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달 연대기'-'킹덤' 무엇이 문제일까
묘한 불편함과 어색함, 유치함을 남기는 퓨전 사극들이 있다. 상고시대를 배경으로 단군 설화를 재해석했다던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를 비롯해 중국 춘추천국시대를 그린 동명 만화를 실사화한 영화 ‘킹덤’ 등 몇몇 작품들은 거대한 스케일로 무장한 화려한 포장지와 달리 어설픈 결과물을 내놓았다. 초호화 캐스팅에 막대한 제작비까지 투입된 이 작품들에 혹평이 쏟아질 수밖에 없던 이유는 무엇일까.
피터 잭슨 감독이 연출한 영화 ‘반지의 제왕’(2001) 시리즈와 HBO의 드라마 ‘왕좌의 게임’(2011) 시리즈는 판타지 팬들은 물론 판타지에 문외한인 이들의 시선까지 사로잡으며 판타지 장르의 신기원을 열었던 작품들이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암투와 온갖 인간군상, 웅장한 전투 시퀀스와 아름다운 영상미 등 판타지 세계관을 바탕으로 그려진 이 작품들은 ‘판타지는 유치하다’는 편견을 뒤집고 대중을 매료시켰다.
지난해, 판타지와 SF의 불모지라는 국내에서 판타지 세계관을 거대하게 그리고자 했던 시도는 아쉬운 결과만을 낳았다. 태고의 땅 아스를 배경으로 전설을 써가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린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2019)는 화려한 캐스팅과 막대한 제작비를 자랑했지만, 모두의 기대를 배반한 채 ‘괴작’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최근 개봉한 일본 영화 ‘킹덤’(감독 사토 신스케)도 마찬가지다.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진나라의 천하 통일을 그린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1만 명의 엑스트라가 투입됐다는 웅장한 전투 장면과 일본 유명 배우들의 출연으로 기대를 높였지만, 유치한 감상만 남기는 허술한 작품이 됐다.
‘반지의 제왕’과 ‘왕좌의 게임’은 되고, ‘아스달 연대기’와 ‘킹덤’은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의 말대로 국내 대중들이 판타지 세계관에 익숙하지 않아서 생기는 부조화일 따름일까? 온갖 판타지와 마법, 외계인 등이 난무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들이 박스오피스를 석권하는 최근 시장을 바라보면, 그와 같은 말은 핑계에 불과하단 것이 명백하다.
‘아스달 연대기’와 ‘킹덤’에 대중이 냉혹한 평을 내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두 작품 모두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판타지를 그린 작품들에 현실성을 운운한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판타지이기에 더더욱 현실적 묘사가 필요하다. 대중은 현실과 동떨어져 허구만으로 이뤄진 세계를 반기지 않는다.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고, 감정이입을 이뤄질 수 있는 작품에 공감하고 열광한다. ‘아스달 연대기’와 ‘킹덤’은 판타지적 상상을 현실적으로 그려내야 했음에도 어떤 논리나 고증 없이 화려함만을 내세우기에 바빴다.
단적인 예로 ‘왕좌의 게임’은 캐릭터의 분장은 물론 말투와 사고, 행동까지 어느 것 하나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주인공인 줄 알았던 인물은 단번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들이 펼쳐진다. 추레한 몰골로 온갖 오물을 묻힌 채 등장한 캐릭터들은 중세 시대의 비위생적인 생활상이 그대로 묻어난다. 현대를 배경으로 그려진 판타지 ‘어벤져스’(2012)도 마찬가지다. 극 중 토르(크리스 헴스워스)는 신화적 인물임을 보여주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서나 볼 수 있는 말투를 사용한다.
반면 ‘아스달 연대기’와 ‘킹덤’은 현실적인 고증을 고려하지 않은 티가 역력하다. 쇠를 박은 갑옷과 화려한 무늬가 수놓아진 비단옷, 고도의 건축 기술이 필요해 보이는 거대한 건축물 등 중세는 물론 근대에도 만나기 쉽지 않았을법한 물품이 스크린에 넘쳐난다. 고대를 배경으로 함에도 현대와 다름없는 말투를 사용하는 캐릭터들은 화려한 메이크업으로 무장해 예쁘기만 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극 중 설정과 일맥상통하지 않는 묘사에 두 작품은 난잡하고 어설픈 코스프레를 보는 듯한 감상만을 남기고 말았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됐지만, 여전히 조악한 CG(컴퓨터 그래픽)도 문제 되는 부분이다. 특히 ‘아스달 연대기’의 경우, ‘신과 함께’(2017) 시리즈에서 CG 구현을 담당해 호평받았던 덱스터 스튜디오가 참여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참 부족했다. 후반 작업이 2년에 달했던 ‘신과 함께’보다 3배가 많은 분량을 수개월 내에 처리해야 했으니, CG가 조악했던 것은 당연지사다.
‘킹덤’의 경우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된 일본 특유의 실사화 작품들이 갖는 한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50권이 넘는 방대한 내용과 현재도 연재가 진행 중인 원작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내지도 못했을뿐더러, 만화에서나 허용될 과장된 감정 표현과 기묘한 분장이 스크린에 그대로 구현되니 ‘오글거린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올해 하반기 시즌 2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기획 단계에서 시즌제를 염두 했다던 이 작품은 낮은 시청률과 높은 진입 장벽 등으로 새로운 시즌 제작이 무산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왕좌의 게임’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는 말부터, 스타들의 출연료 지급에 제작비를 다 썼다는 우스갯소리까지, 각종 잡음에 시달리던 ‘아스달 연대기’가 시즌 2를 통해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