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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토리 Aug 01. 2021

암울했던 유년기와 학창 시절

두 번째

 초등학교 4학년. 영어를 처음 배웠던 학년인 거로 기억해요. 재미있게 생긴 언어에 소리에 민감했던 저에게는 발표하는 게 제일 재미있었죠. 공부는 못하지만 소리 캐치는 잘했으니까요. 앞자리에 앉아 선생님의 선택을 많이 받았고, 그로 인해 다른 아이들의 빈축을 또 샀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의 기회를 빼앗기보다는 재미를 위한 쾌감 때문에 손을 많이 든 것인데, 선생이 형평성을 생각한다면 다른 아이들도 발표시켜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로 인해 저는 영어 시간 조원들에게 제 팔을 봉인당하는 일도 가끔 있었어요. 너는 하지 말라고. 그래서 그런지 약간 자신감이 꺾이긴 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손을 잘 들지 못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은 이제 저를 거의 다 싫어했습니다. 이상한 애라고 다가오는 아이는 없었어요. 원래도 없었지만 뭔가 더럽고 공부도 잘 못하니 도움도 안 되는 아이로요. 귀가 간지러워 귀에 손을 대어도 코딱지를 팠다고 놀릴 정도랄까요.


 그 와중에 저를 잘 모르던 여자 친구가 다가와줬어요. 키가 크고 말투도 사근사근한 친구요. 애들은 제가 이상하다며 다가오지 않는데 지내보니까 착하다면서 저한테 시도 써줬던 아이예요. 저보고 천사 같은 아이라면서 정말 예쁘게 말해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인사를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왜 받아주지 않는지 물어보기엔 이미 제 용기는 다 꺾여있었고, 그 아이가 다이어리 용지에 써준 시를 보면서 며칠을 울었어요. 그 뒤부터는 저와 인사해주는 아이들은 없었고 유령처럼 학교를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조별로 앉아 담임의 점수와 보상을 받을 수 있던 시절. 전 과목 통틀어 하루 합산을 하는 식인 거로 기억하는데, 종례 시간에 다른 조가 보상을 받자 일제히 조원 아이들이 저를 엎드리게 누르고 목덜미에 톱질하듯 모양자로 마구 긁더군요. 저 때문에 점수를 못 받은 과목이 있어서요. 저는 당연히 반항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맨 뒷자리라 담임이 잘 못 봤나 봅니다.


 누가 소리를 질렀냐는 호통에 아이들은 저를 가리키며 '얘가 그랬어요!'를 외쳤고, 저는 혼자 교실 청소를 해야 했습니다. 억울해서 항의하려고 선생님을 불렀지만 기각되고 바로 하교시키더라고요. 어머니께 학교 다니기 싫다고 했지만, 학교는 다녀야 한다고 짜증 내셔서 그다음부터 묻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밉긴 했지만 다녀야 한다는데 어떡할까요. 다녀야지.


 그렇게 그날은 교실에서 숨죽이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 목을 살폈는데, 피는 다 터지고 따끔거리더라고요. 금방 나았던 것 같지만 충격이 컸죠. 그날 이후로는 발표는 제대로 못했습니다. 번호로 강제 발표시키는 수업이긴 했지만 손이 떨려서요. 같은 조 아이들은 그다음부터 자신이 하겠다며 달려들었고, 선생은 저를 보고 혀를 차며 잘 시키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고, 관능적인 그림에 흥미가 있었어요. 물론 퇴폐적인 관능이 아니라 아름다운 쪽이죠.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를 보고 영감을 받아 앞이 아주 짧은 로코코 시대적인 디자인의 드레스를 그렸는데, 다른 반 아이가 보더니 '얘봐! 변태인가 봐! 이렇게 짧으면 팬티 보이잖아!'라고 키득대며 외쳐댔죠.


 제 눈에는 예뻐 보였는데 변태 소리를 들으니 억울해서 아니라고 해도 제 외침은 아이들에게 소용없는 반항 같은 거였어요. 이상한 애로 유명해서요. 그다음 날부터 저는 변태에 공부도 못하는 찐따에 코에 코딱지 달고 다니는 천박한 애가 되었죠. 무슨 행동을 하든 간에 놀림거리가 되었어요.


-다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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