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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씨네 WeeCine Nov 28. 2018

거룩한 분노

The Divine Order / 가부장으로 부터의 탈피


 1971년 겨울, 작고 아름다운 스위스의 한 시골 마을은 오늘도 평화롭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노라 역시, 그 평화로움 속에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노라의 평화는 어느 날 갑자기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 조용한 평화가, 전부 자신을 비롯한 여성들의 고통과 인내 위에 이루어진 것을 깨달은 것이다. 여성들은 온갖 가사에 시달려야 했으며, 가정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해야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들은 경제권, 선거권뿐만 아니라 가정 내에서조차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노라는 남편 한스의 말을 듣지 않는 것으로, 이 위선적인 평화에 도전을 시작한다. 한스는 노라의 재취업을 반대했는데, 노라는 정면으로 한스의 뜻을 부정하며 그와 대결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노라는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성선거권 운동을 진행하고, 뒤이어 마을 여성들과 함께 가사 노동 파업을 진행한다. 강력한 가부장 중심의 사회는 마을 여성들을 잠시 주춤하게 했지만, 그것이 주는 고통은 그들을 더 이상의 침묵이 아닌 투쟁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이제 노라와 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과거, 이러한 여성들의 용기 있는 투쟁 덕분에 여성은 본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가부장제로부터 되찾을 수 있었다. 여성들은 자신의 경제권, 선거권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망도 솔직하게 표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강력한 억압의 대상이었던 여성의 욕구가 표출된다는 것은 곧 가부장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여성은 정숙해야 한다’로 대표되는 이 억압을 정면으로 부정하기 위해, 노라는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자신의 성적 욕망을 솔직히 표현한다.



그러나 가부장의 몰락이 단지 여성의 해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성 또한 가부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한스의 형 베르너는 농장이 싫었지만 아버지의 명령 때문에 농장을 팔 수 없었는데, 가문이 처음 산 농장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개인을 억압하는 가부장의 아집, 장남으로서 책임감, 아버지의 명령 등 남성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가부장제의 부담감으로부터 남성 또한 고통 받고 있던 것이다. 결국, 가부장제의 몰락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해방을 의미하며, 그것은 단순히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불편부당한 사회구조로부터 되찾아오는 과정인 것이다.



영화 거룩한 분노는 여성의 선거권을 얻는 것으로 가부장의 종말과 평등한 사회의 시작을 그렸다. 하지만 과연 영화의 배경인 1970년대에서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가부장으로부터 완벽히 벗어났는가. 안타깝게도 유교 문화의 뿌리와 독재로부터 야기된 수직적 사회구조는 분명히 우리 사회에 드리워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우리는 이제 이러한 사회의 부당함에 침묵하지 않고 용기 있게 불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력한 가부장도, 억압적 사회구조도 남아있지만, 그에 맞서 용기 있게 불평을 내뱉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행복한 삶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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