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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씨네 WeeCine May 08. 2020

리뷰 | ‘페인티드 버드’

흑백필름 통해 전달한 압도적 충격

2차 세계대전과 나치가 발한 참상을 그린 작품은 전에도 있었지만, ‘페인티드 버드’는 여타 영화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비극과 고통의 스토리텔링을 그렸다. 바츨라프 마르호울 감독은 잔혹함이 극에 달했던 2차 세계대전 시기와 당시를 살아가던 온갖 인간군상, 가히 엽기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만한 폭력을 어떤 여과장치 없이 스크린에 구현했다.

영화 '페인티드 버드' 스틸. 사진 엠엔엠인터내셔널(주)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시기, 유대인 소년 요스카(페트로 코틀라르)는 전쟁과 나치를 피해 어느 외딴 시골 마을에 맡겨지게 된다. 비록 부모님이 그립고 마을 소년들의 따돌림에 외로움을 타지만, 요스카는 사촌 아주머니의 보호와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머니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요스카는 부모님에게 돌아가기 위해 마을을 떠난다. 동물을 사랑하던 한 소년은 그렇게 냉담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속으로 어떤 방어막도 없이 홀로 걸어 들어간다.


영화는 폴란드 출신 작가 저지 코진스키가 집필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2차 세계대전 시기, 동유럽에서 살아가던 유대인 소년의 생존을 위한 수난기를 그렸다. 지난해 제76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후, 평단의 호평과 함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바츨로프 마르호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하비 케이틀, 우도 키에르,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출연했다.

영화 '페인티드 버드' 스틸. 사진 엠엔엠인터내셔널(주)

‘페인티드 버드’는 혐오와 적대가 넘쳐나던 시기를 한 유대인 소년의 생존기를 중심으로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영화는 역사의 비극을 낱낱이 파헤쳐 구체적으로 묘사했으며, 흑백 필름과 2:35:1의 와이드 스크린을 통해 강렬한 이미지와 시대의 잔혹함, 소년의 절박함을 모두 담아냈다. 스크린에 구현된 거친 질감은 척박하고 황량했던 당시 현실과 그 안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유대인들의 아픔을 여실히 전달했다.


영화는 유대인 소년이 가족에게 돌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인물과 에피소드를 병렬 형식으로 이어 붙였다. 10살 남짓한 이 소년은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던 온갖 인간군상을 만나게 되고, 수많은 폭력과 학대를 겪게 된다. 가히 엽기적이라고 표현할 만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관객은 소년을 따라 당시 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공유하게 된다. 순진무구하던 소년이 점차 암담한 현실에 무뎌져 가고, 차가운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영화는 통렬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영화 '페인티드 버드' 스틸. 사진 엠엔엠인터내셔널(주)

흑백 필름으로 촬영된 거친 질감과 참담한 시대를 적나라하게 들춰낸 장면들은 2차 세계대전 전후 이탈리아 인민 대중의 삶을 묘사했던 네오리얼리즘을 연상시킨다. ‘페인티드 버드’는 어떤 꾸밈이나 수사 없이 직접적으로 현실을 묘사했다. 그 처절한 현실에 2시간 50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이 일말의 지루함 없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다만 적나라하게 묘사된 광기와 폭력은 영화 관람에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허구임을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보아야 눈을 감지 않고 영화를 마주할 수 있다.


‘페인티드 버드’, 즉 물감이 칠해진 새는 극중 새 사냥꾼 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무리 속으로 날아가지만 이내 다른 새들의 공격으로 처참히 죽고 만다. 영화는 이 단편적인 장면으로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함축해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은 가슴팍에 노란 별을 달고 온갖 차별과 폭력, 박해 속에서 지내야 했다.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그렸던 영화는 전에도 있었지만, 바츨라프 마르호울 감독은 그들과는 결이 다른 압도적인 충격을 선사했다.


개봉: 3월 26일/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출연: 페트르 코틀라르, 하비 케이틀, 우도 키에르, 스텔란 스카스가드, 줄리안 샌즈, 베리 페퍼/감독: 바츨라프 마르호울/수입: 엠엔엠인터내셔널㈜/ 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러닝타임: 169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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