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od Aug 10. 2023

내 말이 자극적이라면 넌 바로 barbie를 씹어

영화 줄거리에 대한 내용은 어느 정도 생략했고 색안경을 벗고 읽어주세요

영화 ‘바비’가 ‘성’에 관한 이야기라 느끼느냐 아니냐에 따라 이 글의 가치는 극과 극으로 나뉠 것입니다. 이 영화가 ‘페미니스트’를 주장하고 싶어 한다 느낄 수 있으며, 물론 그게 맞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본인은 그렇지 않다 생각하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려 합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만일 ‘바비’가 ‘페미니즘’에 대한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면, 당신은 그저 보이는 대로만 보고 느꼈을 뿐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 속 작은 요소들을 너무나도 크게 바라보지 않았나 돌아보며 이 글을 읽는다면 꽤나 흥미로울 것입니다.


일례로, 여기 동성애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들이 있죠. 토르: 라그나로크, 분노, 길복순. 하지만 그러한 성향의 캐릭터가 존재한다고 그 작품 자체가 그 성향을 표방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문라이트’와 같은 영화도 존재하지만, 이 영화들은 ‘동성애’라는 성 정체성을 지닌 인물들이 주된 서사를 이뤄가기 때문에 ‘퀴어 영화’라고 분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여기까지의 내용에 단 1%도 공감할 수 없다면, 이 글을 더 이상 읽지 않아도 좋다고 필자는 말하고 싶네요.


아니라고요?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우선,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사람이 아니죠. 그저 사람이 만든 장난감일 뿐. 이런 관점으로써 저는 프레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왜 주인공이 ‘바비’여야 했고, ‘켄’이 나와야 했나.

답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막연한 페미니즘 영화였다면, 가상 세계의 가상 인물을 창조해 똑같은 스토리를 엮어 갔어도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실존하는 장난감들입니다.


무엇이, 왜 다른 지 묻는다면 이런 질문 하나를 던져보죠.

집 안을 더럽히는 로봇 청소기를 본 적이 있나요? 아니면 종이를 코팅해주는 파쇄기는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비’ 속 장난감들도 그저 한 가지 목적만 가지고 있는, 그 목적이 바로 그들의 존재 이유라는 겁니다. 인형을 보며 우리가 즐거움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의 역할은 다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 바비는 언제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켄 또한 바비를 향한 사랑만이 그의 원동력으로 표현되고 있죠. (고슬링의 혼을 담은 연기로 좀 더 간절해 보이긴 했지) 그런 인형들이 현실세계에서 마주한 것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얻은 것은 있었겠지만 상처 또한 많았을 겁니다.
 

‘사샤’라는 급진적 페미니스트 캐릭터를 통해서 ‘한 가지 신념에 깊게 빠져,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의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성향을 가졌건 너무 확고한 신념만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 아니었을까요? 


‘세상은 남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여기는 켄을 통해, 바비들과 완전히 반대 성향도 보여줍니다. 바비가 현실세계에서 바비랜드로 돌아가려는 사이, 켄은 이미 그곳에 ‘가부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심어버렸죠. (쳇바퀴 같은, 매일 같이 수동적이었던 인형들의 삶에 ‘새로운 이념’은 너무나도 강력했을 겁니다.) 

똑똑하고 능력 있던 바비들은 가부장 아래 모든 걸 내려놓게 되지만, ‘글로리아’는 여성으로서의 삶, 고충에 대해 털어놓으며 가부장을 무너뜨릴 의지를 얻습니다. 그리고 그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시스템이 만든 장난감이기 때문에 어떠한 사상도 사실 주입되기가 쉬웠던 거죠. 

바비들의 작전은 켄들에게 통하고, 켄들은 서로 세력 싸움을 하다 자멸. 바비들은 바비랜드를 되찾게 됩니다. 하지만 바비랜드도 켄덤(켄들의 왕국)도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달은 바비는 켄이 켄다운 모습을 찾도록 도와주며 영화의 막이 내립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다가옵니다.

‘누구나 인생에 정해진 길은 없으며, ‘나 다움’은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제가 감독도 아니니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틀렸을 수도 있죠.

하지만 영화에서 결국 말해줍니다.

바비는 샌들을 선택했습니다.

하이힐만 고집하던 바비는 누구의 강요나 권유 없이 하이힐을 벗습니다. 오롯이 그녀의 선택으로.


저는 이 영화가 온전히 페미니즘만을 주장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영화에 담긴 작은 요소 중 하나일 뿐, 그에 대한 비판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레타 거윅’의 첫 번째 작품인 ‘레이디 버드’는 사춘기 여학생의 성장과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하며 여러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건 비단 여성 관객만이 아닐 테죠. 남성 관객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저는 그레타 거윅 감독이 좋습니다. 이번 ‘바비’를 통해서 또 한 번 좋은 메시지를 저에게 전해주었고 그래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럴싸한 포장은 벗어 던지고 그럴싸함보다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거듭나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