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서 볼 수 없던 색채지만, 그 뿐
논란의 중심에 있던 영화 ‘사냥의 시간’이 우여곡절 끝에 공개됐다. 오랜 기다림만큼이나 기대를 불렀던 영화지만, 관객들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긴 어려워 보인다. 영화는 초반부 국내 작품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독특한 비주얼과 색채를 선보이며 신선한 감상을 불렀지만, 이내 지지부진한 이야기 전개와 허술한 개연성을 드러내 아쉬움을 남겼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준석(이제훈)은 막장에 다다른 인생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나오자마자 범죄를 계획한다. 그가 노리는 곳은 마피아가 운영하는 도박장의 금고다. 준석과 그의 친구들은 각자의 미래를 꿈꾸며 준석의 범죄에 동참한다. 철저한 조사와 준비로 금고를 터는 것에 성공한 그들이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정체불명의 추격자가 그들의 목을 서서히 옥죄기 시작한다. 마지막 한탕을 끝내고 행복한 내일을 맞이할 것이라던 네 친구들의 꿈은 무사히 이뤄질 수 있을까.
영화 ‘사냥의 시간’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네 친구와 이들을 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 ‘파수꾼’(2010)을 통해 이름을 알린 윤성현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박해수 등 충무로 기대주들이 대거 출연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이버 펑크가 가미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화면에 펼쳐질 때, 영화는 묘한 기대와 설렘을 불렀다. 암울한 근 미래를 배경으로 그려낸 이야기는 국내 작품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이유다. ‘아키라’(1988), ‘칠드런 오브 맨’(2006),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 등이 연상되는 독특한 비주얼과 색채가 영화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영화 초반부, 유려하게 흘러가는 윤성현 감독의 연출 역시 영화에 대한 흥미를 자극했다. 황량한 잿빛 도시는 배경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긴장감을 조성했으며, 불안한 캐릭터들의 심리를 대변하듯 흔들리는 카메라 워킹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영화는 복잡하게 흘러가는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리며 매력적인 장르 영화가 탄생했음을 알리는 듯했다.
문제는 영화가 가진 매력이 딱 거기까지였다는 것이다. 극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하나같이 평면적이다. 긴박한 추격전 가운데 휘몰아치는 인물들의 내면 묘사는 일품이지만, 이는 배우들의 힘에 빚진 것일 뿐, 캐릭터가 가진 허술한 설정은 여과 없이 드러나고 만다.
답답한 이야기 전개와 턱없이 부족한 개연성은 영화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사냥꾼에 쫓기는 주인공 무리는 급박한 상황에도 한껏 여유를 부린다. 영화는 관객을 충분히 설득하고 납득시키는 일 없이 홀로 추격전을 시작한다. 주인공이 총에 맞는 일은 거의 없는 반면, 그가 쏜 총은 언제나 백발백중이다.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와 같은 연출은 반감만을 남긴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배경이어야 하는 이유 역시 특별할 것이 없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총성이 난무하는 이 암울한 도시는 주인공 무리가 저지르는 범죄에 동기부여를 하는 역할일 뿐, 어떤 의미와 메시지를 담아내지 못했다.
요컨대 영화는 국내 작품에서 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배경 설정으로 기대를 높였지만, 이내 중심을 잃고 지리멸렬해 아쉬움만을 남겼다.
공개: 4월 23일/관람등급: 15세 관람가/출연: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박해수/감독: 윤성현/제작: 싸이더스/배급: 넷플릭스 /러닝타임: 134분/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