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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러다임 파라독스

by 록명

우리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공개한 33페이지 분량의 국가 안보 전략(NSS)은 감상적인 동맹의 서사를 벗겨내고, 오직 상업적 이익과 수치로 환산되고 실리추구만을 남긴 '서늘한 뉴노멀'입니다.

어쩌면, 그들 미국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겠지만, 국제 질서가 얼마나 기계적이고 무자비한 '각자도생의 시장'으로 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제 '1순위' 외교 초점을 '유일한 핵심 국가 이익'에 맞춥니다. 그동안 미국이 짊어졌던 '세계적인 부담'은 파괴적인 투자였을 뿐이며, 그 결과로 미국의 중산층과 산업 기반이 약화되었다는 처절한 자기반성입니다.

트럼프 정부는 이제 '서반구'라는 자신들의 앞마당을 본토의 연장선으로 선포하며, 이곳에 발을 들이는 중국이나 유럽의 경쟁국들을 향해 "전략적인 자산 소유와 통제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합니다.


장부의 첫 페이지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미국 중산층을 약화시킨 파괴적인 투자'로 규정하며 시작됩니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1순위 외교 가치였던 '민주주의 전파'를 폐기하고, 오직 미국의 직접적인 안보와 이익에만 자원을 집중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구체적인 지점이 바로 '서반구'입니다. 미국은 이 지역을 본토의 연장선으로 간주하며, 파나마 운하와 같은 핵심 인프라를 통제하는 비서반구 국가(중국 등)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명시했습니다.

이는 자원을, 이익이 확실한 곳에만 집중 투자하겠다는 '선택과 집중'의 비즈니스 논리입니다.


안보라는 공공재에 대한 가격표는 더욱 구체적입니다.

미국은 나토(NATO)를 향해 2027년이라는 명확한 데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유럽이 목표로 하던 2030년보다 3년 앞당겨진 이 시점까지, 제례식 방어 능력의 대부분을 유럽 스스로 책임지라는 통보입니다.

동맹국들이 관습적으로 유지해온 'GDP 대비 2%'의 국방비 지출은 이제 "무임승차"이자 "미국을 약탈하는 경제 관행"으로 재정의되었습니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제1열도선 방어비용의 분담을 요구하며, 미국이 짊어지던 방위비 지출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국방비를 GDP 대비 3% 이상으로 끌어올리라는 무언의 압박이 이 장부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현재 약 2.5% 수준인 한국의 국방 예산을 3%로 증액할 경우, 매년 약 10조 원 이상의 추가 재원이 필요합니다. 이는 복지나 교육에 쓰일 자본이 안보라는 생존 비용으로 강제 이전되는 과정입니다.


우선, 가장 직접적인 타격은 '제11차 및 차기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의 재협상 압박입니다.

미국은 장부상 "무임승차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현재 한국이 지불하는 연간 약 1조 5,000억 원 규모의 분담금을 '약탈적 경제 관행'의 결과로 간주할 가능성이 큽니다.


과거 트럼프 1기 당시 요구했던 '50억 달러(약 6조 5,000억 원)'라는 숫자가 다시 테이블 위에 오를 수 있으며, 이는 한국 국방 예산의 상당 부분을 미국 서비스 '구독료'로 전환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안보 외주화 비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NSS가 명기한 '제1열도선' 방어 책임론은 한국 국방 예산의 구조적 변화를 강요합니다.


경제 부문에서는 '협력과 상생'이라는 '빈티지모달(Vintage Modal)'보다 '싱호주의'가 무역 수지를 겨냥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존재임을 증명하라'


미국은 지난 30년간의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2023년 기준 약 444억 달러)를 정밀 타격할 것입니다.

이는 보편적 관세 도입이나 한미 FTA의 재개정 요구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자동차와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의 마진율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애덤 스미스가 300년전부터 말했습니다.

'우리가 매일의 식탁에서 따뜻한 빵과 고기를 마주할 수 있는 것은 그 상인들이 우리를 가엽게 여겨 베푼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정직한 욕구 덕분'이라는 사실'이라고 말입니다.

또한 그가 말한 자애심이 미국 본토의 제조업 부활로 향하면서, 한국 기업들은 보조금의 대가로 더 많은 숫자의 현지 투자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이 단순하고도 강력한 선언은 민초들의 생존법을 넘어 이제 거대한 국가 간의 관계라는 더 큰 무대 위로 호기롭게 퍼져가고 있습니다.


이익은 도덕적 요건조차 과감히 '0'으로 수렴시킵니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들의 모임인 G7을 대신하여, 오직 실질적인 힘을 가진 5개국(C5: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일본) 중심의 새로운 권력 구도를 구상합니다.

이 체제에서 인권이나 민주주의 수호는 더 이상 가치 있는 항목이 아닙니다.

미국은 "더 이상 다른 나라에게 사회 변화를 강요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체제가 무엇이 되었든, 미국의 국부(National Wealth)를 증진할 수 있다면 누구와도 손을 잡겠다는 장사치의 실용주의를 공식화했습니다.


중국과의 관계 역시 19페이지에 이르러서야 등장하지만, 그 내용도 철저히 상업적이자 자본주의적 입니다.

지난 30년간 이어진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경제 관계의 균형 재조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이는 지정학적 우려라는 추상적 개념을 지우고, 오직 '상호주의'라는 저울 위에 양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만을 올려놓겠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기후 변화나 탄소 중립 같은 이념은 미국의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재앙적인 가치'로 규정하여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33페이지의 명확한 숫자로 쓰인 '계륵'같은 청구서가 놓여 있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를 떠받치던 아틀라스의 역할을 내려놓고, 이제 동맹국들에게 각자의 안보를 '구독 서비스'로 해결할 것을 요구합니다.


'안보는 셀프'


미국이 새로 써 내려간 33페이지의 냉혹한 장부와 그 속에 담긴 2027년이라는 서늘한 데드라인은 우리에게 더 이상 감상적인 상호주의에 기댈 시간이 없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약 300년 전 애덤 스미스가 간파했던 인간의 ‘자애심’이 이제 국가의 생존 본능으로 부활하여 국제 질서라는 판을 통째로 뒤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미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자연스런 주장이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썩 자연스럽지 않음도 있습니다.


백여년간 글로벌 경제성장과 부의 축적을 이룩한 것은 '협력과 자유무역'이란 '빈티지모달'의 가치였지, '자국만의 이익추구'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유무역'이라는 빈티지 모달의 가치는, 사실 인류가 수백 년의 시행착오 끝에 겨우, 가까스로 합의한 ‘최선의 질서’였습니다. 애덤 스미스 역시 『국부론』에서 '국부의 증진은 폐쇄된 독점이 아니라, 분업과 교환을 통한 시장의 확장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역설했습니다.

즉, 타국의 번영이 곧 나의 번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야말로 시장의 가장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섭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이 보여주는 행보는, 역설적이게도. 이 섭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인위적 역행'입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상호주의와 자국 우선주의는, 사실상 지난 세기동안, 자신들이 설계하고 전파했던 규칙들을 스스로 파기하는 고백과도 같습니다.

만약 그들이 주장하는 새로운 질서가 오직 '미국만을 위한 숫자'로만 채워진다면, 지난 백 년간 전 세계가 공유했던 번영의 서사는 사실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들을 길들이기 위한 거대한 연극이었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셈입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유라는 이름의 그 부드러운 모달이 실은 타국을 구속하기 위한 부드러운 포승줄이었던가? 협력이라는 이름의 그 고귀한 가치가 실은 미국의 체력을 비축하기 위한 교묘한 위장이었던가?

만약 그러하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것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가 아니라 '오래되고 노골적인 기만'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기백은 배신감에 젖은 냉소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가식을 벗어던졌다면, 우리 역시 '순진한 신뢰'라는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합니다. 그들이 가치를 버리고 숫자를 선택했다면, 우리도 이제 그들이 내뱉은 말(Language)이 아닌 그들이 들이미는 주판알(Logic)로 승부해야 합니다.


백 년의 가식이 드러나는 순간은 역설적으로, '진정한 주권의 시간'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미국이 정해준 규칙' 안에서 안주했다면, 이제는 그 부자연스러운 시장의 왜곡 속에서도 우리만의 숫자를 지켜낼 '독자적인 궤적'을 그려야 합니다.

미국이 스스로의 역사를 부정하며 '자국만의 이익'이라는 좁은 골방으로 숨어든다면, 우리는 오히려 그들이 버린 '협력과 자유'라는 빈티지 모달의 가치를 더 정교하고 실리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우리만의 시장을 넓혀가야 합니다. 그것이 가식을 넘어 실재로, 의존을 넘어 자립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뉴노멀'입니다.


거인이 자신의 가치를 부정하며 스스로 작아지기로 했다면, 이제 그 빈자리를 채울 것은 누군가의 선의를 믿지 않고 오직 자신의 실력으로 세계를 마주하는 우리의 '서늘한 기백'입니다. 가식의 시대가 끝났다면, 이제 정직하고도 무서운 '실력의 시대'를 시작할 때입니다.


하늘을 떠받치던 아틀라스가 사라진 자리에 시퍼런 생존의 하늘이 드러났습니다. '자연스럽다' 하겠습니다.

류 승범의 대사가 오랜만에 떠오릅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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