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우울증의 원인이 대부분 울분이라고 언급했었습니다. 전문가의 말이긴 했지만, 정설이라기엔 다른 의견도 있었지만요. 그런데도 제가 계속 강조하는 이유가 우울증 발병 이후 계속 드는 상념들이 반은 부모님, 반은 왕따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저의 울분이었고요. 그래서 저도 저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일단은 유년기부터 학창 시절 얘기부터 해볼게요. 제가 기억하는 가장 처음 부정적인 사건은 유치원 6살인지 7살인지, 여하튼 재롱 잔치할 때였습니다. 추운 날씨에 운동장 같은 곳에서 했던 거로 기억해요. 인디언 춤을 춘다고 빨간색 파란색 노끈으로 하의에 술을 걸치고 머리에 깃털 장식을 단 채로 춤을 추는 거였죠.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게 짝꿍과 입 맞추기였어요. 그것도 이성 친구와 억지로 해야 했죠. 저는 딱히 싫어한 건 아니었지만 그 친구가 너무 칠색 팔색 하며 싫어했어요. 발을 구르면서 '아, 얘랑 하기 싫은데!'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근데 선생님 지시에 결국은 했어요. 물론 입 떼자마자 입술 닦더라고요. 억지로 하게 된 건 솔직히 그 시절 팽배했던 사회 분위기 때문이지만요.
두 번째로 기억나는 사건은 초등학교 입학식 자기 반 선생님 앞에 줄 서는 거였죠. 어떤 친구 뒤에 앉으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학생들이 많으니 다닥다닥 붙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 향기가 좋았었는지 그냥 그 친구가 좋아서 그랬는지, 등에 얼굴을 조금 비비댔던 것 같아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불편한 기색을 하고 하지 말라고 팍 밀쳤죠. 당연히도 제 잘못인 걸 아니까 머쓱하게 뒤로 물러났어요. 미안하다고 했는지는 사실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용서를 우울증 걸렸을 때 속으로 빌었을 정도로 그게 그렇게 잘못인가? 하며 깨닫질 못했어요. 미안하다, 그때 그 반 친구.
그리고 세 번째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 학기 중에 여자 담임에게 뺨을 맞은 일입니다. 저는 친구가 없었지만, 학교에 있는 놀이기구들로 노는 게 좋아 집에 늦게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창문을 통해 봤는지, 다음날 조례가 끝나고 저를 부르더라고요. 반 아이들이 다 있는 앞에서요.
어제 언제 집에 갔냐, 누구랑 놀았냐를 물어보는데 당장 혼날 것이 무서워 거짓말을 했어요. 교과서에 있던 이름 철수가 생각났고 앞뒤 바꿔서 수철이랑 놀았다고 했더니, 옆 옆 반 수천이라는 아이가 있다며 반장에게 데려오라고 지시하더군요.
그 아이에게 저를 아냐고 물었고 당연히 모른다고 대답했죠. 반장이 데려다주고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 싫어한다'라며 제 뺨을 때렸어요. 고개가 돌아간 저는 다른 반 아이들 얼굴을 봤고요. 그 자리에서 울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요.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억울하다며 하소연하듯 말한 건 정확히 기억납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어른이 작은 애 얼굴을 때리냐'라며 화내신 건 기억나는데, 그 뒤에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담임과 면담을 하셨던 거로 아는데 정확한 후일은 모르는 걸 보니 시원한 결과는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네 번째 기억은 2학년인지 3학년이었는지 아무튼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였어요. 그날은 흰 우유에 고구마가 나온 날이었습니다. 저는 워낙 먹성이 좋았고 가리는 게 없어서 짝꿍이 고구마를 못 먹겠다 그래서 제가 먹어준다고 했어요. 남기면 혼나니까요.
그런데 옆 자리 아이도 자기 걸 먹어달라며 건네줬고 얼떨결에 수락했는데, 우후죽순 주변 아이들이 저한테 고구마를 전부 넘기더라고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거절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 제 식판 한가득 고구마였고 다 먹을 수 없으니 속이 상해서 소리 내어 울었어요.
그걸 보던 남자 담임은 저에게 '고구마 장사하냐?'며 빈정댔고 반 아이들에게는 '혼자서 다 먹어야지 친구에게 무슨 짓이냐'며 혼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이들에게 비난과 빈축을 샀죠. '괜히 먹어준다고 줬다가 너 때문에 혼났잖아!'라던가 '먹기 싫은데, 그냥 다 먹어줘도 됐잖아'라던가.
-다음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