영상들을 보고 있자면 행복보다는 재미도 있지만 그만큼 제 처지가 비교돼서 눈물 났거든요.
희한하게도 그렇게 흘려보낸 눈물이 의미가 있었어요. 부정적으로 마음을 먹는 게 아니라 마음의 짐을 더는 힘이 있더라고요. 심적 부담을 그렇게 위로했고 흘려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문제는 개인적으로 후유증이라 생각되는 감정 제어와 처리하는 부분이 고장 난 것입니다. 그냥 저만의 생각일 수 있는데, 어디 나사 하나가 빠져서 조립 부분이 살짝 뒤틀린 느낌. 우울증이 나아지고 나서는 그걸 본드나 테이프로 쓸 수 있게 고친 느낌이 들었어요.
물건을 써야 하지만 최대한 망가졌던 부분을 만지지 않고 사용해야겠죠? 그래서 망가진 감정 조절 부분, 정확히는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는 부분을 어떡하면 덜 사용할까 고민했습니다.
우울증 전에는 어떻게 아이를 키우면서 화를 안 내고, 소리를 안 지르고 기를 수가 있지? 하며 한 톨의 이해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마치 죄지은 양 잘못을 따져 물으며 사과까지 요구하는 모습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자라왔으니까요. (실제로 저렇게까지 하진 않았습니다. 걱정 노노)
그러나 내 상처를 자세히 뜯어보며 그때의 감정들이 왜 느껴졌는가의 원인분석을 하며 정의 내려 정리할 수 있었고, 역지사지를 적용해 아이들 시선에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해되지 않거나 이해됐던 부모님의 행동들이 부분적으로 이해가 되면서 내 부모는 어떤 성격인지 파악할 수 있었어요.
그 이후에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성격일지 눈에 잘 보이는 지경에 이릅니다. 전에는 확증편향으로 담기 싫은 정보는 담지 않는 이른바 눈 가리고 아웅 태도였다면, 지금은 있는 그대로를 보고 판단한 뒤에 행동하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