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씨네 WeeCine Apr 16. 2021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기억이 전하는 여전함

혐오의 시대기에 더욱 필요한 영화들

2014년 4월 16일,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함께 참담했던 하루. 우리 모두의 마음 깊은 곳에 절망스러운 트라우마를 안겼던 그날 이후 7년이 지났다.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팍팍한 현실은 누군가의 마음을 뾰족하게 만들었나 보다. 그날의 기억을 꺼내는 이들을 향해 “이제는 지겹다”며 “그만 좀 하라”며 성을 내는 이들이 있다. 


허나 또 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당신들과 관련도 없는 먼 나라의 사건을 꺼낸 아우슈비츠 영화에는 여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냐”고, “그런 작품이 당신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냐”고.

영화 '그날, 바다' 스틸. 사진 (주)엣나인필름

실로 그렇다. 한 세기 전 전쟁의 역사를 조명한 영화는 크게 반기면서도, 정작 7년밖에 흐르지 않은 일을 꺼낸 작품엔 눈살부터 찌푸린다. 아우슈비츠 영화는 반기나 세월호 참사를 담은 영화는 꺼리는 우리들의 이 기묘한 행태는 과연 무엇에서 기인한 것일까. ‘지겹다’며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이들에게 2014년의 오늘을 꺼낸다는 것의 의미를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서로가 서로를 향해 악에 받친 비난과 피로를 쏟아내는 혐오의 시대. 세월호 참사를 담은 영화들을 살펴보며, 그와 같은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을지 되짚어 봤다.

영화 '생일' 스틸. 사진 (주)NEW

세월호 참사를 전면에 꺼낸 온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무엇일까. 아마 많은 이들이 설경구, 전도연이 주연을 맡은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을 꼽으리라 예상된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첫 번째 상업 영화였던 이유다.


개봉 당시 영화는 수많은 이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유가족의 슬픔과 집단 트라우마를 무기로 돈을 벌려는 목적이라던 것. 이에 더해 당시 냉랭했던 정치권과 맞물려 정치적 목적이 담긴 작품이 아니냐는 이유로 질타를 받기도 했다.


허나 막상 관람했던 ‘생일’은 슬픔을 이용해 관객의 눈물을 쥐어짜려 하지도,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를 남기지도 않았다. 영화는 그저 참사 후 유가족이 일상에서 마주한 상처와 소외, 무너짐과 회복을 담담히 풀어냈을 뿐이다.


‘생일’은 우리에게 감히 미루어 짐작하기도 힘든 유가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사건의 아픔을 개인에 머물도록 하지 않고 우리 사회 모두가 연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함께 아프고, 공감하며 보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수 있도록, ‘생일’은 작은 희망을 전한다.

영화 '유령선' 스틸. 사진 (주)엣나인필름

몇몇 다큐멘터리는 세월호 참사가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이후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과 진상규명이 옳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들춘다. ‘그날, 바다’, ‘유령선’, ‘부재의 기억’ 등이 그렇다.


특히 ‘부재의 기억’(감독 이승준)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다큐멘터리상 부문에 최종 후보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던 작품으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함께 국내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된 영화기도 하다.


여타 다큐멘터리가 참사의 책임 소재와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렸다면 ‘부재의 기억’은 당시 사건 현장 영상과 통화 기록을 중심으로 2014년 4월 16일을 최대한 재현한다. 그 과정을 통해 참사 현장과 미뤄지기만 하던 구조 작업, 우리는 믿었으나 실상은 부재했던 국가를 꼬집는다.


세월호 사건 이후 여전히 이렇다 할 변화가 이뤄지지 않은 사회 속에서 앞선 다큐멘터리들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순진하게도 정권의 교체와 함께 모든 것이 해결됐으리라 믿지만, 그 어떤 조사도 명확히 이뤄지지 않았다. 유가족이 여전히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외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이 문제였고 누구의 잘못이며 대책은 무엇인지 정립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간 지금. 오늘 당장 같은 일이 벌어진다 하여도 조금도 이상할 거리가 없다.

영화 '당신의 사월' 스틸. 사진 (주)시네마달

유가족의 아픔을 돌아보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과정을 거친 후, ‘당신의 사월’(감독 주현숙)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모두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주현숙 감독은 그다지 별스럽지 않은 이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곤 그날의 기억을 물었다. 쓰러지던 배를 보고 충격에 휩싸였던 교사, 유가족을 향해 감히 위로조차 건네기 어려웠던 카페 사장, 그들의 곁을 지키고자 했던 인권 활동가, 사고 해역에서 시신을 수습한 어민, 그저 바라만 봐야 했던 과거가 아픈 학생.


영화는 모두가 다른 시선으로, 다른 기억으로 바라본 그날의 바다를 스크린에 위치 시켜 모두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직접적인 피해자도, 유가족도 아닌 이들일 뿐이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우리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된다.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관련 없는 일이라는 무시로 일관했던 우리에게, 영화는 당신의 마음 속 깊은 곳, 진실로 아픔이 지워졌는지 묻는다.


그러하기에 ‘당신의 사월’은 진정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꺼낸다. 외면하고, 묻어두고, 지나치지 않고, 아픔을 들춰내고, 공유하며, 토로하는 과정을 통해 일상으로의 회복과 희망을 꿈꾸게 만든다.

영화 '당신의 사월' 스틸. 사진 (주)시네마달

2021년 4월 16일, 올해도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7년 전 아스라이 사라져버린 아이들의 눈물이 바닥을 적신다. 서로를 비난하는 일을 멈춘 채 그저 그날을 조용히 떠올리고, 위로하며, 사랑하는 날은 언제쯤에야 올 수 있을까. 그다지 짧진 않으나, 담담히 말하기에는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들의 사월은 여전히 구름이 꼈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뷰] '서복' 삶과 죽음의 경계가 빚어내는 두려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