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성과 시스템에 대한 통렬한 비판
[맥스무비=위성주 기자] 플라톤 이래 인간 역사에 쌓여온 통념 때문일까. 인간의 이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꾸준히 제기되고, 미셸 푸코가 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 한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이성과, 그것이 빚어낸 사회 시스템을 굳게 믿는다.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누구나 인지하고 있지만, 이내 “뭘 어떻게 하겠어”라며 시스템에 순응한다. 영화 ‘더 플랫폼’은 어쩌면 단순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사회 구조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변화에 대한 모색도, 고찰에 대한 의지도 없는 우리네 모습을 통렬히 비판한다.
연이은 실패에 낙담하고 있던 고렝(이반 마사구에)은 ‘수직 자기관리 센터’에서 6개월을 지내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는 말에,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시설에 자원한다. 단 하나 허용되는 개인 물품으로 ‘돈키호테’ 책을 택한 그는 감금생활 동안 독서나 하면 될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그가 자원한 센터는 그다지 평화로운 곳이 아니다. 극한으로 치닫는 감옥 안에서 6개월을 버텨야 하는 고렝은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성과 생존을 위한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영화 ‘더 플랫폼’은 30일마다 랜덤으로 레벨이 바뀌는 극한 생존 수직 감옥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그렸다. 제44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미드나잇 매드니스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개봉과 동시 해외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가더 가츠테루-우루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이반 마사구에, 조리온 에귈레오, 안토니아 산 후안이 출연했다.
일명 ‘수직 자기관리 센터’라 불리는 영화 속 감옥은 30일마다 무작위로 거주하는 층이 바뀌는 특별한 수감 시설이다. 각 층당 2명이 배정되며, 원하는 개인 물품을 하나씩 소지할 수 있다. 각 층 중앙에는 천장과 바닥이 뚫린 형태로 모든 층을 관통하는 일종의 거대한 식탁(플랫폼)이 위에서 아래로 이동한다. 식사는 이 식탁을 통해 상위층에서 먹고 남긴 음식을 아래층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하루 1회 공급된다.
위에서 아래로, 음식을 공급한다고 하면 펼쳐질 그림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상위 층 사람들은 한 달 뒤 어떤 층에 가게 될지 모르니 최대한 많은 음식을 먹는다. 점차 층이 내려갈수록 먹을 것은 사라지고, 최하층에 가까울수록 극심한 굶주림에 고통받는 사람들은 같은 방 룸메이트를 잡아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배경 설정이지만, 감옥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마냥 단순하지 않다. 영화는 사건이 아닌 인간의 내밀한 심리 변화에 집중하여, 인간의 이성과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자본주의의 견고한 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가 구조적 모순에 대한 냉철한 비판을 열차의 이미지로 드러냈다면, ‘더 플랫폼’은 그를 수직적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설국열차’ 속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무리가 앞을 향해 한 단계씩 나아가듯, ‘더 플랫폼’ 속 고렝은 추락하는 인간의 이성과 함께 위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극 중 고렝은 얼핏 예수를 연상시킨다. 하늘에서 내려와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인간 모두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예수와 같이, 고렝은 가장 높은 층계에서 직접 플랫폼을 타고 내려와 견고해 보이는 사회 구조를 직접 비틀기 위해 고난을 자처한다. 그는 극 중 그가 읽는 책 돈키호테의 이미지가 엿보이기도 한다. 풍차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초로의 기사와 같이 고렝은 견고한 시스템을 향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고렝은 “변화는 스스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거대하게만 보이는 사회 앞에 우리는 어떤 의문이나 비판을 제기하지 않고 순응하고 만다. 모순적 시스템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같은 약자를 핍박하고, 강탈하며, 비인간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모두가 함께 생존할 방법을 궁리하고, 시스템을 개선할 의지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자신의 배부름과 안위일 따름이다.
연기부터 연출까지 영화는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것이 없는 완성도를 자랑한다. 이반 마사구에가 펼친 혼신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내며, 그의 심경을 세밀하게 표현한 가더 가츠테루-우루샤 감독의 연출 역시 박수를 부른다. 특히 아란자주 까예하 음악감독이 수놓은 영화 음악은 기묘하고 긴박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관객의 몰입을 극대화 시킨다.
선혈이 낭자한 잔인한 이미지를 꺼리는 관객이라면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 있겠다. 다만 특정 몇 장면이 아니라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터다.
있는 자와 없는 자, 가진 자와 부족한자가 극명하게 나뉘어 대립 각이 형성되는 요즘, 참으로 시의 적절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설국열차’와 ‘기생충’(2019)이 은유와 풍자를 통해 메시지를 던진다면, ‘더 플랫폼’은 보다 적나라한 방식으로 충격을 선사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개봉: 5월 13일/관람등급: 청소년관람불가/출연: 이반 마사구에, 조리온 에귈레오, 안토니아 산 후안, 알렉산드라 마상카이, 에밀리오 부알레/감독: 가더 가츠테루-우루샤/수입: ㈜더쿱/배급: 씨나몬㈜홈초이스 /러닝타임: 94분/별점: ★★★★
위성주 기자 whi9319@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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