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검의 맑은 얼굴만 남아버린 헛발질
과거 트라우마를 안겨준 사건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 악성 뇌종양으로 삶의 끝에 서 있던 그에게 정보국은 거절할 수 없는 마지막 제안을 건넨다. 기헌이 맡게 된 임무는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실험체 서복(박보검)을 안전하게 이동 시키는 것.
하지만 임무 수행과 동시에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게 된 기헌은 서복과 함께 가까스로 빠져 나오고, 자기 자신과 서복을 위해 둘만의 특별한 동행을 시작하게 된다. 실험실 밖 세상을 처음 만나 모든 것이 신기한 서복과 생애 마지막 임무를 서둘러 마무리 짓고 싶은 기헌은 가는 곳 마다 사사건건 부딪친다. 한편 인류의 구원이자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서복을 차지하기 위해 나선 여러 집단의 추적은 점점 거세지고 기헌과 서복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영화 ‘서복’(감독 이용주)은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을 극비리에 옮기는 임무를 맡게 된 요원 기헌이 서복을 노리는 여러 세력의 추적 속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불신지옥’(2009), ‘건축학개론’(2012) 등을 연출한 이용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으로, 중국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중국 바다 동쪽으로 보냈다는 신하 서복이 영화의 모티브다.
불로초를 찾아나선 서복의 전설을 꺼내온 만큼 영화는 영생을 향한 인간의 열망과 유한한 삶의 의미, ‘죽음’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간의 자세 등 여러 철학적 담론을 이야기한다. 불로장생의 존재인 서복과 동행하는 기헌은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한 명의 인간으로서 변화하고 성장한다.
그렇게 그려진 ‘서복’은 국내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복제인간이라는 소재와 맞물려 흥미를 돋웠지만, 결국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는 이야기가 아쉬움만을 남겼다. 영생을 무기로 권력을 잡으려는 악당은 지나치게 진부하고, 삶과 죽음, 무한함과 유한함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과 갈등은 지난 영화들에서 수 차례 다뤄져 왔다.
할리우드의 여러 프랜차이즈와 같이 삶에 대한 화두를 바탕으로 신선한 전개와 화려한 볼거리가 펼쳐졌다면 색다른 감상을 남길 수도 있었겠다. 간간히 등장하는 서복의 강력한 능력과 후반부에 접어들어 잠깐 그려진 대단위 전투 장면은 꽤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용주 감독은 할리우드의 공식이 아닌 보다 진중하고 집요하게 자신의 고뇌를 드러내는 방향을 택했다. 문제는 두 시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 안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함축하려 했던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철학적 담론만을 노래하다, 상업 영화가 가져야 할 미덕인 ‘재미’가 사라졌다. 관객과 호흡하길 외면한 채 화두를 던지기 급급하다 보니, 보는 이의 입장에선 지루하고 답답할 따름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듯, 지나치게 많은 화두를 던지는 통에 인물들 사이의 감정선 역시 관객이 따라가기 벅차다. 공유는 지난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들과 ‘부산행’의 모습을 오가는데, 순차적 변화 없이 들쭉날쭉해 관객에게 당혹감을 안긴다. 이는 배우의 연기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 이야기의 흐름과 연기를 옳게 매치하지 못한 연출의 오류다.
조우진이 연기한 안부장 캐릭터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그는 국가를 위해 개인의 목숨을 하찮게 취급하는 냉혈한이지만, 한편으론 진심으로 인류를 위해 서복을 위험한 존재로 판단하는 인물이다. 어쩌면 끝내 개인의 욕망을 포기하고 인간적 성장을 이뤄낸 기헌보다도 실제 우리와 더욱 닮은 이기도 하다. 허나 영화에선 맹목적인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광기를 내비치는 인물에 머문다. 덕분에 조우진의 날 선 연기 역시 지난 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에 갇혀버린 양상이다.
요컨대 박보검의 맑은 얼굴만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공유와 박보검이 눈물의 유대를 펼치며 여러 화두를 던지지만 관객에게 와 닿지 않는다. 서복을 차지하려는 악당은 지나치게 진부하고, 널뛰는 감정선을 따라 개연성 역시 흩어졌다. 이용주 감독의 하고팠던 말을 위해 영화는 편의적 선택만을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